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밤 방송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에서는 '입속의 혀-유괴범과 꼭두각시들' 이야기가 공개됐다. 이날 게스트로는 에일리, 김태균, 한승연이 출연했다.
장도연은 "사건 당시 김정남 마포경찰서 반장, 이재무 마포경찰서 반장은 별명이 '김강력' '이폭력'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이 두 베테랑이 한 사건에 달라붙은 것"이라 말해 사건에 대한 의문을 높였다.
두 전 반장은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그 사건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냐고 시민들이 경찰서에 많이들 문의하신다"고 말해 호기심을 자아냈다.
사건 당시였던 1980년 11월 13일, 마포구의 한 가정집에 결려온 전화 한 통. 하지만 느낌이 싸했다. 아들이 늦게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고 있던 것. 부모님이 받은 수화기 너머로는 "당신 아들 내가 수원에 감금시켰다. 아들 찾고 싶으면 4000만원 준비하라"는 범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괴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건 아이의 안전을 위해 유괴범 몰래 비밀리에 수사하는 것. 그래서 극비수사가 시작됐다.
납치된 아이는 당시 중학교 2학년 진학을 앞둔 키 165cm의 이우진 군. 형사들은 아이의 동선을 먼저 파악했다. 우진 군은 두 살 터울 누나의 참고서를 대신 사러 서점으로 먼저 향했다고.
우진 군의 마지막 목적지는 버스 정류장. 거기서 네 시 반에 학교 체육 선생님을 만나기로 했는데, 약속 장소에 우진이가 나오지 않은 것. 선생님은 10분 정도 기다리다 우진이 나오지 않자 대학원 수업 때문에 이동했다고.
실종 추정 시간은 4시 15분에서 4시 30분 사이. 의문점은 백주대낮에 큰 대로변에서 일어난 유괴 사건임에도 목격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것. 실랑이도 없이 자연스레 아이가 따라가려면 범인은 면식범이어야 했다.
범인은 전화를 걸어, 우진이 누나에게 돈을 들려 보내라고 명령했다. 1980년 11월 20일, 납치 7일째 종로의 한 빵집으로 딸과 엄마가 향했다. 약속 시간이 지나도 범인이 나타나지 않았고, 빵집으로 범인의 전화가 걸려왔다. 형사 없이 혼자 오라며 약속 장소를 급변경한 것.
장성규는 "가족들만큼이나 애가 타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학교에 있는 선생님들이었다"고 말했다. 우진이는 전교 1등, 학생회장까지 할 정도로 모범생이었다.
그중 특히 우진이에게 마음을 많이 써준 게 체육선생님이었다고. 체육선생님은 사건 이후 부모님 앞에서 고개도 못 들고,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남치 사건 한 달째, 범인이 보낸 협박 편지에서 지문이 나와 수사에 들어갔지만 용의자와 일치하는 지문이 없었다. 이윽고 대통령까지 수사를 독려할 정도로 공개 수사로 이 사건은 전환됐다. 동원된 경찰만 총 2만3000여명, 단일 사건으론 역대 최대 규모였다. 온 나라가 충격과 슬픔에 빠졌다.
단서를 하나도 못 찾은 채로 6개월이 지났고, 두 수사반장은 범인을 못 잡으면 경찰을 그만둔다는 각오로 처음부터 다시 수사를 시작했다. 범인은 분명 면식범인데, 우진이가 순순히 따라갈 만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수사반장은 체육 선생님을 떠올렸다. 왜 굳이 학교 밖에서 아이를 만나려고 했을까. 이에 한승연은 화들짝 놀랐다. 물론 체육 선생님은 수사 초기부터 조사를 많이 했다.
학교 측에선 떨떠름하게 반응했다. 학교에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선생님을 의심하는 거냐"고 나왔던 것.
체육교사 이름은 주영형, 나이는 당시 28살. 무려 서울대 출신 엘리트 교사였고 집안까지 좋았다고. 그는 학생들에게도 존경받는 인기 선생님이었으며, 결혼 후 아이 둘 있던 가장이었다.
두 형사는 왜 굳이 학교 밖에서 우진이를 만나려고 했냐고 체육교사에게 물었다. 교사는 "성적도 떨어지고 표정이 우울하길래 격려 차 맛있는 것 좀 사주려고 했다"고 말했다. 우진이를 기다리다 대학원 수업을 들으러 갔던 그는 실제 수업에 출석한 사실도 확인이 됐다. 그런데, 새로운 증언이 나왔다. 그날 선생님이 수업에 왔지만 출석체크만 하고 금방 나갔다는 증언이었다. 알리바이에 최소 2시간의 공백이 생긴 것. 2시간이면 범행하기에 충분한 시간.
주 선생과 있었다던 여성은 17살로 미성년자였다. 주 선생과 홍 향은 어떻게 만났을까. 놀랍게도 둘은 스승과 제자 사이로 처음 만났다고. 주 선생이 1년 전에 다니던 여자중학교에서 홍 양을 만나 연인 사이로 발전했던 것.
형사들은 그 여자중학교로 조사를 착수했다. 2년 전, 여중에서 주 선생이 근무할 때, 근처에서 발견된 여학생의 일기장이 화근이었다. 일기장엔 상상을 초월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일기 내용은 '선생님과 여관에서 있었던 일'에 관해 여학생이 무서워하고 슬퍼하는 내용이었다. 일기장 주인은 당시 주 선생이 담임을 맡은 반의 여학생으로, 중2였다. 김태균은 "이거 완전 미친 놈"이라며 분노했다. 에일리는 "아주 어린 여학생이, 자신이 피해자가 된 지도 모르고 자기가 뭔가 잘못한 거라고 생각하고 걱정한 거다. 너무 화가 난다"고 말했다.
학교에 찾아갔더니, 이미 주 선생과 얽힌 학생들이 한둘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알고보니 20명이 넘었다고. 주 선생은 하지만 "말도 안된다. 아이들이 장난을 친 것"이라는 거짓말로 완강히 부인했다. 소문에 오른 여학생들도, 자신이 사람들에 알려지는 게 무서워 말을 못했던 것. 그리고 선생님이 자신을 사랑한다고 세뇌당했기에 입 밖으로 사실을 꺼내지 못했다. 학교와 교육청은 모두 주 선생의 손을 들어줬고, 더이상 조사도 안 하고 속전속결로 사건을 꺼냈다. 젊은 미남 교사를 연모하던 사춘기 여중생들의 치기 어린 장난이라고 조사를 끝냈다. 수법도 다 비슷했다. 고민을 들어준다며 여학생과 따로 만났고, 여관에 데려가 성폭행한 후 '사랑'이라고 세뇌시킨 것.
한승연은 분노하며 "스물두명이나 피해 당할 때까지 알아채주지 못한 어른들의 잘못"이라 말했다. 에일리는 "전형적인포식자"라며 "자기의 위치와 권위를 이용해서 어린아이들을 사냥한 것"아라고 분노했다. 주 선생의 진짜 얼굴은 파렴치한 미성년 성범죄자였다.
형사들은 그 사람이 범인이란 사실을 확신, 최후의 담판만이 남았다. 그들은 주 교사 앞으로 가짜 알리바이를 주입시켰던 홍 양을 데려왔다. 홍 양은 "저희 만난 날 그 날 아니었다"고 말했고, 주 교사는 1박2일만에 입을 열었다. 그는 "더이상 빠져나갈 데가 없다. 제가 우진이를 납치했다"고 시인했다.
그는 "우진이 지금 어딨냐"는 질문엔 아무 답이 없었다. 벌써 시간이 1년이 지났던 것. 결국 우진이는 경기도 가평의 북한강변에서, 땅속에 암매장된 채로 발견됐다...
김정남 당시 수사반장은 "자백하는 걸 정말 가슴아프게 들었다. 자기를 제일 돌봐주는 선생이 만나자는데 어딜들 못 가겠냐. 아주 기뻐서 간건데, 마음이 아팠다"고 토로했다. 사건이 일어난 지 1년하고도 17일 후였다.
한승연은 그날 우진이의 어머니가 직접 남긴 글을 읽었다. 아이의 시체를 찾기 위해 주형영이 가리키는 대로 구덩이를 종일 팠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수사 결과, 우진이는 납치 당일 혹은 그 다음날 사망한 것으로 추정됐다.
한승연은 "어쩜 1년이나. 너무 가증스럽다. 자기가 그렇게 학생을 살해해놓고 와서 가족을 위로했다"며 눈물 흘렸다. 장도연은 "방송에까지 나와서 아이를 돌려보내달라고 울먹였다"고 말했다. 에일리는 '진짜 악마다. 악마"라며 경악했다.
주영형은 체포 후 어떻게 됐을까. 그는 법정에서도 자기가 죽인 게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죽었다고 계속 주장했다고. 살인죄가 아닌 유기치사죄를 적용해달라고 호소했고, 8개월 뒤 사형은 집행됐다.
에일리는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시민의 제보로 주 선생 소문을 조사하던 날로 돌아가 제대로 된 조사와 조치를 취했다면, 아마 우진이와 범인은 만날 일 없었다"고 말했고, 모두가 공감했다.
범
[박새롬 스타투데이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