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스타투데이 한현정 기자]
”아무도 널 구해주지 않아. 네가 해야 해. 생각보다 인생은 길어.”
돌아갈 곳도, 기다려주는 사람도 없는 벼랑 끝에서 예상치 못한 희망을 만난다. 스릴러의 외투를 걷어내니 진한 휴먼 힐링 드라마.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릴, 혹은 다소 실망스러울 수 있는 각종 요소들을 김혜수•이정은이 구해냈다. ‘내가 죽던 날’이다.
영화는 유서 한 장만 남긴 채 절벽 끝으로 사라진 소녀와 삶의 벼랑 끝에서 사건을 추적하는 형사, 그리고 그들에게 손을 내민 무언의 목격자까지 살아남기 위한 각자의 선택을 그린다.
주인공인 형사 현수(김혜수)는 경찰대 출신의 에이스로 완벽한 삶을 살아온 듯하지만 바람 난 남편이 이혼을 요구하며 적반하장으로 ‘불륜녀'로 몰아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진다. 벼랑 끝에 몰린 현수는 괴롭고 버겁지만 일이라도 해야 살 수 있을 것 같아 복직을 결심한다.
이를 위해 떠맡은 일은 한 섬에 거의 감금되다 시피 살던 세진(노정의)의 사건을 최대한 조용히 마무리하는 것. 거센 태풍이 오던 날 세진은 사라졌다. 세진의 마지막 뒷모습은 파도가 부서지는 벼랑 끝 CCTV에 담겼고, 유서도 발견됐다. 시체도 찾지 못해 수사가 종결되지 못하고 있지만 투신 자살로 잠정 결론 지은 상황. 그 어느 누구도 세진을 본 이도, 찾는 이도, “그럴 아이가 아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영화는 오롯이 형사 현수의 시선을 따라간다. 동시의 현수의 불행과도 맞닿아 있다. 세진이죽던 날과 현수의 죽던 날은 수차례 겹친다. 그 벼랑 끝에서 마주하는 희망 역시도. “나는 내 삶이 괜찮은 줄 알았다. 근데 나도 모르는 새에 내 인생이 박살났다”, “아무도 ‘그럴 애가 아니야’라는 말을 해주지 않더라.”, “살려고 그랬어. 살려고 발악하는 얼굴이야.” “인생은 생각보다 길다”, “아무도 너를 구해주지 않아. 네가 너를 구해야해”, “아무도 없다고? 네가 있잖아.” 주제 의식을 강조하는 각종 대사들이 가슴을 친다.
무엇보다 등장부터 퇴장까지 눈을 뗄 수 없는 배우 김혜수의 아우라와 이정은의 내공은 완벽한 시너지를 이룬다. 특히 이정은은 목소리가 없는 캐릭터임에도 강렬한 임팩트가 있다. 아니 영화의 울림은, 진정한 힘은 그녀에게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선영, 문정희, 조한철, 김태훈, 이상엽 등 조연들도 흡입력 있는 연기를 보여준다.
다만 진실 찾기 과정에서 과도하게 군더더기가 많고 감정적이다. 임팩트 있는 대사와 강력한 배우들의 연기가 충분히 주제 의식을 전달함에도 늘어지고 반복되는 설명, 과도한 몇 몇의 장면들이 필요 이상으로 작품을 다운시킨다.
여성 캐릭터들의 강력한 연대에 비해 남성 캐릭터들은 한 결 같이 과도하게 부정적으로 그려진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나 싶을 정도
다행히 김혜수와 이정은의 시너지가 이 같은 영화에 대한 실망감을 상쇄시킨다. 후반부로 갈수록 이 연대는 빛을 발휘하며 감정선을 폭발시킨다. 휴먼 힐링 드라마서로의 깊은 매력을 지녔다. 오는 12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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