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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역 최고령 MC인 방송인 송해가 8일 별세했다. / 사진=연합뉴스 |
'국민 MC' 송해(95·송복희)가 오늘 서울 도곡동 자택에서 별세했습니다. 대한민국방송코미디언협회에 따르면 고인의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며, 장례는 코미디언협회 희극인장으로 치러집니다.
경찰과 의료계에 따르면 송해는 오늘 오전 서울 강남 자택에서 별세했습니다. 송해는 올 들어 1월과 5월 건강 이상으로 병원에 입원했으며, 3월에는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에 확진돼 치료 받는 등 건강상의 어려움을 겪다 95세를 일기로 영면했습니다.
1927년 4월27일 연백 평야가 있는 황해도 재령에서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송해의 본명은 송복희(宋福熙)로 피란 도중 바닷물로 밥을 지어 먹은 뒤 '바다 해(海)를 사용해 이름을 다시 지었습니다. 그는 해주예술학교에서 성악을 배우고 3년8개월 동안 군 생활을 한 뒤 1955년 '창공악극단'에서 데뷔했습니다. 그곳에서 사회를 보고 노래를 부르며 경험을 쌓은 그는 동아방송, MBC 등에서 본격적으로 방송활동을 했습니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은 국내 최장수 프로그램인 KBS1 '전국노래자랑'입니다. 그는 초대 MC 이한필을 시작으로 이상용, 고광수 아나운서, 최선규 아나운서 등에 이어 1988년 5월부터 35년 간 '전국노래자랑' MC를 맡아왔습니다. 코로나 이전까지 전국 지역을 돌며 출연자, 관객들과 호흡하며 웃음과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그는 34년간 공개 녹화를 통해 무려 1000만 명 넘는 사람을 만났으며 '일요일의 남자'라는 수식어를 얻고 국민 MC로 인정 받았습니다.
송해는 지난달 영국 기네스 '최고령 TV 음악 경연 프로그램 진행자'(Oldest TV music talent show host)로 등재되기도 헀습니다.
송해는 고령에도 30년 넘게 지하철을 이용하며 3호선의 유명인사로 알려져있습니다. 자택이 있는 서울 매봉역 인근에서 원로연예인상록회 사무실이 있는 낙원동 근처 종로3가역까지 거의 매일 지하철 3호선을 타고 다녔습니다.
그는 계단과 에스컬레이터를 오가며 하는 걷기 운동을 최고의 건강관리 비결로 꼽았습니다. 실제로 그는 일상 속에서 일명 BMW(버스(Bus)‧지하철(Metro)‧걷기(Walk))라 일컬어지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체력을 다졌습니다. '전국노래자랑' 녹화를 위해서도 늘 대형 전세버스에 동승해 이동했습니다. 지하철에서 자신을 알아보는 시민들과도 격의 없이 소통했고, 지방 공연 때도 전철을 타고 서울역에 가서 KTX를 타고 이동했습니다.
송해가 좋아하는 음식은 국밥과 소주였습니다. 서울 종로2가 교차로에서 탑골공원 안쪽으로 약 200m 들어가면 나오는 '이천원 국밥집'은 그의 단골집이었습니다.
그는 4000원 이발소를 이용하고 길을 걷다 붕어빵을 사 먹기도 했습니다. 송해는 '매일 소주 3병'이 건강비결이라고 할 정도로 애주가로 알려졌습니다.
송해는 "매일 오후 4시 종로에 위치한 목욕탕을 간다"면서 "목욕이 정말 건강에 좋다. 땀구멍이 있지 않나. 몸이 무거워지는 이유는 노폐물이 쌓여서 그런 것이다. 그럴 땐 땀을 흘려서 노폐물을 빼줘야 한다"라며 '전국노래자랑' 녹화 전날 대중목욕탕에서 시민들과 소통하기도 했습니다.
90세를 넘어서까지 '전국노래자랑' MC로 진행을 맡아왔으나 최근 건강상의 이유로 '전국노래자랑' MC에서 34년 만에 하차하는 것을 논의 중이라는 소식이 알려져 안타까움을 사기도 했습니다. 결국 그는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평생 어머니와 누이동생 등 가족과 고향을 가슴에 품고 살아온 그의 소망은 고향인 황해도 재령에서 '전국노래자랑'을 개최
송해는 1994년 교통사고로 아들을 먼저 보내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유족으로는 두 딸이 있습니다.
누리꾼들은 "방송계의 큰 별이 졌다" "지난 30년 고생하셨다. 좋은 곳에서 편히 쉬셔라" "많이 그리울 겁니다" "좋은 삶을 사셨나 보다 다들 슬퍼하네요" 등의 애도를 표했습니다.
[디지털뉴스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