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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지는 '안나'를 잘 표현하기 위해 심리상담사의 조언을 받았다고 말했다. 사진|쿠팡플레이 |
수지는 교복을 입은 10대 여고생의 모습부터 삶의 무게에 짓눌린 불안한 20대 청춘, 그리고 야망으로 거짓된 삶을 정당화하고 포장한 30대 사회인의 모습을 밀도 있게 그려냈다. 각 상황에 적합한 감정 열연으로 때로는 풋풋하고, 때로는 고됨에 지치고, 또 때로는 혀를 내두를 정도로 뻔뻔한 유미와 안나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기존의 '배우' 수지에 대한 편견과 한계를 완벽하게 깨부수는 데 성공했다.
총 6부로 제작된, 비교적 짧은 호흡의 드라마이지만 수지는 "짧긴 하지만 제 분량이 많아서 전혀 짧게 느껴지지 않았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이어 "뭔가 설명할 시간이 부족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한순간 한순간 소중히 임했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수지는 "작품 자체가 대사량이 많다기보다는 상황적으로 보여주는 게 많아서, 표정으로 전달해야 하는게 많았다"면서 "표정에 그런 감정이 잘 들어갔으면 좋겠어서 '왜 쟤가 나에게 저런 말을 하지' 등 유미와 안나의 감정을 생각하면서 표정 연기에 신경을 썼다"고 설명했다.
10대부터 20~30대까지의 캐릭터를 이질감 없이 소화한 수지. 의외로 걱정했던 부분은 "너무 어려보여서 30대 같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부분이었다고 털어놨다. 수지는 "감독님과 대화를 많이 나눴는데, 저희끼리는 외적으로는 안나는 관리를 열심히 받았을테니, 나중에 좋은 피부를 갖고 있었을 것이고 동안일 것이다 라는 얘기를 했다"고 말했다.
또 수지는 "뒤로 갈수록 자기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을 달성해나가는 과정이 있는데 저는 이게, 나이가 들면 들수록 처음 거짓말 할 때와 조마조마하는 과도기를 지나 '이게 되게 쉽네?' '사람들 바보같네?' 이런 지점을 넘어서 그게 되게 자연스러워지는 단계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교복신에 대한 부담은 없었는지 묻자 "저 6세 유미도 할 수 있다고 했을 정도로 자신감 있었다"고 말해 현장을 웃음바다로 만든 수지는 "교복 피팅을 봤는데 앞머리도 있고, 교복을 막상 입어보니 손색 없더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안나' 속 의상으로 이어졌다. 무려 300벌 넘는 의상을 소화한 것으로 알려진 수지는 "안나가 되고 나서부터는 초반 과도기일 때는 조금 우리 드라마에 많이 나오는, 촌스러움이 살짝 묻어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주는 고급스럽게 색을 과감하게 사용하는데 안나는 초반엔 살짝 촌스럽게 쓴 것 같다. 이후엔 색을 덜 쓰면서 욕망을 감추려고 무채색의 옷을 많이 입으려 했다"고 극중 안나의 초호화 패션에 숨은 디테일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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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지는 화제를 모은 `안나` 속 교복신에 대해 "자신 있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사진|쿠팡플레이 |
비록 짤막하게 편집됐지만 유미가 안나로 각성하기 전,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며 영혼 없이 일하는 장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진짜 일을 많이 했는데, 정말 출근한다는 생각으로 했고, 출근하자 마자 퇴근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했어요. 촬영 딱 들어가면, '나는 오늘 일을 하러 왔고 빨리 하고 집에 빨리 가야지'라고 생각했죠. 집에서 스트레스 풀려고 청소를 많이 하는데 그게 도움이 많이 된 것 같아요.(웃음)"
'안나' 제작발표회 당시, 캐릭터 소화를 위해 심리 상담가의 자문을 받았다고 밝혀 화제가 된 준비 과정에 대해서도 들려줬다.
수지는 "나는 유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지면 무기력하고 우울해지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했는데, 심리상담가 선생님은 우울과 불안 중 유미는 불안 쪽인 것 같다고 말씀하시더라"며 "우울이 무기력하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고 하면, 불안은 내가 불안하기 때문에 뭔가를 더 할 수 있게 보이는 건데, 유미의 동력은 불안인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아이는 누구보다 불안하기 때문에 평균보다 더 열심히, 강의를 위해 공부할 수도 있는 거고. 사실 거짓말도 에너지가 있어야 할 수 있는 것 "이라고 말했다. 또 유미의 특성에 대한 상담가의 조언을 통해 "눈깜박임이나 표정 등 디테일에 보다 신경쓰게 됐다"며 "큰 도움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수지는 또 이주영 감독을 비롯해 1, 2화에서 특히 호흡을 많이 맞춘 정은채와의 투샷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이주영 감독님과는 첫 작업이었는데, 고민의 지점이 비슷했던 것 같아요. 선을 넘는 지점들이 좀 있는데, '유미에 공감하지 않으면 이 작품은 큰일난다'는 생각이 있었죠. 유미에게 공감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서 이 거짓말의 어떤 초반과 과도기와 완전체 안나가 되었을 때의 정도를 같이 정하려 노력했어요. 현장에서도 재미있었어요."
유미가 안나로 각성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를 준 현주 역의 정은채에 대해서도 "서로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사실 정말 미묘하게 그런 감정을 느껴야 되는 거라서, 저도 대놓고 그런 감정을 온전히 느끼려 하지 않았어요. 어떻게 보면 서로 일방적인 연기를 하는데, 나 혼자 그 일방적인 감정을 줍줍해서 그때 당시엔 그 감정을 몰랐다가 뒤에 가서 곱씹는 느낌이었죠. 그냥 사회생활 하는 느낌으로, 관심도 없는데 영혼없이 '네네' 하는 그런 느낌으로 연기했죠. 그런데 어느 순간 유미가 상대적 박탈감을 세게 느끼고 나서부터는 조금씩 둘 사이에도 미묘한 균열이 보이면서, 기분을 약간 드러낸다든지 하면서. 상황 자체가 그렇기 때문에 서로 많이 도움을 받았던 것 같아요. 일기장에도 균열이 있던 장면에서는 '현주를 자극시켜봐야겠다' '내가 한 번 기어올라봐?'라고 썼던 기억이 있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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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지는 `안나` 연기를 위해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 사진|쿠팡플레이 |
"유미가 굉장히 학원 학생들에게 좋은 선생님처럼 대하는 장면이 그려졌지만 사실 유미는 학생들에게 1도 신경 안 써요. 그들은 유미에게 아무 의미가 없죠. 나의 이익을 위해 그들을 가르쳤던 거지 얘가 이렇게 좋은 대학에 붙었다는 게, 이렇게 될 일인가 싶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하고 질투도 났을 것 같고. 미묘한 감정이 들었을 것 같아요. 일단 기분이 썩 좋진 않다, 어이가 없네요 그런 느낌으로 했던 것 같아요. 거기서 유미의 본심이 좀 들통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연기했습니다."
극중 유미의 어머니가 청각장애인이라는 설정에 필연적으로 따라온 수어 연기 에피소드도 소개했다. 수지는 "대본에 있는 것 말고도 평소에 할 수 있는 수어를 배웠다. 너무 어려웠다. 선생님은 잘 알려주셨는데, 내가 안무를 했어서 그런지 좀 완벽하게 하려다 보니 딱딱하게 되는 게 있더라. 자연스럽게 대충대충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했다"고 걸그룹 출신으로서 겪은 나름의 고충(?)을 털어놨다.
또 수지는 "극중 청각장애를 가진 초등학생을 통역해주는 장면이 있는데, 갑자기 현장에서 수어 장면이 추가로 생긴 것이다. '저 어려운 걸 갑자기 추가하면 어떡해' 하면서 있었는데 어린이 배우가 바로 외워서 너무 잘하더라"며 "그래서 그걸 보며 반성했다. 이게 되네? 싶더라. 일기에도 썼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연기하면서 가장 수지의 마음을 흔들었던 대사는 무엇이었을까.
"일단, 유미가 자주 뱉는 대사 중 하나가, '잘해보고 싶어서 그래' '잘해보려 했는데 잘 안 됐어'가 있어요. 저는 그 대사가 유미의 어떤 기본적인 정서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정말 잘해보려 했는데 잘 안됐다는 게, 이게 유미에게는 굉장히 변명
[박세연 스타투데이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