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 눈부시다. 몇 마디 대사, 눈빛, 표정만으로 영화의 모든 클라이맥스를 담당했다. 깊은 내공에 더 깊은 진정성이 더해지니 이토록 무서운 힘을 발휘한다. ‘미나리’를 통해 전세계의 찬사를 한 몸에 받고 있는 배우 윤여정을 두고 하는 말이다.
영화 ‘미나리’(감독 정이삭)는 세계 곳곳에서 치열하게 견뎌내 결국엔 더 깊이 뿌리내린 이민자들의 삶을 담은 휴먼 드라마.
낯선 미국, 이칸소로 떠나온 한 한국 가족. 가족들이게 뭔가 해내는 걸 보여주고 싶은 아빠 제이콥(스티븐 연)은 자신의 평생 꿈이었던 농장을 가꾸기 시작하고, 엄마 ‘모니카’(한예리) 역시 일자리를 찾는다.
치열하고 숨막힌 한국 땅을 떠나 ‘아메리칸 드림’을 꿈꿨지만 한없이 초라하고 거칠기만 한 현실에 모니카는 실망감에 휩싸인다. 그럼에도 ‘함께 있다면’이라는 희망과 남편의 꿈을 위해 참고 적응한다. 이를 위해 ‘모니카’의 친정 엄마 순자(윤여정)가 어린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함께 살기로 하고, 할머니가 영 못마땅한 막내아들 ‘데이빗’은 철없는 행동들로 매일 소동을 일으킨다.
주로 로(분노)와 애(슬픔)로 관철된 이 가족의 이야기는 서글프고도 버겁다. 그래서 보는 내내 아리고 또 불안하다. 그 시절 모든 걸 바쳐 오로지 자식들을 위해 산 부모님의 이야기이자, 이민자로 살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 나아가 시련과 극복을 반복하며 살아내는 우리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손자에 대한 따뜻한 사랑, 정감 가는 구수함과 특유의 쿨함으로 영화의 유일한 환기구가 되는 게 바로 순자, 윤여정이다. 웃음도, 울음도, 감정의 폭발을 유발하는 모든 구간의 중심에는 바로 그녀가 있다. 이것을 윤여정은 별다른 기교 없이 여백의 미 그 자체로 무서운 울림을 선사한다.
얼마 전 언론시사회에 앞서 윤여정은 영상 메시지를 통해 “나는 나이가 많지만 철이 없을 때도 있다. 정이삭 감독은 그런 내게 화 안 번 안내고 모든 크루를 이끌고 간 진정 훌륭한 감독이었다”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이어 “(전혀 생각지도 못하게)영화가 너무 큰 영광을 얻게 돼 겁이 난다. 한국 관객들이 어떻게 봐줄지 궁금하다. 다만 우리 진심을 봐줬으면 한다. 다들 각자 맡은 대로 열심히 했다”며 그녀다운 담백하지만 진심을 가득 담아 인사를 전했다.
전세계가 열광하며 이미 유수의 영화제를 통해
kiki2022@mk.co.kr[ⓒ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