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왜 사람의 감정을 흔들어 놓을까?
원시 아프리카에서부터 인류는 한 소절 노래만으로 금방 하나가 됐다.
음악에 맞춰 울고 웃었고 밤새 미친 듯 춤을 추었다.
자기만의 노래를 갖는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영혼의 숨결로 노랫말을 쓰고 나를 위한 곡을 탄생시키는 것은 어떤 체험일까?
‘자작곡 스튜디오’라는 새로운 체험 공간을 만든 정상교 ‘비밀의 정원’ 대표는 “자작곡 작업은 노래 자체보다 아무도 겪어보지 못한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본질”이라고 했다.
신학도였기 때문일까. ‘노래 만드는 일’을 이야기하는 그의 표정에서 열정적 신앙인 특유의 ‘촉촉한 영혼’이 느껴졌다.
↑ 정상교 대표(왼쪽)가 시니어모델 김순분 할머니, 유튜브 셀럽 김성준씨와 자작곡 작업과정에서 겪은 애환을 회고하고 있다. |
정 대표가 노래 만들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며 초청한 ‘클라이언트’는 현실과 피안의 거리만큼 극과 극인 두 사람이었다.
시니어모델로 맹활약 중인 김순분 할머니와 음악신동이자 유튜브 셀럽인 서울예대 재학생 김성준 씨. 할머니와 손자 뻘인 나이도 성별도 모두 대조적이다.
그 차이를 다 합친 것보다도 대조적인 것은 두 사람의 사연이다.
청각장애 시련 나만의 노래로 극복하려 도전
김순분 할머니는 10여년전 교통사고로 청각을 잃었다.
“겪어본 사람들만 아는 것이지만 후천적 장애가 극복하기 더 힘들어요. 청각을 잃고 너무 절망적이서 여러 번 죽으려고 시도하기도 했어요. 정말 힘든 건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로부터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거 였어요. 제가 수화를 못 배워서 분위기와 입놀림으로 상대방의 말을 얼추 알아듣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선천적으로 청각을 갖지 못한 사람들로부터도 따돌림을 당하기 일쑤였어요.”
장애를 입기 전에 한 번도 생각지 않았던 노래 만들기에 도전한 것도 절망에서 벗어나기 위한 도전이었다.
과연 그게 가능할까? 반신반의 했지만 어디서 솟아나는 것인지 모를 에너지가 그를 뜨겁게 달구었다.
가사는 눈으로 읽을 수 있었지만 음정을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자신이 내는 목소리조차 진동과 파장만으로 가늠하면서 녹음했다.
그러다 보니 음계를 벗어나는 이른바 ‘삑사리’가 수없이 반복될 수 밖에 없었다.
스튜디오를 찾아 애써 녹음 작업을 해도 한 번에 한 소절을 건져내기 힘들었다.
200여 개의 녹음 파일을 디지털로 보정하고 다시 이어 붙여서 곡 하나를 완성했다.
↑ 정대표가 김순분 할머니와 함께 자작곡 녹음 파일들을 열어 보며 작업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
정 대표는 “여느 고객보다 몇 십배 더 힘든 과정이었어요. 하지만 할머니의 열정이 제게 고스란히 전해져서인지 힘든 줄 몰랐습니다. 아니 그보다는 제가 깨달은 게 더 많았어요. 할머니에게서 위안과 함께 작업을 끝까지 밀고 나갈 힘을 얻었던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김순분 할머니가 자신의 기구한 사연을 수필 형식으로 써 준 내용을 가사로 만들었다.
“들리지는 않지만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요. 가슴에 담은 아픔을 노래로 불러요.”
할머니는 녹음할 때 마다 이 대목에서 항상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음악신동도 자작곡 작업 통해 음악의 불가사의한 힘 체감
눈물 이야기가 나오자 김성준 씨가 격하게 공감을 표했다.
“상교 형과 같이 작업해서 누나 결혼식 축하 송을 만들어 줬어요. 어린 시절부터 워낙 친하게 지내와 허물없던 누나가 결혼한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어요. 그런데 누나를 위해 곡을 쓰고 노래하다 보니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울림이 제 마음 속에서부터 일어났어요. 같이 작업실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그때 그 느낌을 똑같이 공유했을 거예요. ‘아, 음악에는 우리 영혼 깊숙한 곳을 뒤흔들고 울리는 불가사의한 힘이 있구나’라는 걸 그 순간 절감했어요”
그는 중학교 2학년 때 독학으로 기타 주법을 터득했다. 타고난 재능과 음악을 향한 열정, 아이돌급 외모로 수십만 팔로어를 거느리게 됐다.
↑ 유튜브 셀럽이자 ‘음악 신동’으로 불리는 서울예대 재학생 김성준 씨가 즉흥 기타연주를 선보이고 있다. |
혼자 힘으로도 자기 노래를 만들 수 있는데 왜 굳이 비밀의 정원을 찾았을까?
정대표가 수많은 사람들의 자기 노래를 만들어주면서 쌓아온 ‘영적 교감’이 그에게 영감을 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성준이가 워낙 천재적 재능을 가진 친구여서 제가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막막할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성준아. 이건 이렇게 바꿔보는게 어때’라고 제시하고 싶은 부분이 있었고 그렇게 말해주면 성준이가 바로 반응하고 받아들여요.”
김성준 씨가 바로 동의했다. “혼자 작업할 때는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막연할 때가 있는데 상교형이 그때 마다 새로운 발상을 하게 도와줬어요. 자작곡을 만들만큼 음악에 대한 열정이 뜨거운 청중들과 울고 웃고 부대끼면서 생겨난 감각이 아닐까 싶어요”
어머니에게 ‘최고의 선물’ 남기고 간 아들 사연 마음 아파
음악 문외한인 청각장애인, 독학으로 셀럽이 된 음악신동. 둘 중 누구와의 작업이 더 힘들었을까.
“글쎄요. 어느 쪽이 더 힘들었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분명한 건 힘들었던 것 보다 제가 받은 것이 더 많다는 겁니다.”
정 대표는 잊을 수 없었던 작업 경험도 털어놨다.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은 분이 자기 노래를 만들고 싶다고 찾아오셨어요. 음악에 재능이 있는 분이라 작사 작곡과 녹음까지 보통 사람들이 12주 걸리는 작업을 3주 만에 마쳤어요. 그분이 노래하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 마음이 아파서 담당 프로듀서가 오랫동안 다른 작업을 하지 못할 만큼 힘들어 했어요.”
그 고객이 세상을 떠난 소식은 녹음 이후 몇 달이 지나서 듣
“어머니가 스튜디오로 전화를 주셨어요. 아들이 남긴 노래를 들으면서 참 자랑스럽고 고마웠다고 하셨어요. 아들이 나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었다구요.”
자기만의 노래를 만든다는 건 과연 어떤 기분일까. 정 대표의 물기어린 눈매를 보면서 몹시 알고 싶어졌다.
[글 사진 / 이창훈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