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를 닮은 사람’ 구해원 역으로 열연한 신현빈. 사진ㅣ최성현 스튜디오 |
‘너닮사’는 당초 물리적으로도 할 수 있는 드라마가 아니었다. 그런데 욕심을 냈다. 놓칠 수 없는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대본을 내가 또 만날 수 있을까 싶었죠. 각각의 인물도 그렇고, 관계에서도 다양한 면을 깊이 있게 다루는 것도 그렇고. 무리 해서라도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결론적으로 하길 잘 했다 싶어요. 하지만 앞으론 겹치기 출연은 안하려고요.(웃음)”
최근 종영한 JTBC 수목드라마 ‘너닮사’는 자신의 욕망에 충실했던 한 여자와 그 여자와의 만남으로 삶의 빛을 잃은 또 다른 여자의 이야기를 통해 벌어지는 치정과 배신, 타락과 복수를 담은 드라마였다.
신현빈은 사랑했던 사람들의 배신으로 찬란했던 청춘의 빛을 잃어버린 여자 ‘구해원’ 역을 맡아 그동안 갈고닦은 내공을 보여줬다.
아무렇게나 늘어뜨린 긴 파마 머리와 낡은 초록 코트 차림의 외적 변화는 물론, 알 수 없는 무심한 눈빛으로 내면에 휘몰아친 복잡다단한 감정을 섬세하게 풀어내며 고현정에 밀리지 않는 존재감을 보여줬다.
연출을 맡은 임현욱 PD 역시 “두 사람이 나오는 장면은 ‘몸이 부딪히지 않더라도 이건 액션 신’이라 생각하며 찍었다”고 할 정도였다.
↑ 신현빈은 복수와 엔딩에 대해 “모두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였다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진 ㅣJTBC |
“안쓰러웠죠. 옆에서 누군가가 잘 달래줘야 하는데 그런 사람이 없어서 여기까지 온 것 같기도 했어요. 복수를 해야 할지 사과를 받아야 할지 자신도 모른 채 살아와서 아픈 손가락 같았죠. 외롭고 상처가 많은 인물이라 더 아끼고 사랑해 주고 싶은 캐릭터였어요.”
구해원의 복수 방법은 신현빈이 이해해야 할 대목이었다. 서우재(김재영 분)와 정희주(고현정 분)의 불륜을 알면서도 한방에 복수를 날리기 보다는 차츰 목을 조르는 방법을 선택했다. 신현빈은 “정희주에게 사과할 기회를 줬는데 이래도 사과 안 해?‘라는 마음으로 촬영했다”고 말했다.
“구해원은 그냥 사과받고 싶었을 뿐이에요. 협박하고 폭로하는 쉬운 길도 있었겠지만 ‘정희주’ 곁을 계속 맴돌았잖아요. 일방적으로 정리를 당한 입장이라 스스로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했을 거죠. 구해원 입장에선 사과할 기회를 준 거라 생각해요.”
신현빈은 “주변에 만약 해원이 같은 사람이 있다면 정신 차리라고 등짝을 때려줄 것”이라며 “해원이 주변에는 그런 사람이 없었던 것”이라고 부연했다.
처절했던 구해원은 끝내 복수에 성공했다. 하지만 완전한 복수는 아니었다. 신현빈은 엔딩에 대해 “큰 아쉬움은 없다”고 했다.
“누구도 완벽해질 수 없는 거라 생각해요. 그나마 해원은 자기의 삶을 찾아간 거죠. 마지막에라도 그림을 그리면서 살아갈 수 있는 건 희주가 얼마나 괴롭게 살고 있는지를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자기 삶을 한 단계 정리하고 나아갈 수 있는 상황이 된 것 같아요.”
가장 기억에 남는 반응을 묻자 감독으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를 꺼냈다.
“감독님이 말씀해주신 건데 ‘재미있게 보는데 왜 보고나면 힘이 빠지는지 모르겠다’는 얘기였어요. 또, 제 주변에선 이쪽 계통에 계신 굉장히 까다로운 안목을 가진 분이신데 ‘이 드라마를 통해 힐링한다’고요. 어떤 얘기인지 알겠더라고요. 이 드라마가 주는 퀄리티가 있다 생각했어요.”
신현빈은 이번 드라마에 대해 “모두가 창과 방패였다”고 돌아봤다. “모두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였다 생각한다. 모든 사람은 누군가에겐 좋은 사람이지만, 누군가에겐 나쁜 사람이지 않나. 그 부분이 끌렸다”고 밝혔다.
‘구해원’은 ‘초록 괴물’로 불렸다. “초록 코트는 대본에 설정이 되어 있었다. 찬란한 순간과 변해버린 모습을 대비되게 표현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길을 가다보면 굳이 말 걸고 싶지 않은 사람 같아 보이려고 했어요. 퍼석하고 메말라 보이게 표현하려 했죠. ‘사람이 너무 건조해 보인다, 정수리에 물을 주고 싶다’는 댓글이 있었는데, ‘예쁘다’는 표현은 절대 아니지만 감독님과 저는 ‘됐다!’ 하고 좋아했어요.”
신현빈은 “내겐 중요한 코트였고, 하나의 등장인물이기도 했던 코트였다”며 “나중에 그걸 태워야 했을 때 마음이 그랬는데 완판돼 마음의 짐을 덜었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 “강행군 속 고현정 선배에게 의지하며 찍었다”며 고마움을 드러낸 신현빈. 사진 ㅣ최성현 스튜디오 |
“유머 코드가 잘 맞았어요. 현정 선배가 ‘아니 이렇게 재미있는 분이었나?’ 싶었죠. 놀랍고도 감동적이었던 건 저를 만나기 전에 ‘술의생’ 정주행을 하고 오신 거예요. 선배님이 현장에서 낸 아이디어로 풍성해지는 순간들이 꽤 많았는데 역시 다르구나 싶었어요. 옆에서 알려주는 게 아니어도 존재 자체만으로도 많이 배우게 돼요. (전)도연 선배님하고 할 때도 느꼈지만.”
2010년 영화 ‘방가방가’로 데뷔해 어느새 11년차 배우가 된 신현빈. 지난해부터 ‘슬의생’ 시즌 두 편, ‘너닮사’와 ‘괴이’를 연이어 찍으며 쉴 틈 없는 나날을 보냈다. 내년에는 티빙 오리지널 ‘괴이’와 JTBC 새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로 시청자를 만난다.
신현빈은 “쉬지 않고 일해야지 하는 타입은 아닌데, 작품 제안도 빨라졌고 주변에서 챙겨봐주는 이들도 늘었다”면서도 “그렇다고 제 삶이 특별히 변한 것은 없다”고 했다.
이젠 선택 받아야 하던 입장에서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위치도 됐다. 대세 여배우 반열에 오르며 러브콜이 쏟아지지만
“회사에서 하라고 해서, 누가 만드니까, 잘 될 거니까, 누가 나오니까. 이런 이유로 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적어도 저는 재미있어야 해요. 이 이야기에 대한 흥미와 확신이 있어야 연기를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진향희 스타투데이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