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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양소영 기자]
한국 배우 최초 아카데미상 노미네이트, 여우조연상 38관왕(23일 기준)이란 새 역사를 쓴 윤여정. 전형적이지 않은 할머니, 유쾌한 통찰력을 지닌 ‘미나리’ 속 순자의 모습처럼, 질긴 생명력으로 55년간 여배우로 버텨온 그의 발자취를 다큐멘터리에 담았다.
작품에서 살아 숨 쉬던 4000여 시간. 100여 편 드라마와 36편의 영화에 담긴 윤여정은 어떤 모습일까? 한예리, 김고은, 노희경 등 동료 배우, 작가, 감독, 제작자 11명의 목소리로 써 내려간 윤여정 대서사시 ‘다큐멘터리 윤여정’이 29일 오후 10시 KBS1에서 펼쳐진다.
◆ 동료 11인이 전하는 ‘비하인드 윤여정’
영화 ‘계춘할망’으로 호흡을 맞춘 김고은은 “선생님은 늘 우리가 이 자리에서 기분 좋게 웃을 수 있는 내용을 말씀하시는데 희한하게도 그 시간을 갖고 나면 기운이 나요”고 말했다.
한예리는 “‘미나리’를 찍고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선생님과 함께 생활했던 시간이에요. 아침에 일어나 사과 반쪽과 커피 한잔을 드시던. 그런 인간적인 면들을 볼 수 있어 감사했어요”라고 밝혔다.
영화 ‘화녀’의 제작자 정진우는 윤여정이 “자기주장을 다 하는 여주인공에 제격이었다”고 말한다. 드라마 ‘장희빈’부터 영화 ‘장수상회’까지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춘 배우 박근형의 눈엔 “별난 여배우”였고, 많은 드라마에 가족으로 함께 출연한 강부자에겐 “일 저지를 줄 알았던 앞서가는 여성”이었다. 그래서 그는 창작자들에게 신선한 자극이었다.
노희경 작가에겐 “사유하는 엄마”로, 심재명 제작자에겐 “실험적 역할의 대상”으로, 김초희 감독에겐 “꼭 필요한 친구”로 남았다. 후스크린 안에서는 볼 수 없었던 배우 윤여정의 진짜 모습을 동료 배우 7인과 작가, 감독, 제작자 4인에게 들었다.
◆ 5600여 회, 4000여 시간 아카이브의 대여정
1966년 TBC 공채탤런트 3기로 데뷔해 2021년 영화 ‘미나리’로 세계의 주목을 받기까지 윤여정이 출연한 영화는 36편, 드라마는 총 100여 편에 달한다. ‘다큐멘터리 윤여정’ 제작진은 반세기 넘게 켜켜이 쌓인 5600여 회, 4000여 시간의 아카이브를 탈탈 털어 모조리 훑었다.
‘모래성’에서 윤여정은 “양다리 걸치고 있지 말고 선택을 해요. 남자들의 우유부단, 흐리멍텅이 결국엔 치 떨리는 이중성, 교활, 계산이란 걸 난 알아요”라는 대사를 날렸다.
드라마 속 윤여정은 디자이너, 의사 등 소위 ‘사’자 붙은 직업의 지적이고 당당한 여성이었다. 그런 그도 중년에 접어들자 통과의례와 같은 전형적인 역할을 피할 순 없었다. 억척스러운 엄마 혹은 아들의 결혼을 반대하는 악덕한 시어머니로 악다구니를 썼다. 그를 주인공 옆 조연으로 ‘엄마’, '할머니'라는 이름에 가뒀던 방송국 사람들의 조금 늦은, 그리고 처절한 자기반성을 담았다.
◆ 비호감 배우가 세계적 찬사를 받기까지
맡았던 역할만큼이나 그의 연기 인생은 굴곡졌다. 한때는 목소리가 나빠서, 똑똑한 여자 역할을 많이 했다는 이유로 비호감을 샀다. 시청자들의 항의 전화가 빗발치기도 했지만, 생계의 무게를 짊어진 그는 도전을 멈출 수 없었다.
윤여정은 1994년 KBS와 인터뷰에서 “미국에서 돌아와 연기를 시작하고선 작품을 골라 본 적 한 번도 없어요. 다시 시작해야 했을 때는 취미 생활을 떠나서 생계로서 연기해야 했기 때문에 고를 입장이 못 됐었어요”라고 말했다.
그의 묵묵한 걸음은 ‘화녀’를 기억하는 영화계를 움직였다. 가부장제의 굴레를 깬 할머니 ‘바람난 가족’, 사회 주변부를 버티며 살아가는 박카스 할머니 ‘죽여주는 여자’를 거쳐 할머니 같지 않은 할머니 ‘미나리’로. 거부감 1위였던 배우는 자연스레 진취적인 여배우들의 롤모델이 됐다. ‘다큐
‘다큐멘터리 윤여정’은 지난해 방송한 ‘다큐멘터리 개그우먼’ 제작진의 후속작이다. 인터뷰와 아카이브 영상만으로 TV 속 여성의 모습과 시대 변화를 담는 시리즈 다큐멘터리다. 이번엔 여배우의 과거와 현재를 다룬다. 29일 오후 10시 KBS1 '다큐인사이트'에서 방송된다.
skyb1842@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