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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시드폴은 정규 9집 '너와 나'를 반려견 보현과의 컬래버레이션으로 완성했다. 제공|안테나 |
(인터뷰①에 이어) "꽤 긴 시간 동안 기타 없는 제 음악을 상상할 수 없이 살아왔어요. 그래서, 어느 순간에는 제가 거부하고 싶더라도 듣는 분들이 ’루시드폴 음악같다’고 할 때, 조용조용한 기타 소리에 나오는 음악, 그렇게 카테고라이즈가 되어 있더군요. 한편으로는 안전한데, 한편으로는 좀 고착화된 것도 있었겠죠. 그런데, 제가 원한 건 아니었지만 기타와 거의 강제적으로 떨어져 살아야 하는 상황이었고, 음악적으로 뭔가 해야 하면서도 기타를 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기타가 가장 멀리 있는 악기가 된 거였죠."
루시드폴은 "처음엔 여러가지 음악을 들었지만 엠비언트 음악(ambient·전자 악기 중심의 공간감적 명상 음악) 음악을 많이 들었다. 그러면서 그런 고민들이 더 깊어지지 않았나 싶다"면서 "엠비언트 음악 자체가, 소리와 음악의 경계를 들려주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피곤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분명 큰 계기, 순간이 된 것 같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작업은 소리의 ’채집’부터 시작됐다. 소리를 채집, 합성할 수 있는 도구를 구했다. 아침 산책길 루시드폴과 아내, 그리고 반려견 보현이 내는 모든 소리를 녹음했다. 계절마다 다른 새 소리, 바람소리까지. 어쩌면 간밤 피어올린 꽃망울이 터지는 소리까지도. 그 모든 소리는 음악의 원재료가 됐다.
채집한 소리가 음악으로 탄생하는 과정은 루시드폴이 ’고요연구소’라 명명한 자신의 작업실에서, 마치 공학도 시절 실험실에서 보낸 일상과 흡사했다. "예전에 실험실에서 실험하고, 데이터 분석하고, 기계 돌리고 결과 나오는 일상처럼, 아침에 일어나 기계 켜고 신시사이저 켜고 유튜브 켜고 강의 듣고, 새로 나온 모듈에 대해 고민하고, 소리 만들고, 보현하고 산책할 시간이 되면 레코더 들고 나가 소리 채집하고, 들어와서 프로파일링 하고... 돌이켜보면 기타 치며 사는 걸 업으로 사는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순간이었지만 그 순간이 어떻게 보면 음악적으로 많이 해방시켜준 것 같기도 합니다."
루시드폴은 이번 앨범에서 ’소리’와 ’음악’의 경계를 두지 않고 모듈러 신스(modular synth), 샘플링, 필드레코딩 (소리 채집), 그래뉼라 신테시스(granular synthesis: 소리의 작은 단위부터 출발해 이를 배열, 가공, 조합해 다른 차원의 사운드를 만드는 디지털 음악합성 기법 중 하나)를 통한 다양한 시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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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시드폴 9집 수록곡 `콜라비 콘체르토`는 반려견 보현이 콜라비를 씹어먹는 소리에서 착안해 완성한 곡이다. 제공|안테나 |
보현이 전방위로 나선 수록곡 ’콜라비 콘체르토’는 이번 앨범 선공개곡으로 낙점됐을 정도로 각별한 곡이다. 보현이 콜라비를 먹는 소리에서 착안해 탄생한 곡인데, 보현의 소리만으로 이뤄진 곡이라 하기 어려울 정도로 색다른 시도가 인상적.
"어떤 개들은 편식도 한다는데, 보현이는 특별히 안 먹는 게 없어요. 특히 콜라비나 사과 같은 걸 먹으면 사람의 구강에서는 절대 날 수 없는, 굉장히 상쾌한 소리가 나요. 처음에는 그런가보다 했다가, 이건 굉장히 음악적이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보현이 콜라비 먹는 소리들을 몇 번을 채집해 이걸 컴퓨터로 더 재미있게 변주해서, 마치 여러 명의 보현 혹은 강아지가 같이 콜라비를 먹으면서 각각 다른 속도와 다른 높낮이로, 하나의 합주를 하는 것처럼 곡을 만들었습니다."
보현은 자신의 소리로 탄생한 ’콜라비 콘체르토’를 듣고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루시드폴은 "조금 신기했던 건, TV나 음반에서 다른 개 소리가 들리면 으르렁거리곤 하는데, 이번엔 짖지 않더라"며 빙긋 웃었다.
"이번 앨범의 경우 완전히 음악으로 바뀌어버린 소리도 있지만, 보현이 왕 하고 짖거나 으르렁 거리는 내추럴한 소리도 있는데 그런 소리들이 노래에 섞여 나와 그런지, 짖지 않더라고요. 편안하게 듣는 것을 보고 자기 소리라는 걸 인지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쉽게도 보현의 마음을 다 읽을 수는 없지만, 편안하게 듣고 있는 것으로 짐작하는 거죠."
콜라비를 맛있고 재미있게 먹던 보현은, 자신의 주인이자 동반자인 루시드폴 덕분에(?) 뜻밖에 뮤지션이 됐다. 앨범 크레딧에 작곡·콜라비 연주: 보현/편곡: 루시드폴’로 이름이 올랐고, 저작권 등록도 진행 중이다. 루시드폴은 "보현의 저작권 등록 서류와 통장을 만들면서 어린 시절 명절 때 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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