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벽한 가정을 꿈꾸는 40대의 여주인공 사피영을 연기한 박주미. 제공ㅣ스튜디오산타클로스엔터테인먼트 |
‘결혼작사 이혼작곡’은 박주미(50)의 배우인생 2막을 열어준 작품이다. 데뷔 30년차, 매 작품마다 변신을 거듭하며 쉼 없이 달려왔지만 ‘사피영’ 만큼 강렬한 캐릭터는 없었다.
최근 화상 인터뷰를 통해 만난 박주미는 “감정의 진폭이 클수록 행복했다”며 “이런 캐릭터는 처음이라 모든 것들이 즐거움이었다”고 돌아봤다.
최근 종영한 TV조선 드라마 ‘결혼작사 이혼작곡’은 임성한 작가의 6년 만의 컴백작으로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9일 방송된 최종회는 세 커플의 반전 결말로 충격을 안긴 가운데, 시즌3를 예고하며 전국 시청률 16.6%를 기록하며 막을 내렸다.
박주미는 완벽한 가정을 꿈꾸는 40대의 여주인공 ‘사피영’ 역을 연기해 배우인생의 꽃을 활짝 피웠다. 일도 가정도 모든 일에 완벽을 기하는 ‘알파 우먼’이지만, 남편의 불륜을 알게된 뒤 혼란스러운 감정을 겪다가 극도의 배신감에 휩싸이는 인물이다.
극한의 감정을 오가며 요동치는 내면을 밀도 있게 표현해낸 박주미는 중견배우다운 내공을 증명했다.
박주미는 “시즌1과 시즌2에선 감정의 변화가 가장 컸다. 마냥 행복했던 모습에서 그런 변화들을 겪다보니 같은 현장에서도 받은 느낌도 그만큼 달랐다”고 했다.
“극에 달하는 연기를 할 때가 더 편했어요. 격하게 화를 내거나 동선이 주어졌을 때 연기하기가 훨씬 편하더라고요. 하지만 피영이는 굉장히 절제된 캐릭터였어요. 그래서 과하지 않게 연기하고 싶었는데 그게 잘 어필된 것 같아 기뻐요.”
↑ 박주미는 “‘사피영’은 어쩌면 가장 불쌍하고 짠한 캐릭터였다”고 돌아봤다. 제공ㅣ스튜디오산타클로스엔터테인먼트 |
남부러울 것 없는 병원장 아내이면서 성공한 방송국 PD였지만, “‘사피영’은 어쩌면 가장 불쌍하고 짠한 캐릭터였다”고 해석했다.
“사피영 만큼 감정의 변화가 큰 사람은 없었다 생각해요. 사람들이 간혹 가식적이지 않냐고 하는데, 13년차 부부가 어떻게 저렇게 행복하냐고요.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배신이 더욱 크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사피영은 차분한 캐릭터라서 싸울 때도 물을 끼얹거나 하는 건 없어서 감정의 변화를 주는 게 즐거웠어요. 경제적으로 문제 없다고 행복한 건 아니잖아요. 부모님 불화를 겪다 보니 정상적인 가치관을 가질 수 없다고 해석했고요. 첫 남자 신유신과 20년을 연애했기 때문에 부모님 불화에 대한 트라우마를 극복하고자 했을 테고 남편에게 올인했으니, 함구증까지 걸릴 정도로 어머니의 죽음보다 남편의 불륜이 더 큰 파장으로 왔던 거죠.“
특히 이태곤과 70분 2인극은 파격이었다. 12회에서 남편 신유신(이태곤 분)과 독대하면서 70분간 쉬지 않고 2인극을 이끌었다. 이런 경험은 그에게도 ‘신세계’였다.
“부담감은 있었지만, 배우에게 놓칠 수 없는 기회라 생각했어요. 평생 있을까 말까 한 기회니까요. 지금까지 가장 긴 게 60분짜리 미니시리즈 기준 이스라엘 작품이었다고 하는데 저희는 70분이 넘었어요. 사실상 기네스북에 오를 순간이었죠. 물론 긴 대사를 외우는 건 숙제였지만 익숙한 세트장에서 촬영 자체는 편안했어요. TV로 어떤 그림이 나올까 궁금했던 미지의 세계이기도 했고요.”
연기에 대한 호평이 쏟아졌다.
“(이번 드라마 하면서) 댓글을 좀 많이 봤는데 내가 연기 변신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나 보더라고요. 여러 작품에서 도전했지만 항공사 이미지 때문에 차분한 연기를 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죠. 가장 감사하고 고마웠던 댓글은 늘 변신을 시도해온 박주미가 멋있었는데 정점이 ‘결사곡’이라고 하더라. 제겐 너무 큰 격려였죠. 또 왜 이렇게 연기를 잘하냐며 ‘신 눈물의 여왕’이라고.”
‘결사곡’은 넷플릭스를 통해서도 공개돼 해외 반응이 뜨거웠다.
박주미는 “신기한 게 일본에선 제가 든 가방이 인기가 많아서 일본 학부모들한테 가방 얘기가 많이 나온다고 하더라. 홍콩에서는 제 나이를 아니까 놀라시기도 하고 주얼리에 관심이 많으셨다. 미국 쪽은 스토리 위주로 관심을 보였다”며 지인들에게 전해들은 현지 반응을 전했다.
↑ 박주미는 “난 소비가 많이 안 된 배우”라며 “앞으로 무슨 역이든 잘할 것 같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제공ㅣ스튜디오산타클로스엔터테인먼트 |
또,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어머니(이효춘 분)의 임종을 지키는 신. “애드리브 보다 대본에 충실하려고 했다”면서 “계속 대본을 봐서 감정이 무뎌졌을까 걱정했는데 방송이 나가고 호평이 많았다. 작가님도 슬프셨다고 제작진을 통해 말씀해 주셨다”고 전했다.
‘결사곡’은 그에게도 결혼생활을 다시금 돌아보게 한 작품이었다. 박주미는 “사피영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캐릭터”라며 “사피영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반성을 많이 했다”고 웃었다.
“자기 일 하면서 어떻게... 저는 이번 드라마를 하면서 집안 살림을 내려놓아 엉망진창인데(웃음) 연기 활동하는 것 보다 주부 역할이 훨씬 힘든 것 같아요. 주부 역할은 티도 안 나고 그 영역은 방대하고 보상도 못 받고. 사피영 캐릭터를 보면서 정말 반성 많이 했어요. 제가 애교가 없고 남자 같은 스타일인데 ‘뭘 말로 해’ 이런 사람이었는데 매사 최선을 다해 사는 사피영을 보면서 반성해야겠구나 싶었다. 저한테 오는 부분이 컸죠.”
어느덧 쉰의 문턱에 들어선 그는 연기생활 30년차 소회도 밝혔다.
“20대 때는 이만큼 소중한 기회를 몰랐고 30대 때는 가정에 충실하고 싶었어요. 40대 때는 열심히 하고 싶었는데 시행착오도 많았던 것 같아요. 부족한 면이 있지만 온 정성을 다해서 연기할 수 있는 에너지가 생긴 것 같아요.”
이번 작품은 박주미에게 인생 드라마,
“내가 대사를 뱉으면 ‘이런 느낌이 나는구나’ 이번 작품을 통해 성장하면서 배우고 느낀 게 컸어요. 저는 아직 소비가 많이 안 된 느낌이 드는 배우란 생각이 들어요.(웃음) 앞으로 무슨 역이든 잘할 것 같은데요.”
[진향희 스타투데이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