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린마더스클럽’으로 시청자를 만난 김규리. 사진ㅣ강영국 기자 |
“물고기가 드디어 물을 만나 숨이 쉬어지는 것 같았다”고 감회를 밝힌 그는 “희한하게 그림을 그리니까 작품이 들어왔다”며 산고 같았던 긴 기다림의 시간을 표현했다.
최근 북촌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규리는 “종영 인터뷰는 처음이다. 이번엔 시원하단 느낌은 없고 아쉽기만 하다”는 말로 작품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전했다.
6%로 종영한 JTBC 수목드라마 ‘그린마더스클럽’(극본 신이원, 연출 라하나)에서 그는 예민하고 감수성 짙은 아티스트 ‘아웃사이더맘’ 서진하부터 자유로운 영혼 프랑스 교포 레아를 넘나드는 1인 2역을 연기했다.
서진하는 겉으로는 완벽해 보이지만 부모와 남편, 그 누구로부터 사랑받지 못하는 인물로, 극 초반 죽음을 선택한 비운의 인물이었다. 이후 서진하 남편 루이(최광록 분의) 내연녀 ‘레아’로 깜짝 재등장해 시청자들을 놀라게 했다.
↑ ‘그린마더스클럽’은 자신의 비밀을 지키기 위한 엄마들의 치열한 심리전으로 긴장감을 선사했다. 사진ㅣ강영국 기자 |
“저희는 선택하기 보단 기다려야 하는 직업이잖아요. ‘헤~’ 하고 있을 때 ‘짠!’ 하고 다가와 준 작품이죠. 4명은 이미 캐스팅 됐고 마지막에 제가 캐스팅 됐는데 작가로서의 느낌이나 분위기를 잘 표현할 수 있는 배우가 누가 있을까 고민하다 ‘김규리 어때?’ 해서 제가 다가와 준 작품이죠. ‘서진아가 겉으로는 보면 다 갖춘 완벽한 여자인데 알고 보면 내적인 결핍이 너무 강해서 스스로를 갉아먹는 불안한 존재예요. 제가 느끼는 인생의 고민이나 전하고 싶은 메시지들을 그림으로 표현하는데, 서진아도 그런 부분에선 맥이 닿아 있는 것 같아요.”
드라마는 초등 커뮤니티의 위험한 민낯과 엄마들의 수상한 관계망을 그리며 몰입감을 불어넣었다. 무엇보다 자신의 비밀을 지키기 위한 엄마들의 치열한 심리전은 쫄깃한 긴장감을 선사했다. 드라마에는 타이거맘, 신입맘, 아웃사이더맘, 스칸디맘, 알파맘 등 다양한 엄마 유형들이 등장한다.
결혼도 안 한 미혼이지만, 엄마 역을 연기하는 데는 부담감이 없었다고 한다. “엄마 역은 어렸을 때부터 해서 괜찮다”며 “이미지에 관한 것은 고민이 없었다”고 했다.
다른 두 캐릭터를 만들어나가는데 가장 포인트를 준 것은 스타일이었다. “드라마에서 입고 나오는 옷 99%는 직접 준비했다”며 “의상에 대한 피드백이 있을 때 칭찬해주는 느낌이 컸다”고 돌아봤다.
“진하와 레아는 완전히 달라야 했어요. 진하는 여성스럽고 우아한 느낌으로, 레아는 보이시 하면 어떨까 했어요. 동대문 뛰어다니고 디자이너 선생님들 옷장 다 뒤져보고 해외사이트도 뒤졌죠. 그래도 못 구하면 맞춰 입었고요. 제 출연료를 거기 다 쏟아부었던 것 같아요. 흑흑. 처음 연기를 시작했을 땐 옷, 헤어스타일 모두를 제가 직접 다 했어요.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분업화 됐는데, 이번에 옛날 방식을 다시 해보니까 3~4배 준비하는 시간은 더 길어졌지만 거기에서 오는 만족감이 컸어요.”
↑ 김규리는 결혼도 안 한 미혼이지만, 엄마 역을 연기하는데 부담은 없었다고 했다. 사진ㅣ강영국 기자 |
김규리는 20년이란 세월을 훌쩍 넘어 재회한 이요원과의 호흡을 묻자 “아무 것도 아닐 때부터 친했던 사이라 배우 대 배우로 만났을 때 감회가 새로웠다”고 했다. “현장에서 눈만 보면 웃었다. 따귀를 때리는 장면에서 요원이한테 두려워하거나 주저하지 말고 때리라고 했고, 별 문제 없이 촬영을 마쳤다”고 돌아봤다.
극중 남편으로 호흡을 맞춘 모델 겸 배우 로이(최광록)에 대해서는 “얼굴이 너무 작아 항상 앞으로 가라고 했다”며 농담조로 말했다.
“호흡 하나에 전체 신의 톤이 달라질 수 있는데, (로이는) ‘이렇게 하면 어때?’ 물어보면 굉장히 그걸 빨리 받아들이는 친구였죠. 이번 작품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선보였는데, 앞으로 충분히 잘 해낼 수 있으리라고 믿어요.”
‘그린마더스클럽’은 여성들의 우정과 가족애, 엄마들의 이야기도 깊이 있게 다뤘다.
김규리는 “현장에서도 같이 얘기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며 “민경이와 저만 빼면 모두 엄마들이라 결국 내가 아직 경험하지 않은 여자의 삶을 살고 있으니까 신기하고 존경스럽다”고 털어놨다.
↑ 영화 ‘미인도’에서 혜원 신윤복을 연기하면서 그림에 입문한 김규리는 한국화 화가로도 활동 중이다. 사진ㅣ강영국 기자 |
“인생은 계획처럼 안 흘러가더라고요. 이번 드라마도 인연이 될 줄 몰랐는데 제게 다가와줬잖아요. 막막하긴 하지만 언젠가 인연이 오지 않을까 생각해요.”
김규리는 배우이자 동양화가로도 활동 중이다. 2008년 영화 ‘미인도’에서 혜원 신윤복을 연기하면서 그림에 입문한 뒤 한국화 화가로 다양한 작품 활동을 해오고 있다. 올해 4월 경기 안산시 김홍도 미술관에서 ‘호랑이’를 주제로 작품전을 열기도 했다. 그가 그림에 매료된 이유는 온전히 자신이 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연기할 때는 항상 불안함이 내재되어 있어요. 선택 받기 전까진 주체적이지 못하죠. 그림은 붓만 들면 돼요. 언제든지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하면 되죠. 그동안 기회에 목말랐다면 그림을 통해 그 기회를 만들어갈
[진향희 스타투데이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