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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 강수연 영결식 사진=故 강수연배우장례위원회 |
11일 오전 10시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는 故 강수연의 영결식이 진행됐다. 이날 사회는 배우 유지태가, 추도사는 김동호 강릉국제영화제 이사장, 임권택 감독, 배우 문소리, 설경구, 연상호 감독이 맡았다.
유지태는 “전혀 실감이 안나고 있다. 영화 속 장면이었으면 했다. 수연 선배님을 떠나보내는 자리에 가족분들과 영화계 선후배 여러분들이 함께 해주셔서 고맙다”라고 말했고, 묵념으로 고인을 기리는 시간을 가졌다.
김동호 이사장은 “우리 영화인들은 참으로 비통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모였다. 배우 강수연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모든 분들이 믿기지도 않고 믿을 수도 없는 참담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오늘 이 자리에서 당신을 떠나보내고자 한다. 수연 씨,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우리가 자주 다니던 만두집에서 만난 지 채 한 달도 안 됐는데, 졸지에 내 곁을 떠나가니, 건강하게 보였는데 이게 어찌된 일이냐. 모스크바에서 처음 만난 지 33년이 흘렀다. 그동안 아버지와 딸처럼, 오빠와 동생처럼 일해왔는데 나보다 먼저 떠날 수 있냐”라며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강수연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장시간 머물면서 영화제를 빛내준 별이었고 상징이었다. 21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월드스타라는 왕관을 쓰고 당신은 참으로 힘들게 살아왔다. 명예를,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버티면서 더 명예롭게, 더 스타답게 견디며 살아왔다. 당신은 억세고도 지혜롭고도 또 강한 가장이었다. 어려움 속에서도 내색하지도 않고 부모님과 큰오빠를 지극정성으로 모셔왔고 동생을 잘 이끌어 왔다. 타고난 범접할 수 없는 미모와 의형을 갖추면서 남자 못지 않은 강한 리더십과 포용력으로 후배들을 사랑하고 믿음으로 뒤따르게 하면서 살아왔다. 이제 오랜 침묵 끝에 새로운 영화로 타고난 연기력으로 새롭게 도약하는 강수연의 모습을 보게 되리라고 믿고 기뻐했다. 그 영화가 유작이 되리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처음 응급실에서, 중환자실에서 비록 인공호흡기를 정착하고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도 평온한 모습으로 평화로운 모습으로 누워있는 당신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강수연, 당신은 오늘 우리 곁을 떠나서 지상의 별이 져서, 당신은 천상의 별로 우리 영화를 비추면서 끝까지 더 화려하게 우리를 지켜줄 것이다. 강수연 씨, 부디 영면하기를 바란다”라고 이야기했다.
이후 고인의 작품과 이력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외국에서 전달된 추모 영상도 공개됐다. 대만영상위원회부위원장 제니퍼 자오 이사는 “친구들에게 보여주셨던 우정과 다정함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존경했고 지금 그리워 하고 있다. 다른 세상에서 당신이 행복하길 바란다. 당신을 축복하겠다”라고, 배우 양귀매는 “당신이 우리 곁을 떠났다는 사실을 아직도 받아들일 수 없다. 당신은 최고의 영화 예술가이며 가장 친절하고 따뜻한 친구였다. 신을 따라 아름다운 곳으로 가길 기원하겠다”라고 인사했다.
임권택 감독은 “수연아, 친구처럼, 딸처럼, 동생처럼 네가 곁에 있어 늘 든든했는데. 뭐가 그리 바빠 서둘러 갔냐. 편히 쉬어라”고 애도했다.
설경구는 “수연 선배님, 한 달 전에 오랜만에 통화하면서 할 이야기가 많다고 빨리 보자고 했는데, 곧 있으면 봐야 하는 날인데, 지금 선배님의 추도사를 하고 있다. 이제는 볼 수가 없다. 너무 서럽고 비통하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울컥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어 “너무 비현실적이고 이것이 영화의 한 장면이라 해도 찍기 싫은 끔찍한 장면인데, 이 자리가 너무 잔인하다. 뒤죽박죽 추도사가 될 것 같다. 용서해주셔라. 강수연 선배님과는 1998년 ‘송어’라는 영화를 찍으며 첫 인연이 됐다. 영화 경험이 거의 없던 나를 하나부터 열까지 세세하게 가르쳐주면서 이끌어주셨다. 영화가 예산이 적은 작은 영화라 모든 것이 열악했고, 스태프들이 먹는 것도 부실하지 않을까 속상해하며 전체 회식을 시켜주시기 시작했고, 주기적으로 모두를 촬영 마칠 때까지 챙겨주신 선배님이다. 팀 막내들 회식 때는 나는 연기부 막내로, 서드는 연기부 서드로, 퍼스트부는 퍼스트로 챙겨주시며 직접 보여주면서 알려주고 가르쳐주셨다. 선배님의 막내고, 세컨이고, 퍼스트였던 것이, 선배님의 조수였던 것이 너무나도 행복했다. 알려지지 않은 배우였던 나에게 앞으로 계속 용기와 희망을 주셨고, 선배님의 영원한 조수였고, 선배님은 영원한 나의 사수였다. 나의 애정, 세심한 배려를 보여주셨다. 비단 나뿐 아니고 모든 배우들에게 무한 애정과 사랑을 주신 걸로 알고 있다. 배우들을 너무 좋아했고,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했던 배우들의 진정한 스타였다. 새까만 후배들부터 한참 위 선배님들까지 다 아우를 수 있는 전혀 어색하지 않은 거인 같은 대장부였다. 소탈했고 친근했고 섬세했고 영화인들의 애정과 자긍심이 충만했던 선배님이셨다. 어딜 가나 당당했고 어디서나 모두를 챙기셨다. 너무 당당해서 너무 외로우셨던 선배님. 아직까지 할 일이 너무 많고 할 수 있는 일, 해야할 일이 너무 많은데 너무나 안타깝고 비통할 뿐이다. 그러나 선배님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별이 돼서 우리에게 빛을 주고 함께 할 거다. 언제든 어디든 어느 때든 찾아와 주셔라. 너무 사랑했던 배우들에게 찾아와 다독여주시고, 감독님, 스태프들과 함께해주시고, 끝으로 행복해했던 촬영장 많이 찾아주시고, 극장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해주십시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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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 강수연 발인 사진=故 강수연배우장례위원회 |
다음으로는 문소리가 추도사를 진행했다. 그는 오열하며 “친구랑 같이 콩국수 먹고 키우던 화분 분갈이를 하고 그러고 있는데 언니가 영원히 눈을 감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허망한 마음으로 멍하니 그냥 앉아 있었는데 친구가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를 들고 나왔다. 그 LP를 한참을 들었다. 언니의 여전한 당돌한 목소리가 너무 좋아서, 울면서 봤고, 웃으면서도 봤고, LP판 뒤에 쓰여진 글도 한참을 들여다 봤다”라고 밝혔다.
그는 “갑자기 피식 웃음이 났다. 영화의 세계가 땅에만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재미난 이야기를 만들면서 노는 게 어디 하늘에서 못하겠냐. 거기 가면 故 이춘연 대표님도 계시고, 故 이규형 감독님, 부산에서 함께한 故 김지석 님도 계실텐데 언니 거기서 그분들이랑 영화 한 판 하세요. 마음이 잘 맞을지 모르겠지만, 우리 늘 그랬지 않냐. 싸워가며, 웃어가며. 그래도 그 가운데 언니가 있다면 뭐든 해결이 될 것 같다. 언니 잘가요. 한국 영화에 대한 언니 마음 잊지 않을게요. 언니 가고도 목소리도 잊지 않을게요. 그리고 여기서는 같은 작품 못했지만, 이 다음에 우리 만나면 같이 영화해요”라고 인사했다.
故 강수연의 유작을 함께하게 된 연상호 감독도 추도사를 했다. 그는 과거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했을 당시를 회상했다. 칸 영화제 관계자가 자신에게 어떤 이야기를 했으나, 알아듣지 못하고 있을 때 故 강수연이 통역해준 일을 언급했다.
연상호 감독은 “그 칸 영화제 관계자가 어떤 말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하나의 의문만이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어쩌다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배우이자 스타가 해외 관계자 영화 앞에서 쩔쩔매는 젊은 독립 애니메이션 감독을 위해 통역을 자처하였을까 하는 거다”라며 “선배님은 한국 영화를 연기로서 세계에 알리며, 영화제 일을 하며 한국 영화가 세계에 알려지는 걸, 마치 자기일처럼 나섰다. 자기 일처럼이라는 말을 두고 정정해야 할 것 같다. 마치 자신이 한국 영화인 것처럼. 앞서 의문의 답은 강수연 그 자체가 한국 영화였기 때문이다. 그 자체가 한국 영화라는 무거운 멍에를 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몇 년 전 한 영화를 기획했다. 한국에서 아직 잘 시도 되지 않던 SF 장르의 영화였다. 새로운 시도라 두려움도 컸다. 도대체 어떤 배우와 함께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그때 머리에 떠오른 배우가 강수연 선배님이다. 한국 영화의 아이콘이자 독보적 아우라를 가진 선배님과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떠오르자 다른 배우는 떠오르지 않았다. 용기를 내 전화를 걸어 시나리오를 보내드리고 몇 번의 만남 끝에 선배님이 ‘그래 한 번 해보자’라고 하셨을 때 뛸 듯이 기뻤다. 마치 나에게 든든한 빽이 생긴 것 같았다. 그 당시에도, 촬영을 하면서도 강수연이라는 거대한 배우와 내가 이렇게 각별한 사이가 될 줄은 몰랐다. 이 영결식이 끝나고서는 강수연 선배님과 영원한 작별을 하는 대신, 다시 작업실로 돌아가 강수연 선배님과 얼굴을 마주하고 함께 선보일 새 영화를 고민해야 한다. 배우 강수연의 연기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한국영화 그 자체였던 선배님, 이제 선배님의 마지막 영화를 함께하며 수많은 사람들한테 선배님의 영화를 선보이기 위해 끝까지 동행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선배님의 든든한 빽이 되어 주겠다”라고 이야기했다.
고인의 동생은 “마지막 가는 길 함께해준 분들께 감사하다. 여러분 덕분에 허망하고 쓸쓸할 뻔 했던 이별의 시간을 춘목으로 채울 수 있었다. 영화와 일생을 함께했던 강수연 배우가 영원히 기억되길 소망하며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 드린다”라고 답사를 했다. 추도사와 답사가 끝난 뒤에는 조문객들이 故 강수연에게 묵념을 하며 고인을 추모했다. 고인의 영결식이 끝난 뒤에는 발인이 진행되며, 장지는 용인추모공원이다.
한편 故 강수연은 지난 5일 뇌출혈로 쓰러져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옮겨져 치료를 받았으나, 지난 7일 결국 세
고인은 임권택 감독의 영화 ‘씨받이’(1987)로 베네치아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이는 한국 배우로 최초로 세계 3대 영화제 수상이다.
이후 故 강수연은 ‘아제 아제 바라아제’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경마장 가는 길’ ‘그대안의 블루’ ‘여인천하’ 등에도 출연해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남경 MBN스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