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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분명한 온도차, 이번엔 다르다. 홍상수 감독의 ‘도망친 여자’를 두고 하는 말이다.
홍상수 감독의 24번째 장편영화 ’도망친 여자’가 제70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 감독상을 안긴 데 이어 제16회 루마니아부쿠레슈티영화제에서는 최고 각본상을 수상했다. 작품 공개 후 국내 매체와 평단으로부터도 호평 세례를 받고 있다.
점점 빠져든다. 인물들의 숨은 진심에, 메가폰의 수수께끼 같은 진실 게임에. 어쩌면 오래전 도망쳤을 지도 모를 내 안의 소리에까지. 여전히 비밀스럽고도 통쾌하고 복잡한 듯 단순하다. 그러나 그간의 작품들 가운데 홍상수 감독과 가장 가까이에서 소통하는 느낌이 드는, 영화 ‘도망친 여자’다.
영화는 주인공 감희(김민희)가 번역가인 남편과 결혼한 뒤 5년간 단 한 번도 떨어져 지낸 적이 없다 남편의 출장으로 자유롭게 외출하면서 벌어지는 일상을 담는다. 오랜 만에 옛 친구들을 만난 감희는 차츰 그 동안 도망쳐왔던 내면의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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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희가 만난 또 다른 지인은 수영(송선미). 옛날에 감희와 좀 까불고 놀았던 언니다. 필라테스 선생을 해 큰돈을 저축했고, 그 돈으로 재미있는 동네로 이사를 왔다. 모든 게 순조로운 듯 하지만 결국엔 속내를 다 털어놓는다. 감희는 피곤해하는 수영에게 “재미있게 사는 것 같다. 나는 언니를 믿는다. 잘 할 거다”며 응원한다.
마지막은 여정은 영화 관람. 감희는 그곳에서 우연히 옛 친구 우진(김새벽)과 그의 남편과 마주친다. 유명해진 자기 남편이 위선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정내미가 떨어지고 있는 우진은 감희에게 과거의 잘못을 사과한다. 감희는 괜찮다고,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살았다고, 괜히 그런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녀의 남편이자 옛 남자였던 그와 마주하자 그 찰나의 순간에도 평정심을 잃어버린다. “말 좀 그만하시는 게 좋겠다”며 돌직구를 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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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관객들은 터져 버리는 감희의 감정 속에서, 그간의 반복적인 말이 진심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도망치는 건 곧 감금이요, 진심의 외면은 진실한 소통과 삶의 주체성에서 점차 멀어지는 길임을 깨닫게 한다. 그러고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무엇으로부터 도망쳐 와 있냐고.
홍상수 감독의 수수께끼는 그 어느 때보다 비밀스러운 동시에 솔직하고 가식이 없다.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섬세하고도 섬뜩하고 동시에 사랑스럽다. 무엇보다 영화 속 이들의 평범한 일상을 훔쳐본 뒤에는 나에 대한 질문으로 여운이 가득 찬다. 그의 사생활 과는 별개로, 충분히 빠져들 만한 강렬한 매력이다.
‘도망친 여자
kiki2022@mk.co.kr[ⓒ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