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안나' 김준한이 작품에 참여한 소감을 전했다. 사진|쿠팡플레이 |
구수한 사투리와 호탕한 웃음으로 많은 이들의 호감을 산 '착한 남자'인 줄 알았더니, 이보다 더 '나쁜 XX'가 있을까 싶다. 올 여름 방송가를 휩쓴 화제작, '안나'에서 배우 김준한(39)의 열연으로 탄생한 '괴물', 지훈 말이다.
김준한은 쿠팡플레이 '안나'(극본 감독 이주영)에서 젊은 나이에 자수성가한 유망한 벤처기업의 대표 최지훈 역을 맡았다. 남다른 야망으로 목표지향적인 삶을 추구하는 지훈은 자신과 비슷한 면을 가진 안나(수지 분)와 사랑 없는 결혼을 선택한 인물이다.
김준한이 전작인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보여줬던 치홍의 따뜻함은 온데간데 없이, 사람 좋은 미소 뒤에 숨은 지훈의 무자비하고 자기중심적이며 아주 추악한 민낯은 시청자를 기함하게 했다.
하지만 김준한이 이토록 변화무쌍한 얼굴의 소유자라는 걸, '안나'의 이주영 감독은 어쩌면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처음 최지훈 역할을 제안받았을 때, 놀랐어요. 이걸 나에게 준다는 것에 대해서요. 어떻게 저한테 주실 생각을 하셨냐고 감독님께 여쭤보기도 했죠."
최근 소격동 한 카페에서 매일경제 스타투데이와 만난 김준한은 '안나'를 처음 제안받았던 당시를 떠올리며 눈을 반짝였다.
"왜냐면, 내가 그런 이미지가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뭐랄까, (내가) 이렇게 스케일이 큰 느낌이 아닌 것 같은데 싶었죠. 감독님이 상상력이 풍부하시구나 싶었어요. 그런데, 너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시더라고요. 제가 오히려 감사하게도, 최지훈으로서의 가능성을 한 번 생각해보게 됐죠. 아 물론, 감독님의 제의를 거절한 건 전혀 아니었어요 하하."
김준한은 자신을 왜 낙점했는지에 대한 답변을, 그 당시 이주영 감독에게 구체적으로 들은 건 아니었다면서도 "감독님은,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신 것 같다"고 말을 이어갔다.
![]() |
↑ 김준한은 '안나'를 촬영하며 많은 고민을 했다고 밝혔다. 사진|쿠팡플레이 |
또 김준한은 "여러가지를 종합적으로 봤을 때 '안나'에 끌린 건 처음에는 대본일 것이고, 그 안에서 내가 어떤 역할을 해볼 수 있을까에 대한 것, 그리고 감독님에 대한 부분들까지 모든 점이 끌렸다. 그리고 이 안나라는 엄청난 역할을 수지가 보여주면 어떨까 궁금했다. 같이 해보고 싶었다"고 출연을 결심한 계기를 설명했다.
그렇게 순조롭게 '안나' 호에 탑승한 김준한이었지만, 고민은 어느 때보다 많았다. 캐릭터의 스케일에서 오는 부담이었다.
"최지훈이라는 인물이 컨트롤하는 세계가 너무 크다는 것? 그 정도 세계를 다뤄본 경험이 있기 힘들잖아요. 그렇다 보니 어떤 마음으로 행동하고 저런 결정을 할까를 상상을 많이 해봐야 했어요. 평소에는 해보지 못한 상상이기 때문에 그런 부분은 조금 겁나는 게 있었어요. 갑자기 감투를 썼을 때 부담을 느끼는 것이라던가 하는 것이었죠."
하지만 그 역시, 배우였다. "그런데 정말 재미있는 건, 현장에서 모든 상황이 나를 그런 사람(최지훈)으로 만들어주는 것 같았어요. 상대 배우나 모든 상황들이 나를 최지훈으로 만들어주는구나 싶었죠."
자신이 맡은 지훈이란 캐릭터에 대해 그 스스로는 '악역'이라 표현하지 않았지만 "관객의 입장에선 나쁜 놈이 맞다"고 말했다.
"사실 연기하는 입장에선 선한 역할, 악한 역할 이런 표현을 잘 쓰려 하지 않아요. 제3자의 시선에서 이 인물을 일단 평가한 다음엔 거기에 끼워맞춰서 연기하게 될 것 같아서죠. 그런 것보다는, 이 인물이 뭘 원하는 건지, 어떤 삶을 향해 가고 있는지 등을 장면장면을 통해 찾아가곤 해요. 그 인물로서 최선을 다할 뿐이지, 그 캐릭터가 어떻게 보인다는 건 보시는 분들의 몫인 것 같아요. 그런데, 관객으로서는 동의합니다. 나쁜 놈이라고 생각해요."
지훈은 자수성가형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올챙이적 시절을 완벽하게 잊었다, 아니 지웠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그래서 안나조차 완벽한 결혼의 도구(?)로 삼았다) 세상의 상식에 반하든 말든, 오직 본인의 감정, 기분에만 충실했다. 그렇게 지훈표 '갑질'이 탄생했다.
![]() |
↑ 김준한이 '안나'에서 선보인 자신의 캐릭터 최지훈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사진|쿠팡플레이 |
그런 장면을 연기하면서 김준한은 어떤 느낌이 들었을까.
"촬영하는 동안 저는 인간 김준한으로서 평소에 생각하던 룰을 버리고, 그냥 최지훈이라는 사람이 생각하는 기준을 가지고 정말 생각하려고 했어요. '지금 내 기준은 이거다'라고. 그 기준을 갖고서 주변을 바라보니, 되게 답답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참 못알아듣네 싶었죠. 이 사람은 속도든 뭐든 모든 것들이 자기 기준으로 돼 있기 때문에, 거기에 따라오지 못하면 되게 답답함을 느끼는 거죠. 사실 살면서 그런 사람들을 저도 많이 목격했던 것 같고, 그들을 보며 '왜 저렇게 생각하지?' 했던 것들이 도움이 된 것 같아요. 그런 상상들이 최지훈 안에 녹아 있었을 겁니다."
그는 기억에 남는 주위의 피드백 중 배우 박용우가 콕 집어 언급한 최지훈의 디테일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노래방 장면에서 제가 보좌관 실무진에게 조용히 하라고, 손가락으로 쉿 제스처를 하는 게 있어요. 그건 대본에 있는 게 아니고 즉흥적으로 촬영한 건데, 정말 거슬려서 한 거였거든요(웃음). 그런데 배우분들은 역시 그걸 알아봐주시더라고요. 박용우 선배가 그걸 얘기해주셨는데, '형은 어떻게 이런 걸 봐주시지?' 싶었죠. 너무 신기했어요."
그렇게 최지훈에 푹 빠져 살았던 기간 중,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전했다. 일명 '과몰입' 증후군이다.
"촬영 중간이나 촬영 직후에는, 감독님이 자꾸 '눈 그렇게 뜨지 말라'고, '최지훈 눈 하지 말라'고 하셨어요(웃음). 저도 그 말을 듣고 나서 거울을 봤는데, 괜히 기분 탓인지 몰라도 제 눈빛이 바뀐 것 같더라고요. 무섭다고 할까, 사납다고 할까. 좀 무서운 눈이 돼 있었죠. 지금은 촬영 마친지 3개월 반 정도 됐는데, 최근 만났을 때 감독님이 이제 김준한으로 돌아왔네 하셨어요."
이주영 감독은 '안나' 호의 선장이었지만, 특히 김준한에게는 든든한 응원군이었다. 그는 "감독님은 응원을 많이 해주셨다. 캐릭터가 아닌, 배우 김준한에 대한 응원이었다. '제가 제대로 가고 있는 걸까요' 아쉬운 소리를 많이 하니까 '잘 가고 있다'고 안심시켜주시고, 가편집본 보여주시고. 응원을 많이 해주셨다"고 말했다.
![]() |
↑ 김준한이 '안나'를 통해 많은 가르침을 얻었다고 밝혔다. 사진|쿠팡플레이 |
'배우' 수지에 대한 느낌은 어땠을까. 그는 "수지에게 굉장한 변곡점이 되는 작품이겠구나 하는 걸 촬영하면서 실시간으로 느꼈다"고 수지의 연기에 대한 놀라움을 전했다.
"물론 수지가 아직 젊고 싱그러운, 파릇파릇한 모습도 가지고 있지만 뭐랄까요. 굉장히 깊이감 있는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가고 있구나 하는 걸 느꼈어요. 그런 것들을 잘 증명해냈다는 생각을, 관객으로서 작품을 보면서 더 느끼게 됩니다."
시청자 입장에서, 안나의 인생이 어디서부터 꼬인 것 같으냐는 질문에는 "치명적으로 꼬인 건, 안나라는 이름을 갖게 되면서부터가 아닐까 싶다"고 설명했다. "사실 그 전에 대학에 붙었다고 거짓말 한 것 자체도, 그게 자기의 버릇을 키우게 된 계기가 됐을 수 있을 겁니다. 그래도 한 번의 기회가 주어졌다고 생각해요. 자기도 그렇게 결심을 했었고. 그런데, 어떤 벽에 부딪치면서 자기 본질과 현실과의 충돌 속에서 안나로 되기로 결심한 순간이 굉장히 치명적인 순간이 아닐까 싶어요."
'안나'에서 '수지 남편' 최지훈이라는 캐릭터를 소화하면서 뜻하지 않게 무수한 원성(?)을 듣기도 했지만, 김준한이 작품을 통해 얻은 가능성이라는 수확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크다. "여러 모습을 봐주시는 게 감사해요. '슬의생'의 안치홍으로 봐주시기도 하고, 또 어떤 분들은 '안나' 최지훈으로서 가능성을 봐주시기도 하니까요."
그렇게, 김준한에게 '안나'는 어느 작품보다 큰 의미로 남았다.
"굉장히 큰 도전이기도 했으면서, 많은 가르침을 준 작품이었어요. 하면서 쉽지 않았죠. 약간의 번아웃 같은 느낌이 있기도 했어요. 많은 배우들이 작품 끝나고 나서 생각하듯, 제대로 못 한 것 같다는 자기비판도 있었고요. 그래도
[박세연 스타투데이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