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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방송된 tvN '벌거벗은 세계사'에서는 삼국지의 모태가 된 초한지의 두 영웅, 항우와 유방에 대해 알아봤다.
이날 강연자로 나선 이성원 교수는 초한지의 진짜 역사적 배경인 '진한 교체기'를 조명하게 됐다. 이성원 교수는 "중국 역사상 최고의 용장이라 불린 항우가 영화 '패왕별희'의 패왕이 바로 항우를 가리키는 말"이라 설명했다. 유방은 뛰어난 참모들을 이끈 용인술의 천재로, 유방은 중국 문화의 정체성과 정신적 근간을 만든 한나라를 세웠다.
이 교수는 중국 역사상 최고의 라이벌인 항우와 유방을 비교했다. 그는 "항우는 초나라의 명문가, 무장 귀족 가문 출신으로 산 손으로 청동 솥을 들 정도로 무예도 뛰어났다"고 말했다. 그는 "항우와 달리 유방은 가난한 농민 출신으로 특별히 많이 배우지도 못했고, 유방은 40세가 넘은 나이에 술과 여색을 좋아했다고 사마천에 나와있다"며 "지금으로 보면 한량같은 사람이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성장 배경조차 전혀 다른 두 사람이 역사 속에서 만나 유방이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이 놀라움을 자아냈다. 이 교수는 "두 사람의 싸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밝혀 의문을 안겼다. 그는 "장기판 아시냐"며 "장기판 한자에 한나라와 초나라가 써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것은 시대를 넘어 지금까지도 두 사람의 대결이 장기판에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라 말했다.
이처럼 전혀 다르게 살던 두 사람은 어떻게 세기의 라이벌이 된걸까. 이 교수는 "그건 한 인물 때문"이라 말해 호기심을 자아냈다. 그는 진시황제의 사진을 보이며 역사를 설명했다. 진시황제가 죽은 후 호해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고, 진나라는 급격하게 혼란에 빠졌다. 황실에선 간신들이 황제를 대신해 국정을 농단했고, 민심은 점점 흉흉해졌다고.
바로 그때, 흉흉한 민심에 불은 붙인 한 사람, '진승'이 등장했다. 그는 원래 자신의 조국이던 초나라 재건을 위해 반란을 일으키게 됐다. 그는 "그때 이 사람이 대단히 선언적인 말을 했다"며 "바로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겠는가'라는 말"이라 말해 감탄을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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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수는 "사마천의 사기에 의하면, 유방이 술집에만 가면 구름같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고 돼있다"고 말했다. 이에 규현은 "인플루언서"라고 말해 공감을 자아냈다.
그는 "부유한 지역 유지였던 여공이, 유방의 관상만 보고 자신의 딸을 시집보내기로 결심했다고 한다"고 말해 놀라움을 자아냈다. 이에 규현은 "따님 의중은 상관없이 그냥 관상 하나만 본 거냐"며 놀라워 했다. 이 교수는 "바로 용안이라는 표현 자체가 유방의 얼굴에서 나온 말"이라 설명했다.
유방은 부유한 집안 딸을 아내로 맞아들이고, 집안으로부터 정치적 후원을 받게 되고, 나중에 그 유방의 아내는 황후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그 아내는 바로 유명한 '여태후'가 된 사람.
항우와 유방 두 사람은 리더십마저 정반대였다. 항우는 잔악무도한 공포의 리더십으로 군대를 이끌었다. 병사들은 진나라 격파에 실패하면 연합군이 자신들을 포로로 만들거나 가족들까지 멸살할 수 있다는 불안에 떨었고, 이 소식이 항우의 귀에 들어갔다. 이 교수는 "진나라 군사들이 반란을 일으킬까 우려해 항우는 극단적 결정을 내렸다"며 "그날 밤 신안에서 항우는 병사 20만명을 생매장했다"고 말했다.
유방은 바로 함양으로 가지 않고, 우회전술을 벌여 무관을 공략했다. 유방은 진군하며 어떤 소식을 퍼뜨린 덕분에 많은 성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고. 바로 성을 함락하더라도 태수들(현 도지사)의 지위를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던 것. 마침내 관중 입성의 영예는 유방이 가져가게 됐다.
항우가 유방을 죽일 계략을 짜던 중, 유방의 최측근 장수 '번쾌'는 항우의 막사 안으로 들어가 술을 청했다. 번쾌는 "저의 주군인 유방은 함양에 입성 후 항우 장군을 기다렸는데, 항우 장군은 어찌하여 유방의 공을 치하하지 않고 주살하려 하시냐"고 당당하게 물었다고. 이 당당함에 항우는 또 망설이게 됐다고. 그 사이 유방은 화장실에 가겠다며 슬쩍 자리를 피했고, 그대로 줄행랑쳤다.
이 교수는 "항우는 자존심이 셌다. 나 위대한 항우가 무엇이 두려워 유방을 죽이려 하는가,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라며 "항우의 책사이던 범증은 '내가 어린아이와 천하를 도모하려 했구나. 앞으로 천하를 차지할 자는 유방이 될테고 우리 모두는 그의 포로가 되겠구나'라고 탄식했다"고 설명했다.
항우는 유방을 풀어준 최대의 실수 이후에도 치명적인 세 가지 실수를 저질렀다. 먼저 첫번째 큰 잘못은, 진나라 수도인 함양에 도착한 다음 또다시 대학살극을 벌인 것이었다. 이혜성은 "자꾸 적을 만든다. 포섭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복수심에 불탄 항우는 항복한 진왕마저 처형했고, 왕족과 관리를 처형하고 온갖 금은보화를 약탈했다.
그렇게 항우는 진나라 사람들에게 공포의 상징이 됐고, 대비되는 모습을 가졌던 유방은 오히려 진나라 사람들에게 마음을 얻게 됐다.
항우는 천하를 차지하고 황제가 될 기회를 잡았고, 천하통일의 교두보인 관중을 차지해야 했다. 하지만 항우는 자신이 관중 땅을 차지하지 않겠다고 말�g다. 고향에 돌아가 진나라를 멸망시킨 업적을 인정받고 싶었던 것. 이것은 정치가로서는 크나큰 두번째 실수였다.
항우의 마지막 잘못은 고향으로 돌아가 자신의 친분에 따라 땅을 나눠줬던 것. 제후들이 불만에 가득 찼고, 항우는 반란군을 진압하며 또 다시 강경 일변도의 진압을 펼쳤다. 역사 연구가들은 이 진한 교체기 때 당시 중국 인구의 3분의 1 가량이 줄어든 것으로 추정한다고. 이것이 바로 항우의 세번째 패착이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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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가던 유방은 항우에 대패한 뒤 형양에서 농성했다. 한신은 전세를 뒤집고 항우를 압박하려 서초의 북방 지역 공략을 계획했다. 위나라를 공략하고 정형으로 넘어가 조나라를 공략하고, 돌아서 또 양국, 역학, 임치, 고밀, 성양까지 까지 이르는 서초의 외곽을 두르며 외부 세력의 접근을 차단했다.
유방은 항우의 책사였던 범증을 떼어놓기 위해 '반간계', 즉 이간질에 성공했다. 범증 제거에 성공한 유방은 탈출을 감행하게 됐다. 여성들 2000여 명에게 갑옷을 입혀 성에서 나가는 것처럼 위장했고, 항우의 군대가 그들을 잡느라 혼비백산한 틈을 타 탈출했다.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한 항우는 유방의 아버지와 아내를 인질로 잡고 있었다. 항우는 유방에게 "지금 바로 항복하지 않으면 너희 아버지를 삶겠다"고 협박했다. 하지마 유방은 항우의 자존심을 건드려 "내 아버지가 곧 네 아버지다. 꼭 네 아버지를 삶아 죽이겠거든 나에게도 국 한 그릇 나눠주길 바란다"고 대담하게 나갔다.
그 이후로도 항우는 계속해서 유방을 자극하며, 일대일로 싸우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유방은 "나는 머리로 싸움을 하는 사람"이라며 심리전을 이어갔다. 결국 두 사람은 휴전 협정을 맺고 천하를 양분하기로 합의를 맺었다.
하지만 유방은 책사 장량을 간언을 받아들였다. 바로 협정을 깨고 항우를 치라는 것. 이혜성은 "유방이 협정을 일방적으로 깬 건 너무 신의가 없는 행동 같다"고 말했다. 동애영은 "중국에서도 그래서 유방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며 "실리를 위해서라면 뭐든 가리지 않고 행하기 때문"이라 설명했다.
그렇게 유방은 말머리를 돌린 항우를 추격, 마지막 전투가 시작됐다. 유방은 항우가 고립된 해하성 밖에서 유방네 고향 초나라의 노래를 연주, 항우의 군대의 사기를 완전히 꺾어버렸다. 여기서 유래된 사자성어가 바로 사면초가. 사방에서 초나라의 노래가 들려온다는 의미다.
유방은 흙수저에서 한나라의 황제가 됐고, 한신이라는 명장까지 죽이며 나라의 안정을 꾀했다. 그렇게 약 400년 동안 고대 제국을 유지했다. 평범한 농민에서 한나
[박새롬 스타투데이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