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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두심이 `빛나는 순간`을 통해 멜로에 도전했다. 제공|명필름 |
배우 고두심(70)이 이번엔 파격적인 멜로의 주인공이 되어 돌아왔다. 고향인 제주 해녀의 얼굴로 ‘빛나는 순간’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고두심은 영화 ‘빛나는 순간’(감독 소준문)에서 제주 해녀 진옥을 연기했다. ‘빛나는 순간’은 진옥과 그를 주인공으로 다큐멘터리를 찍는 PD 경훈(지현우 분)의 특별한 사랑을 다뤘다.
고두심은 출연 계기를 묻자 “엄마 역할을 시종일관 49년 했는데, 이 영화 덕에 멜로 한을 풀었다. 어떤 젊은 친구가 걸릴까, 어떤 친구가 그물망에 걸릴까 생각하면서 한다고 했다. 감독님이 절실해서 그랬겠지만 절 놓고 썼다고 하더라. 제주도 하면 고두심이고, 고두심 얼굴이 제주도 풍광이라고 말하더라. 거기에 대한 책임과 기대치가 있으니 무겁지만, 그 무게를 달고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제주가 고향인 그는 “제주를 생각하면 먹먹하다. 어머니면서 부모님이면서 고향이기도 하다”며 “해녀는 제주도 상징이다. 그분들 힘으로 오늘날 제주도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분들의 정신이 제주도 혼이다. 나만큼 해녀를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털어놨다.
어려서부터 가까이에서 보아온 제주 해녀의 삶을 담았기에 ‘빛나는 순간’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고두심은 “저희는 농사하는 집안이라 물가와 가깝지 않았는데, 고깃배 가진 친척도 있고 가까이 해녀가 있었다”며 "해녀의 삶은 생과 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삶”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거의 안 하려고 하고 딸도 안 시키려고 한다. 진옥이도 딸을 바다에 데리고 갔다가 잃지 않나. 그분들의 삶의 애환을 말로 다 할 수도 없다. 아마 현재 해녀들이 아니면 끊기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80대 현역인 분도 있는데, 신기한 건 물에만 들어가면 다들 반짝반짝 빛이 난다”며 제주 해녀를 향한 존경심을 드러냈다.
촬영을 위해 직접 물에 들어가기도 한 그는 “내가 물에 빠져도 누군가 건져주겠지, 날 두고 가겠냐 싶더라”며 “해녀 삼촌들이 있어 든든했다”고 너스레를 떨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고두심은 극 중 제주 4.3 사건의 아픔을 드러내는 신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는 “저는 51년생이고 그 사건은 48년으로 알고 있다. 제가 직접 경험한 세대는 아니고, 그 밑의 세대다. 친척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살아온 세대다. 이 집에서 울음이 나고, 저 집에서 울음소리가 났다고 하더라. 길에서 도망가려면 시체를 밟지 않으면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시체가 늘어져 있었다더라. 그림으로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지 않나. 그 장면을 표현할 때 감독님이 써준 대사는 몇 줄이 안 된다. 내 입에서 줄줄 나오더라. 나도 그 신을 찍고 멍했다”며 촬영 당시를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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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두심이 `빛나는 순간`에서 지현우와 호흡을 맞춘 소감을 밝혔다. 제공|명필름 |
‘빛나는 순간’에서 고두심은 지현우와 33살 나이 차를 뛰어넘는 로맨스를 펼쳤다. 그는 “할머니여도 여자라는 걸 보여준 거다. 여자는 죽을 때까지 여자라는 끈은 못 놓는다. 물론 흔치 않은 사랑이긴 하다. 흔치 않지만, 세상에 있을 수 있다. 그래서 가능했다.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은 없었다”며 멜로 연기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이어 “꼭 이성 간의 교감만이 사랑이라고 볼 순 없다. 엄마와 아들의 사랑이랄지, 혹은 가족 같은 사랑이랄지 뭐든 주고 싶은 거였다. 그 친구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면, 내가 가진 것 중에 뭘 주면 진실을 알아차리고 살아갈 수 있게 해줄 수 있을까 했다. 그런 사랑을 베푸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어떻게 남녀 간의 사랑으로만 생각했겠나. 그렇게 생각하니 다가가졌다”고 털어놨다.
고두심은 멜로 호흡을 맞춘 지현우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지현우는) 겉으로 보기엔 여리여리하지 않나. 남성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촬영하면서는 그런 생각을 안 했다. 현장 답사도 열심히 했다. 새벽에 눈 뜨면 현장 가서 해녀 삼촌들이랑 이야기하고, 친화력을 가지고 임하려고 하더라. 휴일에는 혼자 한라산도 다녀왔다”고 귀띔했다.
계속해서 “영화에서 웃통 벗는 신이 있어 다이어트를 하더라. 다들 제주도 음식을 공수해서 맛있게 먹는데 혼자 못 먹더라. 보통은 오늘은 먹고 내일부터 할 거라고 그러지 않나. 그런데 끝까지 지키더라. 사람은 겉으로만 보고 평가해서는 안 된다. 또다시 반성했다. 생각하는 지점도 깊고, 진중하고 믿음이 갔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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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두심이 국민 어머니란 호칭에 대한 생각을 털어놨다. 제공|명필름 |
올해로 데뷔 49년을 맞이한 고두심은 지난해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국민 엄마이자 며느리로 살아온 그는 “국민이라는 호칭은 정말 어렵다. 부담스럽다”며 “그런 말은 조수미 씨, 이미자 선생님, 조용필 씨 같은 분에게 어울리는 말이 아닐까 싶다”고 부담감을 토로했다.
또 고두심은 “고두심 하면 제주, 제주하면 고두심이 되니까 무겁더라. 그러니까 조심스럽게 잘해야만 제주 사람이 욕을 안 먹겠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했다. 그래서 지금의 고두심이 있는 것 같다”며 “MBC 드라마 ‘전원일기’에서 맏며느리로 22년을 살았고 그렇게 보였다. 그러다가 어머니로 넘어왔다. 어머니는 큰 우주다. 누구나 어머니를 생각하면 명치 끝이 찡하다. 모든 것을 다 내어주는 사람이 어머니인데, 그런 이미지가 씌니까 부담되기도 하고 쉽지 않다. 그런 엄마가 연하남과 연애하는 영화를 하니 두들겨 맞지 않겠나 싶기도 하지만, 세상이 달라졌다고 생각한다”며 ‘빛나는 순간’에 대한 애정을 당부했다.
“배우로 살아오면서 힘든 순간도 있었죠. 화장 안 한 제 모습을 보고 배우 같지 않다고 하거나 잠깐 보고 자기 입맛에 맞게 이야기할 때는 서운할 때도 있어요. 한편으로는 어디 음식점이라도 가면 계란말이라도 하나 더 주시는 모습에 치유 받기도 하고 감사하죠. 날 미워한다는 것만 생각할 수는 없어요.
[양소영 스타투데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