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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희열의 스케치북'. 사진|KBS 방송 캡처 |
22일 방송된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600회 특집 '우리들의 여름날'로 꾸며졌다. 프로그램은 MC 유희열의 표절 논란 여파로 막을 내리게 됐지만 유희열은 평소와 다름 없이 담담하면서도 은은한 미소로 마지막 인사를 전했고, 출연 뮤지션들 역시 특별하지 않은 마지막을 채웠다.
유희열은 "오프닝 영상에도 나왔지만 '스케치북' 처음 시작할 때 제 나이가 39살이었더라. 그때만해도 30대였는데 벌써 52살이 됐다. 13년 3개월이 지나서 오늘로써 600회를 맞이했다. 전부 여러분 덕분이다.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유희열은 "그동안 보내주신 감사의 의미를 담아서, 사실 오래전부터 600회 특집을 준비해왔다. 그래서 오늘만큼은 지난 걱정·근심들 다 내려놓고 여러분들이 주인공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오늘 이 방송을 꾸몄다"면서 "여름날 사계절을 견뎌낸 여러분들에게 건네는 마지막 선물이다"라고 마지막 회임을 암시했다.
이날 출연진은 폴킴X멜로망스, 10CMX헤이즈, 데이브레이크, 오마이걸 효정X승희, 김종국, 씨스타, 거미였다. '스케치북'과 인연이 깊은 아티스트들이 출연해 따뜻한 무대를 선보였다. 특히 씨스타는 해체 후 5년 만에 완전체로 무대에 올라 감격을 드러내기도 했다.
모든 무대가 끝난 뒤 다시 무대에 오른 유희열은 "마지막 인사를 드리게 됐다"고 운을 떼며 짤막한 인사를 건넸다. 그는 "지난 13년 3개월 동안 이 무대를 꿈꾸며 찾아와 주신 수많은 뮤지션들과 관객들, 늦은 시간까지 항상 지켜봐 주신 시청자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 저는 지금 이렇게 조명 아래 서 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뛰어다니는 수많은 분이 있다. 스태프 분들에게 감사하다"라고 말했다.
유희열은 이어 "저는 여기서 인사드리지만 음악인들이 꿈꾸는 소중한 무대가 이어질 수 있도록 여러분이 많이 응원하고 아껴 주시길 진심으로 부탁드린다"라며 "귀한 자리 함께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 지금까지 유희열이었다"라고 말한 뒤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이후 제작진도 자막을 통해 종영 인사를 건넸다. 제작진은 "음악인들의 꿈을 모두 이뤄줄 순 없었지만 그들이 꿈을 스케치 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 스케치들이 쌓이고 쌓여 600장의 제법 두꺼운 음악 책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이 600장의 스케치북을 함께 채워준 494650명의 관객들과 늦은시간까지 '유희열의 스케치북'의 음악을 들어주신 시청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그동안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유희열의 스케치북'(이하 '스케치북')은 '노영심의 작은음악회'(1992년 4월11일∼1994년 4월29일)를 시작으로 '이문세쇼'(1995년 9월16일∼1996년 10월12일), '이소라의 프로포즈'(1996년 10월19일∼2002년 3월30일), '윤도현의 러브레터'(2002년 4월6일∼2008년 11월14일), '이하나의 페퍼민트'(2008년 11월21일∼2009년 4월17일)를 이어 2009년 4월 24일부터 KBS 심야 음악방송 명맥을 이어온 최장수 심야 음악 프로그램으로, 이날 600회 방송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600회라는 특별한 숫자로 유종의 미를 거두는 모습이지만 내실은 갑작스런 이별이다. MC 유희열이 최근 표절 의혹으로 논란에 중심에 섰기 때문이다.
유희열은 최근 ‘유희열의 생활음악’ 프로젝트 두 번째 트랙인 ‘아주 사적인 밤’이 일본 영화음악 거장 사카모토 류이치의 ‘아쿠아’와 비슷하다는 표절 의혹이 제기됐다. 이에 유희열 측은 “검토 결과 곡의 메인테마가 충분히 유사하다는 것에 대해 동의하게 됐다”며 사과했고, 원곡자 사카모토 류이치 역시 “두 곡의 유사성은 있지만 제 작품 ‘아쿠아’를 보호하기 위한 법적 조치가 필요한 수준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밝히며 일단락됐다.
하지만 과거 MBC 예능 ‘무한도전-자유로 가요제’에서 발표된 ‘플리즈 돈트 고 마이 걸’(Please Don’t Go My Girl), 성시경의 곡 ‘해피 버스데이 투 유’(Happy Birthday to You) 등 추가 표절 의혹이 이어졌다. 안테나 측은 “영향과 표절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에 단순 비교로 논란이 되는 부분은 동의가 어렵다”며 의혹을 부인했으나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고 결국 유희열이 제작진에 직접 하차 의사를 밝히며 '스케치북' 마지막장을 닫게 됐다.
유희열은 '스케치북' MC 하차를 직접 알리면서도 "지금 제기되는 표절 의혹에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올라오는 상당수의 의혹은 각자의 견해이고 해석일 순 있으나 저로서는 받아들이기가 힘든 부분들"이라고 쏟아진 표절 의혹에 힘든 심경을 드러내기도 했다.
해당 의혹들이 '공식적'으로 표절로 확인된 사안은 없었으나 유희열은 창작자로서 치명상을 입게 됐고, 결국 스스로 '스케치북'을 비롯해 출연 중이던 방송 프로그램에서 모두 하차하며 사실상의 자숙의 시간을 갖게 됐다. 유희열이 언제, 어떤 음악 혹은 어떤 프로그램으로 다시 대중 앞에 서게 될 지는 현재로선 가늠하기 어렵다.
'스케치북'이 MC 유희열의 이름을 내걸고 하는 라이브 음악 프로그램인 만큼 뮤지션에게 가장 치명적인 표절 의혹을 떠안은 채 프로그램을 이어가는 건 대중의 정서를 고려했을 때 무리였다는 반응이 다수였다. 하지만 MC 하차로 인해 프로그램이 사실상 종영을 맞은 데 대해서는 아쉬움의 목소리가 크다.
'스케치북'은 양희은, 최백호와 같은 레전드급부터 대중에게 낯선 신인 아티스트까지 음악을 사랑하는 모두에게 꿈의 무대였다. 인디·록·발라드·댄스·힙합·국악·밴드 등 다양한 음악 장르를 가리지 않았으며, 배우·개그맨·운동선수·셀럽 등 다채로운 출연자를 품었고, 시청자들에게 음악의 즐거움을 고스란히 전해왔다.
특히 네임드 가수, 아이돌 가수 중심으로 돌아가는 현재의 가요계에서도 '스케치북'이 지난 13년간 묵묵한 뚝심으로 무명이나 신인, 인디 아티스트 그리고 좋은 음악을 발굴해왔다는 점은 그 자체만으로도 프로그램 존재 이유였기에, 업계에선 이번 종영을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높다. 비록 '스케치북'이 평균 시청률 1%대의 비인기 프로그램이었다 해도
한 인디 뮤지션 관계자는 "'스케치북'은 인디 뮤지션들이 출연할 수 있는 유일한 지상파 음악 방송이었다"며 "우리는 어디로 가야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안타까워했다.
[박세연 스타투데이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