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태오가 '버티고'에 출연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제공|씨제스엔터테인먼트 |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양소영 기자]
독일 교포 출신 배우 유태오(38)는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앞에 나타났다. 하지만 그 전부터 꿈을 위해 달려온 그는 망설임 없이 자신의 길을 만들어가고 있다.
유태오는 영화 ‘버티고’에서 서영(천우희 분)의 직장 상사이자 연인인 IT회사 개발팀 차장 진수 역을 맡아 열연했다. 이달 열린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의 오늘 섹션’에 초청된 ‘버티고’는 현기증 나는 일상, 고층빌딩 사무실에서 위태롭게 버티던 서영이 창밖의 로프공과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았다.
전계수 감독의 ‘러브픽션’(2011)에 단역으로 출연한 인연이 있는 유태오는 ‘버티고’ 시나리오를 받고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는 “시나리오가 잘 넘어갔다. 끝부분에 ‘힘내요’라는 대사에 벅차오르는 감정이 있어서 울컥했다. 신기한 게 일 년 뒤 영화를 보고 같은 곳에서 울음이 터졌다”고 말했다.
독일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는 방학마다 한국에 들어와 비디오 가게에서 한국영화를 보며 꿈을 키웠다. 그는 “한국 멜로 영화를 좋아한다. 우리나라 영화에 순수한 시절이 있었다. ‘접속’ ‘편지’ ‘8월의 크리스마스’ 등 그런 영화를 좋아했고, 이런 영화에 출연하는 것이 꿈이고 로망이었다”며 멜로 요소가 담긴 ‘버티고’에 끌렸다고 설명했다.
“배우라는 직업은 감독의 악기예요. 감독이 지휘자죠. 전 기술자예요. 감독님의 비전이 뚜렷하고 주관적으로 명백했어요. 감독님이 ‘러브픽션’ 이후 오랜만에 만든 작품이라고 하더라고요. 마음에 품었던 비전이 있을 거고,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추측과 확신으로 ‘버티고’에 출연했어요.”
↑ 유태오는 캐릭터에 몰입하기 위해 `이력서`를 쓴다고 했다. 제공|씨제스엔터테인먼트 |
‘버티고’는 서영을 중심으로 스토리가 전개된다. 진수는 비밀을 안고 있는 인물로, 많은 궁금증을 남기는 캐릭터다. 유태오는 어떻게 진수를 만들어갔을까. 그는 진수의 이력서를 쓰면서 역할에 몰입했다.
유태오는 “이력서 한 장을 쓴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를 재구성해 대답한다. 그리고 다시 ‘왜’를 다섯 번 질문했다. 시나리오에 한 대사가 있다면 왜 이런 대사가 있는지. 동기는 뭔지, 취향은 뭔지 그 사람의 심리를 묻는다. 그렇게 하다보면 가정교육이 나오고 과거로 들어가게 된다. 이 사람의 심리, 트라우마 등을 알아간다”고 설명했다.
이어 “언제부터 이렇게 한 건지는 자세히 모르겠다. 경험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했다. 5~6년 전부터인 것 같다. 좋아하는 배우들의 테크닉과 습관 등을 연구하면서 데이터를 모았고, 캐릭터 접근 철학을 찾다가 이렇게 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력서를 만들어내고 나면 이 사람이 그날 이 신에 등장하기 전에 뭘 먹었는지 등을 생각하죠. 화면에 안 보이는 디테일을 알고 있고 몸에 배어 나오면 자연스럽게 소화되는 느낌이라 편해져요. 이 대사를 외쳐도 되는 자격이 생긴다고 생각해요. 감독님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요. 단체방에 서영과 진수의 느낌이나 비주얼 이미지, 음악 등 레퍼런스를 찾으면 공유하기도 했어요.”
↑ 유태오가 `버티고`에서 호흡을 맞춘 천우희를 칭찬했다. 제공|씨제스엔터테인먼트 |
촬영 전부터 천우희와 연기를 기대했다는 유태오. 그는 천우희와 호흡에 대해 “기대만큼 편했다. 왜 똑똑한 배우인지 알겠더라. 천우희가 서영이라는 인물이 되어 끌고 가는 힘이 있었다. 멋있었다. 오랫동안 화면에서 그 감정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게 쉬운 게 아니다. 천우희 씨는 너무 쉽게 하더라”며 치켜세웠다.
2015년 ‘양말 괴물 테오’라는 동화도 출간한 유태오는 “호기심이 많다”고 말했다. 넘치는 호기심과 소통을 향한 갈증은 유태오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그는 독일에서 태어나고 자라 미국과 영국에서 연기 공부를 했다. 그러한 모든 상황이 지금의 유태오를 만들었다.
유태오는 “학교 공부 끝나고 글을 많이 썼다. 캐스팅은 안 되고 마음은 나누고 싶고 나의 다양성을 보여주고 싶었다. 나를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압력밥솥처럼 터질 것 같아서 앉아서 썼던 것 같다”고 고백했다.
그는 “연기를 통해 표현할 수 있어서 좋다. 아직도 소통하고 싶은 게 많다. 내 배경, 살아온 환경은 다국적인 문화였다. 그 안에서 쓸쓸함을 느끼기도 하고, 뉴욕에서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공부했고, 영국에서 셰익스피어를 공부했다. 때로는 언어적 장벽이나 나라별 감수성을 느끼면서 외롭기도 했다. 그런 다양성 안에 있었다. 어떻게 보면 난 각 나라의 다양한 식재료가 들어간 부대찌개 같다”고 표현했다.
↑ 유태오는 오랜 무명 생활을 버틴 힘으로 연기에 대한 열정을 꼽았다. 제공|씨제스엔터테인먼트 |
지난해 칸 국제영화제에 초청된 ‘레토’를 시작으로 올해 tvN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 SBS 드라마 ‘배가본드’를 통해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유태오. 사람들이 아직은 많이 알아보지 못한다며 “‘아스달 연대기’에서는 분장을 해서인지 못 알아보더라. 최근에 관계자를 만났는데 절 그 캐릭터와 매치 시키지 못하더라. 그런데 그게 좋았다. 하얀 캔버스처럼 백지로 봤다는 이야기니까. 캐릭터에 맞게 에너지와 기를 변화할 수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스낀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연기자가 꿈이었고, 연기자로 잘 해내고 싶었어요. 지금이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낯선 환경에서 내가 모르는 무언가를 배우고 도전하는 게 좋아요. 무명 생활을 버틴 것도 연기 때문이었죠. 아직은 변화를 느끼진 못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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