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암 투병 중인 보아 오빠 권순욱 감독. 사진|권순욱 SNS |
권순욱 감독은 지난 12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이렇게 많은 분들이 응원해 주실 줄 전혀 몰랐고, 치료 사례와 여러 병원, 교수님들에 대해서 추천해 주실 줄 몰랐다”고 응원에 감사 인사를 한 뒤 “복막암 완전 관해(증상 감소) 사례도 보이고 저도 당장 이대로 죽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는데 의사들은 왜 그렇게 싸늘하신지 모르겠다”고 마주한 의사들에게 느낀 서운함을 적었다.
권순욱은 의사들에게 "‘이병은 낫는 병이 아니다’, ‘이 약마저 내성이 생기면 슬슬 마음에 준비를 하셔야 할 것 같다’, ‘이런저런 시도로 몸에 고통 주지 말고 그냥 편하게 갈 수 있게 그저 항암약이 듣길 바라라’ 등의 말을 들었다"면서 “최근에 입원했을 때 그리고 다른 병원 외래에 갔을 때 제 가슴에 못을 박는 이야기들을 제 면전에서 저리 편하게 하시니 도대체가 제정신으로 살 수가 없었던 시간들이었다"고 냉정한 말에 상처 입었다고 밝혔다.
권순욱은 "복막에 암이 생겼고 전이에 의한 4기암이다. 의학적으로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 예후가 좋지 않은지 현재 기대 여명을 병원마다 2~3개월 정도로 이야기한다"라고 현재 상태를 말한 뒤 "하지만 여러분들의 응원과 조언들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서 이시도 저 시도 다해보도록 하겠다"고 삶의 의지를 다잡았다.
이후 권순욱의 사연에 공감한 이들의 비판적인 의견 개진이 이어졌다. 이에 대해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장은 다음날인 13일 트위터에 "싸늘한" 의사들이 된 이유를 적은 글을 올렸다.
노환규 전 회장은 "가수 보아의 오빠 권순욱씨가 말기암 투병중이라는 기사가 올라오고 있다. 젊은 나이에 매우 안타까운 상황인데, 어젯밤 권순욱씨가 SNS에 '지나치게 냉정한 의사들의 태도'에 섭섭함을 토로했다는 기사가 올라왔다"며 "얼마나 섭섭했을까. 그 심정 백분 이해가 된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의사들이 환자의 아픔을 공감하고 환자를 가족처럼 생각해서 안타까워하면 얼마나 좋을까. 모든 환자들의 바람일 것이다. 그런데, 그가 만난 의사들이 왜 그렇게도 한결같이 싸늘하게 대했을까. 그 이유를 알려드리고자 한다"며 "한마디로 '자기방어'다. 그리고 '싸늘한 자기방어'는 의사들의 의무가 되었다"라고 적었다.
노 전 회장은 권순욱이 공개한 의무기록지의 위중한 상태를 언급한 뒤 "그런데 만일 의사들이 이런 '싸늘하고 냉정한 경고'를 하지 않았다고 하자. 그러면 환자의 상태를 정확히 알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가족은 조기사망에 대한 책임을 의사에게 돌릴 수 있고 결국 의사는 법정소송으로 시달리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불충분한 설명을 이유로 의사는 법적인 책임을 지는 상황까지 몰릴 수 있다"며 "국가는, 이 사회는, 의사들에게 '싸늘하고 냉정한 경고'에 대한 주문을 해왔고 이제 그 주문은 의사들에게 필수적인 의무사항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법적인 책임 문제를 떠나 환자에게 끼치는 영향도 들었다. 그는 "더 큰 문제는 때로는 이 '싸늘하고 냉정한 경고'가 지나치게 걱정이 많은 환자들에게는 올바른 선택의 기회를 앗아가기도 한다는 점이다. 발생할 수 있는 수많은 부작용에 대한 빠짐없는 설명의무가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법적 책임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희박한 부작용'마저도 의사들은 일일이 설명해야 하고 그 설명을 들은 환자가 겁을 먹고 그에게 꼭 필요한 치료를 거부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노 전 회장은 상황이 나아질 기미는 없다고 봤다. 그는 "안타깝게도 환경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악화될 것"이라며 "의사는 '존중과 보호'를 받을 때 최선을 다할 수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의사들이 받는 것은 '존중과 보호'가 아니라 '의심과 책임요구'다. 이런 상황에 놓인 의사들의 따뜻한 심장들이 매일 조금씩 싸늘하게 식어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어려운 상황이지만 권순욱씨가 이를 극복해내고 건강을 회복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빈다"고 덧붙였다.
말기암 판정을 받은 권순욱 감독이 의사에 느낀 서운함과 그렇게 된 배경을 설명한 노 전 회장의 글은 각각 공감을 샀고, 이 사이에 갑론을박이 벌어지기도 했다.
누리꾼들은 "환자도 이해가 가고 의사도 이해가 간다", "의사들 친절하지는 않더라도 조심스럽게 말해줄 수 없나요", "그렇다고 싸늘한 환경을 환자가 만들었다니 그건 좀 아니네요", "위중한 병일수록 팩트를 정확히 말해줄 필요는 있다고 봅니다", "의사한테는 일상일테니 의사한테 상처 받은 경험 누구나 있지 않나요?" 등 다양한 의견을 내놓고 있다.
↑ 암 투병 중인 보아 오빠 권순욱 감독. 사진|권순욱 SNS |
솔직히 이렇게 많은 분들이 응원해 주실 줄 전혀 몰랐고, 치료 사례와 여러 병원, 교수님들에 대해서 추천해 주실 줄 몰랐습니다.
복막암 완전 관해 사례도 보이고 저도 당장 이대로 죽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는데 의사들은 왜 그렇게 싸늘하신지 모르겠습니다.
‘이병이 나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이병은 낫는 병이 아녜요...항암 시작하고 좋아진 적 있어요? 그냥 안 좋아지는 증상을 늦추는 것뿐입니다.’
‘최근 항암약을 바꾸셨는데 이제 이 약마저 내성이 생기면 슬슬 마음에 준비를 하셔야 될 것 같습니다... 주변 정리부터 슬슬하세요’
‘환자가 의지가 강한 건 알겠는데 이런저런 시도로 몸에 고통 주지 말고 그냥 편하게 갈 수 있게 그저 항암약이 듣길 바라는게...’
각각 다른 의사에게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최근에 입원했을 때 그리고 다른 병원 외래에 갔을 때 제 가슴에 못을 박는 이야기들을 제 면전에서 저리 편하게 하시니 도대체가 제정신으로 살 수가 없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의 응원과 조언들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서 이시도 저 시도 다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다음은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 회장 SNS 글 전문>
가수 보아의 오빠 권순욱씨가 말기암 투병중이라는 기사가 올라오고 있다. 젊은 나이에 매우 안타까운 상황인데, 어젯밤 권순욱씨가 SNS에 '지나치게 냉정한 의사들의 태도'에 섭섭함을 토로했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얼마나 섭섭했을까. 그 심정 백분 이해가 된다.
의사들이 환자의 아픔을 공감하고 환자를 가족처럼 생각해서 안타까워하면 얼마나 좋을까. 모든 환자들의 바램일 것이다.
그런데, 그가 만난 의사들이 왜 그렇게도 한결같이 싸늘하게 대했을까.
그 이유를 알려드리고자 한다.
한 마디로 '자기방어'다. 그리고 '싸늘한 자기방어'는 의사들의 의무가 되었다.
권순욱씨가 공개한 의무기록지를 보자.
- 복막으로 전이된 상태로 완치나 (근본)수술이 안되고 앞으로 평균적으로 남은 시간은 3개월~6개월이고 항암치료를 하면 기대여명이 조금 더 늘어날 뿐
- (이후 복막염이 발생하자) 평균여명은 3개월~6개월이나 (복막염) 수술을 하지 않으면 수일 내 사망할 수 있음
의사가 무덤덤하게 이런 얘기들을 환자 앞에서 늘어놓는다면 환자 입장에서는 의사가 지나치게 냉정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당연하다. 그런데 만일 의사들이 이런 '싸늘하고 냉정한 경고'를 하지 않았다고 하자. 그러면 환자의 상태를 정확히 알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가족은 조기사망에 대한 책임을 의사에게 돌릴 수 있고 결국 의사는 법정소송으로 시달리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 '불충분한 설명'을 이유로 의사는 실제로 법적인 책임을 지는 상황까지 몰릴 수도 있다.
국가는, 이 사회는, 의사들에게 '싸늘하고 냉정한 경고'에 대한 주문을 해왔고 이제 그 주문은 의사들에게 필수적인 의무사항이 되었다.
섭섭한 만이 문제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때로는 이 '싸늘하고 냉정한 경고'가 지나치게 걱정이 많은 환자들에게는 올바른 선택의 기회를 앗아가기도 한다는 점이다. 발생할 수 있는 수많은 부작용에 대한 빠짐없는 설명의무가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법적 책임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희박한 부작용'마저도 의사들은 일일이 설명해야 하고 그 설명을 들은 환자가 겁을 먹고 그에게 꼭 필요한 치료를 거부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다.
'싸늘하고 냉정한 경고'에 대해 섭섭해하지 마시라.
죄송하지만, 이런 싸늘한 환경은 환자분들 스스로 만든 것이다. 안타깝게도 환경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악화될 것이다.
의사는 '존중과 보호'를 받을 때 최선을 다할 수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어려운 상황이지만 권순욱씨가 이를 극복해내고 건강을 회복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빈다.
[매경닷컴 성정은 기자 sje@mkinternet.com][ⓒ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