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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강성훈이 `좋좋소`를 통해 터닝 포인트를 맞았다. 사진|유용석 기자 |
이력서에 써 낸 '취미-노래' 이 한 구절을 보고 면접장에서 사장이 노래를 시킨다면 얼마나 뜨악할 일인가. 하지만 이 웃지 못할 상황이 왠지 먼 이야기가 아닌 것 같은 이 씁쓸한 기분은 또 무엇인가. 이런 실사 같은 장면을, 무려 드라마에서 만났다. 이름부터 범상치 않은 웹드라마 '좋좋소'에서다.
2021년 TV의 기성 채널을 넘어 유튜브와 OTT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 쏟아져나온 수많은 콘텐츠 중, 가장 강렬한 임팩트를 남긴 작품을 꼽으라면 기자는 개인적으로 '오징어 게임'보다 '좋좋소'를 꼽겠다.
'좋좋소'는 사회초년생 조충범(남현우 분)이 중소기업 정승 네트워크에 취업한 뒤 겪는 다양한 일을 몹시도 현실적으로 그려낸 웹드라마다. 올해 초 유튜브 채널 '이과장'을 통해 처음 공개된 '좋좋소'는 폭발적인 반응 속 왓챠를 통해 시즌3까지 공개된 웹드라마로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본 사람은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인기리에 방영됐다. '미생 현실판'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조충범을 비롯해 이과장(이지우 분), 백차장(김경민 분), 이미나(김태영 분) 등 '좋좋소' 속 다양한 캐릭터가 저마다의 현실적인 매력으로 사랑받은 가운데,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 없는 정승 네트워크 대표이사 정필돈 역을 열연한 배우 강성훈(43)도 '좋좋소'로 배우 인생 12년 만에 제대로 꽃을 피웠다.
"사실 연기를 더 이상 안 하려고도 생각했는데, '좋좋소'를 하고 나서 다시 20대의 열정이 불타오르기 시작했어요."
'좋좋소' 새 시즌 촬영이 한창일 때 서울 충무로 매경미디어센터에서 스타투데이와 인터뷰에 나선 강성훈은 "인생 최고의 작품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애정이 깊다"며 '좋좋소'와 극중 배역 정필돈에 대한 애정을 듬뿍 드러냈다.
'좋좋소'를 처음 만난 건 가벼운 제안이었다. "'좋좋소'는 여행유튜버 빠니보틀이라는 친구가 연출을 맡았는데, 또 다른 여행유튜버 캡틴따거가 추천해줘서 만나게 됐어요. 대본을 본 느낌은, 재미있었죠. 극의 흐름도 그렇지만 B급 감성도 좋았고, 디테일한 면이 좋았어요. 다만 캐릭터 나이가 50대로 설정돼 있는 점이 부담이 됐지만(웃음) 자연스럽게 참여하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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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성훈은 `좋좋소`에서 악덕한 듯 애잔한 정필돈 사장 역을 열연하고 있다. 사진|유용석 기자 |
극중 강성훈이 맡은 정필돈 사장은 대기업 퇴사 후 야심차게 차린 중소기업 정승네트워크를 업계에서 인정받는 중견기업으로 키우려는 야무진 꿈을 지닌 인물. 무려 '가족같은' 회사를 표방하지만 애석하게도 조직원들에게조차 '좋소'(정확한 의미는 차마 워딩으로 옮기기 어려워 독자의 몫으로 맡기겠다)라는 조롱을 받고, 구시대적 사고에 사로잡혀 회사를 꾸려가면서 연일 뒷담화의 주인공이 되는 '악덕 꼰대' 사장이다.
다만 재미있는 건, 어떤 입장에서 캐릭터를 이해하느냐에 따라 꼭 악역으로만 볼 수 없단 점이다. 취준생 혹은 사회 초년생의 눈에는 사회생활에서 만나지 않았으면 하는 무능한 '악(惡)인'으로 비춰질 수 있지만, 어느 정도 사회생활을 해본 입장에선 그의 짠함이 이루 말할 수 없다.
"저도 사실 정사장이 나쁜 사람이라 생각하고 연기한 건 아니었어요. 회사를 끌고 나가는 입장의 인물은 그 정도 이야기는 할 수 있겠다 생각하고 연기했는데,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다를 수 있겠다는 생각은 했죠. 결과적으로는 대한민국의 직장 다니는 모든 분들이 고충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일 많이 들은 얘기는 '이과장 연봉 좀 올려줘라'는 말이었네요 하하."
강성훈은 "개인 유튜브 댓글이나 SNS DM을 통해 누리꾼의 반응을 많이 받았다"며 "본인들이 현재 겪고 있는 경험담을 보내주시는 분들도 있었는데, 아직도 기업 문화에 개선이 많이 필요하구나, 지금도 불합리한 대우를 겪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고 말을 이었다.
'좋좋소'는 사람 사는 이야기에요. 최근 대기업 다니는 분을 만나보면 대기업도 크게 다르진 않다고 하더라고요. 심지어 공기업 분도 공감하신다고 하고요. 공감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죠."
강성훈은 작품뿐 아니라 캐릭터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보였다.
"필돈이에 대한 애착은 지금도 많아요. 제가 지금까지 해왔던 역할들이, 이 정도로 비중 갖고 한 역할이 없기도 했지만, 처음부터 캐릭터를 같이 만들어갔고 심도 깊게 이해했기 때문에, 인생 최고의 작품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애정이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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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성훈은 `좋좋소`를 통해 시청자에 공감을 준 점에 대해 기뻐했다. 사진|유용석 기자 |
그렇게 '좋좋소'는 강성훈의 연기 인생에 터닝 포인트가 됐다. 그는 "사실 시즌2를 찍을 때까지도 연기를 계속할 지에 대한 생각이 없는데 이 친구들과 호흡을 계속 맞추다 보니까 호흡이 되고, 감사하게도 소속사(컴퍼니합)가 생겼다"며 "지금은 시즌4~5를 찍고 있는데 분량이 많아 오히려 다른 걸 할 수 없는 상황이 됐을 정도"라 빙긋 웃었다.
연기자의 길을 고민했던 건, 현실적인 문제도 컸지만 "내가 더 위로 올라갈 수 없겠다는 생각이 크게 지배했기 때문이기도 했다"는 강성훈.
"연극에선 주인공을 하기도 했으니 긴 호흡의 연기에 대한 의심은 없었는데, 연기자는 선택 받는 입장이잖아요. 세상이, 내가 가고자 하는대로 움직여지는 건 아니니까. 어찌 보면 '좋좋소'가 남의 이야기 같지 않은 느낌은 있었어요. 정사장이 삼전 시절을 떠올리며 과거에 대한 자부심을 얘기하는데, 제일 중요한 건 현실이잖아요. 어떤 면에선 정필돈에 내 모습이 표현됐구나 싶기도 했어요."
그렇게 배우 강성훈의 여정에서 '좋좋소'는 어쩌면 '천운'과도 같은 작품이었다. 그는 "배우로 살면서 이런 작품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는 않아 이런 작품을 또 만날 수 있을 지 궁금하기도 하다"며 촬영이 없는 날에도 손에서 대본을 놓지 못하는 일상을 귀띔하기도 했다.
강성훈이 연기의 맛을 처음 본 건, 고교 선배 유지태의 제안에서였다. "선배님이 '연극 한 번 해보지 않겠냐'고 해서 성극에서 예수 역할을 맡아 처음으로 연기를 해봤는데 그게 너무 좋아서 계속 하게 됐어요. 연극 소품도 함께 만들고, 주전자에 라면 끓여먹고. 그렇게 다 같이 작품을 만들어갔던 기억이 좋았는데, '좋좋소'를 찍으면서 그런 기억이 나더라고요."
당시의 강렬한 기억으로 20대부터 계속 연기를 했지만 주로 무대 뒤, 스태프로 참여하거나 드라마에 조, 단역으로 출연해 온 강성훈. 그러다 만난 첫 번째 인생작은 tvN '롤러코스터'였다. 그는 "그 땐 케이블 하면 정극 연기 못 한다고 말리던 분도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너무 잘 됐고 그로 인해 다른 섭외들도 들어왔다"며 "지금도 '롤러코스터'로 기억해주시는 분들이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좋좋소'도 그런 느낌이 있다"고 싱긋 웃으며 덧붙였다.
"좋은 드라마로 계속 연기할 원동력을 얻었다"는 강성훈. 그는 "요즘 탈모도 부쩍 심해진 것 같다"며 40대 중반을 향하는 자연인의 소회를 드러내면서도 "한편으로는 나이가 들어간다는 게 자연스러운 것 아닌가 싶다. 뭔가 무게감이 실리는 연기를 할 수도 있겠구나, 세상에 잘 생기고 예쁜 친구들도 많은데 뭔가 나만의 아이템을 얻는 느낌도 있다"며 긍정적인 해석을 내놨다.
'좋좋소'와
한편 '좋좋소'는 내년 1월 시즌4로 돌아온다. 시즌4는 이전 시즌의 스토리를 이어 정승 네트워크와 정승을 박차고 나간 백차장이 설립한 백인터내셔널의 처절하고도 치졸한 생존 경쟁을 그린다. 왓챠를 통해 단독 공개된다.
[박세연 스타투데이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