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밴드 이날치는 '범 내려온다' 신드롬으로 대세 행보를 걷고 있는 결성 3년차 밴드다. 제공|HIKE |
이날치는 '조선 힙스터'라는 이름으로 사랑받는 7인조 밴드다. 국악이라는 특에 얽매이지 않고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대중음악을 지향하는 자칭 '얼터너티브 팝 밴드', 이날치가 선보이는 음악을 특정 장르로 칭하긴 어렵다. 베이스 2인(장영규 정중엽)에 드럼(이철희)과 판소리 보컬 4인(권송희 신유진 안이호 이나래)으로 구성된 전열만큼이나 음악 자체도 독특하다. 얼터너티브 록, 포스트 록, 뉴웨이브, 포스트 펑크 등 다채로운 장르가 혼재돼 '이날치 팝'을 완성한다.
판소리 보컬이 전면에 세워진만큼 국악의 변형인 듯 하지만 단순히 '국악의 세계화'라는 표현으로는 도통 설명이 되지 않는 독보적인 마력의 이날치. 이들은 일명 '1일 1범' 신드롬 속 무시무시한 탄력을 받아 2020년 말부터 지금까지 방송가 '대세'로 종횡무진 활약했다. 이날치의 활약을 처음 조명한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각종 예능, 뉴스 프로그램까지 섭렵했고, 광고계에서도 뜨거운 러브콜을 받고 있다. 덕분에 '식사하는데 옆에서 우리 얘기 하는 걸 듣는' 기분 좋은 경험 속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불과 4개월 전까지도 '살아남고 싶다'고 밴드로서의 절박함을 이야기했던 이날치의, 어찌 보면 인생 역전이다.
"'살아남고 싶다'는 이야기는 그거였어요. 시장이 워낙 넓으니, 그 안에서 살아남고 싶다고. 그런데 요즘 그런 얘기 했다간 큰일나죠(웃음). (그렇게 얘기했던 건) 솔직히, 몇 년은 걸릴 거라 생각했거든요. 몇 년간 열심히 하면서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면 이뤄질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빨리 와서, 너무 빨리 없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서울 충무로 매경미디어센터에서 매일경제 스타투데이와 만난 이날치의 음악감독 장영규가 멋쩍은 미소와 함께 전한 솔직한 소회다.
그의 말마따나, 이날치는 2019년 '범 내려온다'로 대중에 첫 선을 보인 팀이지만 현대무용단 엠비규어스댄스컴퍼니와 함께 한 '온스테이지' 영상이나 그들의 음악이 삽입된 한국관광공사 홍보 영상이 지난 가을 화제가 되기 전까지만 해도 아는 사람만 아는 인디밴드였지 그 신선함에 비해 크게 주목받진 못했다. 무명 밴드가 유명 밴드가 되는 과정이 드라마틱했던 것 뿐, 여느 밴드와 마찬가지로 그들을 찾아주는 무대에 대한 고민이 적지 않았던 것.
하지만 이날치는 지난해 말, 유튜브 영상이 제대로 터지며 일명 '1일 1범'신드롬의 주인공이 됐고, 지금은 이날치를 모르면 결코 '힙스터'가 될 수 없는 대중음악신의 대세 중 대세로 떠올랐다.
이날치가 날아오른 2020년은 이 땅의 모두가 코로나19(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신음하던, 최악의 시기였다. 이날치 역시 입소문을 타고 주목 받으며 다수 공연, 행사의 러브콜을 받았지만 누구나와 같이 무대 자체가 취소되는 아픔을 겪었다.
↑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는 네이버 온스테이지 영상에 이어 한국관광공사 홍보 영상이 뜨거운 반향을 일으키며 글로벌 인기곡이 됐다. 사진|유튜브 영상 캡처 |
"관광공사 홍보 영상의 경우, 사실 특별히 뭔가를 기대한 지점은 없었어요. 우리는 곡으로만 참여하는 것이었으니까요. 영상 완성본을 보고 '생각보다 참신하게 잘 만들었네' '엠비규어스가 큰 역할 했네' 정도의 생각만 했는데, 하루하루 조회수를 보며 깜짝 놀랐어요."(장영규) (이 영상은 최근 조회수 6억뷰를 기록했고, 공사 담당자는 적극행정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다.)
'범 내려온다' 신드롬 이후 이날치에게는 '조선 힙스터', 'K조선 아이돌', '국힙' 등 다양한 수식어가 붙었다. 요즘은 흔한 표현이 된 '조선팝'이라는 신조어도 이날치의 흥행으로 생겨났으니, 기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를 수식하는 표현이 많을수록 좋은 것 같아요. 우리 음악은 사실 규정하기 어려운 음악이라 '사람들이 힘들어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했고, '저게 도대체 뭐지?'하면서 놔버릴 수도 있는데 흥미롭고 재미있게 봐주시고 각자 나름대로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그런 방식이 하나로만 귀결되면 즐기는 방식이 답답해질 수도 있는데, 사람마다 각자의 방식대로 재미있게 즐기고 있구나 싶어서 좋았어요."(안이호)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는 용왕님의 병을 고치기 위해 토끼의 간을 빼오라는 특명을 받고 우여곡절 끝에 육지에 도달한 별주부(자라)가 토끼를 "토생원"이라 부른다는 게 그만 턱에 힘이 빠져 "호생원~"이라 부르자 범(호랑이)이 나타나 별주부를 덮치는, 수궁가 속 한 장면을 담은 곡이다.
고전 중의 고전, 판소리가 시대의 옷을 제대로 입으니 이보다 더 세련될 수 없다. 보컬들의 구수하고 청명한 '소리'는 국악기 아닌 현대악기의 리듬과 반주를 경쾌하게 넘나들며 21세기에도 판소리가 통한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줬다.
전통의 '수궁가'를 수도 없이 접했을 이날치의 소리꾼들 역시 이날치의 '수궁가' 이후엔 '수궁가'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을 법한 대목. 안이호는 "이날치를 하면서 '수궁가'를 더 '수궁가'답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머리로는 '수궁가'가 판소리 다섯 바탕 중 가장 유쾌하고 유머러스한, 블랙코미디성이 짙은 음악이라고 생각해왔는데, 막상 (전통 '수궁가'를) 하면서는 그렇게까지 유쾌함을 드러내고 있나? 하는 의문을 품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날치를 하면서 '수궁가'가 가진 유쾌함을 뿜어내다 보니, 머리로만 있던 생각이 실제 몸으로도 느껴지더라고요. 그런 유쾌함이 소리로 나오는 게 좋아요."
↑ 이날치는 '범 내려온다'에 이어 수궁가 시리즈인 '여보나리'로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제공|HIKE |
'범 내려온다'가 남녀 노소 국적을 초월한 인기를 얻었지만 최근 공개된 신곡 '여보나리' 역시 '범 내려온다' 못지 않은 중독성을 자랑한다.
"비장의 카드까지는 아니고. 이게 공연을 못 하고 방송으로 하다 보니 싱글을 자주 발표하며 활동하길 원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범 내려온다'로 1년 넘게 계속 하니 빨리 새로운 무언가를 들려달라고 하는데, 새 앨범 낼 계획은 아직 없고. 한두 곡 만들어 싱글로 내보자는 생각으로 '수궁가' 안에서 안 쓴 대목들을 찾아보기 시작했죠. 그러다가 (권)송희씨가 여보나리 대목을 한 번 불렀는데 재미있더라고요. 대대적으로 준비하다 엄선해 나온 건 아니고, 우연히 계기로 만나 작업한 곡입니다."(장영규)
'여보나리'에 앞서 발표된 '꼼짝꼼짝 말아라 찰칵 찍어주마'는 올해 초 릴보이와 함께 모 휴대전화 광고에서 선보여 화제가 된 CF 음악이다. 판소리 '춘향가'를 기반으로 탄생한 곡에 대해 안이호는 "춘향이 가장 극과 극에 놓인 순간 두 개를 붙였다. '사랑가'에서 가장 농밀한 부분과 '십장가'라는, 처절하게 매를 맞는 부분을 붙여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워낙 극과 극이라, 소리꾼들은 사실 그렇게 붙일 생각을 하기 어려워요. 그런데 (장영규)감독님이 두 개를 붙이면 재미있겠다고 아이디어를 내셨어요. 처음엔 의아했는데, 생각해보니 재미있더라고요. 묘하게 극과 극이고. 음악적으로도 잘 어우러지고. '이런 느낌도 되게 좋구나' 하고 들었는데, 듣는 분들도 크게 개의치 않고 그 자체의 음악 흐름을 재미있어 하셨죠. 이런 식의 작업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고, 여전히 (사고가) 갇혀있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생각의 벽이 많이 깨지고 있죠."
신유진 역시 "소리꾼들은 대체로 서사적인 걸 중요시하고. 이야기가 안 이어지면 안 될 것 같은데, 사실 이날치 할 때도, 곡 순서대로 가는 건 아닌데, 해보니까 그렇게 어색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더
"그런데 광고로 사용되면서 가사가 많이 바뀌었어요. 원래는 '꼼짝꼼짝마라 뼈 부러진다'인데 '찰칵 찍어주마'로 바뀌었죠."(장영규) 이런. 알고보면 무서운, 잔혹동화였던 것이다! (인터뷰②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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