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하고 미묘하다. 대담한 듯 비밀스럽고, 고전적이고도 독창적이다. 전작들과 다른 ‘결’일 뿐, 약하거나 얕은 게 아니다. 한껏 (폭력·선정성 등) 수위를 낮췄지만 (그렇다고) 대중적이진 않다. 함축된 메시지, 다양한 메타포보다도 그 분위기와 아우라에 압도된다. ‘시네 필’들을 위한 박찬욱표 서스펜스 멜로, '헤어질 결심'이다.
산 정상에서 추락한 한 남자의 변사 사건. 극심한 불면증을 앓고 있는 형사 '해준'(박해일)은 사망자의 아내 '서래'(탕웨이)와 마주하고는 묘한 기운을 느낀다. 남편의 죽음 앞에서도 특별한 동요를 보이지 않는, 서투른 한국어로 독특한 문장을 구사하는'서래'. 경찰은 보통의 유가족과는 다른 그녀를 용의선상에 올린다.
두 사람은 마치 ‘안개’ 같다. 거리를 두고 보면 짐작할 수 없는 마음을 가졌고, 아주 예민하고 비밀도 많지만, 정말 가까운 사람에게는 무장 해제 된다. 자신도 모르게 스스륵 잠이 들고 위험한 비밀도 술술 풀어 놓는다. 해준의 아내 정안이 있는 곳은 ‘안개’가 많이 끼는 이포군이고, 중요한 순간 마다 사건의 시야를 흐리는 것도, 흘러나오는 노래도 모두 ‘안개’다.
영화는 말 그래도 인생의 굴곡을 경험한, 사연이 좀 있는(많은) 어른들의 사랑 이야기이다. 뭣 모르고 마냥 예쁘고 순진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제대로 알거나, 이성적이지 만도 않다. 사랑의 본질 그대로 혼란스럽고 무모하고 붕괴시킨다. 숨기고 숨겨도 결국 쏟아져 나오는 감정이다. 헤어질 결심을 할지라도.
산에서 시작해 바다로 이어지는 공간의 변화, 의심과 관심을 오가는 관계의 변화, 수사 과정에 따라 밝혀지는 진실의 변화에 따라 켜켜이 쌓여가는 두 사람의 감정, 여기에 수사극과 멜로극이 결합한 오묘한 조합, 소소한 유머들과 박찬욱 감독 특유의 감각적인 미장센과 연출력이 한 데 섞여 조화를 이룬다.
사실 전반부는 다소 늘어진다. 중간 중간 더러 사족도 눈에 띤다. 유머 코드 또한 예상보다 많은데 타율은 그다지 높지 않다. 수사극으로서의 묘미나 긴장감, 매력 지수도 크지 않다. 이 영화의 진면목은 중반부터 발색되기 시작해 엔딩에서 정점을 찍는다. ‘사랑의 본질’에 대한 박찬욱표 탐구는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이요, 사랑으로 인한 ‘채워짐과 공허함’은 씁쓸함 그 자체다. 마치 불면증과 같은, 불편하지만 지워낼 수 없는, 불가항력의 짙은 여운을 남긴다.
‘헤어질 결심’은 극장에서 팝콘과 함께 누구나 편안하게 즐길 만한 영화는 아니다. 다소 우울하고 모호한, 약간의 지루함과 답답함도 느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끝까지
[한현정 스타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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