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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엽은 ‘오세연’에서 손지은(박하선 분)과 금기된 사랑을 나누며 혹독한 홍역을 치른, 생물선생님 ‘윤정우’를 연기했다. 제공ㅣ웅빈이엔에스 |
배우 이상엽(36)에게 드라마 ‘평일 오후 세시의 연인’은 모험이었다. 유난히 맑고 큰 눈 때문에 아직도 소년미가 배어 있는 그에게 격정 멜로란 먼 나라 얘기 같았다. 주변 반응 역시 기대 반 우려 반이었다.
이상엽 역시 지난 제작발표회에서 “내 경험만으론 한계가 느껴진다”고 고백했을 정도다. 그런데, 모든 게 기우였다. 그 스스로도 불안함을 갖고 시작한 드라마지만, 변신은 성공적이었다.
이상엽은 무미건조한 일상을 살다가 인생을 송두리째 흔드는 사랑을 겪는 생물선생님 ‘윤정우’ 를 진정성 있게 연기했다. 눈빛, 목소리, 감성, 손 떨림 하나까지도 모두 ‘윤정우’ 그 자체였다. 손지은(박하선 분)과 금기된 사랑을 나누며 혹독한 홍역을 치른, 그래서 한층 더 성장한 이상엽을 28일 서울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Q. 드라마를 끝낸 소감은
가슴이 뻥 뚫린 것 같은 요즘이라서 그 말을 계속 생각하고 있다. ‘서서히 깊숙이 스며들다’. 얼마 전 많이 아팠다. 일정을 취소할 정도였다. 윤정우에서 이상엽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겪는 것 같다. 저한테 깊숙이 박혀 있던 드라마여서 오래도록 생각날 것 같다. 대본을 너무 많이 봐서 다른 활자들이 눈에 잘 안들어왔다. 그만큼 몰입하게 했던 드라마다. 술이 많이 당기는 드라마였고, 작품 하면서 이렇게 많은 전화와 문자를 받은 것도 처음이었다.
Q. 이번 드라마가 더 특별했다는 건가
딥한 멜로를 한 게 처음이라… ‘착한 남자’ 때는 너무 일방적인 사랑이라 못 느꼈는데, 이번에 몰입이 많이 된 것 같다. 찍으면서는 잘 모른다. 끝나고나서 안다. 이번에도 그럴 것 같다.
Q. 연기하면서 중점을 둔 것이 있다면
대사들이 별로 없다. 감정을 드러내는 대사들이 잘 없다. 눈에서 많이 표현해보자, 그게 목표였다. 열심히 쳐다보는 게 목표였다.
Q. 눈이 예쁘다는 반응이 많았다. 렌즈를 낀 건가
아니다. 라섹했다. 렌즈는 필요 없다. 안구건조가 도움이 됐던 건 아닌가 싶다.(웃음)
Q. 지난 제작발표회 때 ‘내 경험만으론 한계를 느꼈다’고 했는데. 촬영하면서 극복이 됐나
원래는 제가 하는 드라마나 작품을 여러 번 본다. 어느 부분에선 ‘저거 좋아’ 이러는데, 이번 드라마는 다시 보기 힘들 것 같다. 시작할 때 얘기처럼 대본이나 상황들을 잘 표현했나 그런 생각이 든다. 넘쳐서도 안되고 부족해서도 안되는 그런 감정들이라서. 마지막까지 내가 잘 하는 건가, 그런 생각은 계속 들었다.
Q.미혼이라 표현하기 어려웠을 듯 하다
상대 역들이 다 기혼이었기 때문에 많은 얘길 나눴다. 작가님, 감독님, 박하선 씨에게 매번 질문을 했던 것 같다. 그 어느 때보다 현장에서 대화를 많이 했다. 그나마 그래서 따라갈 수 있지 않았을까(싶다). 이 드라마 찍으면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연애를 하게 되면 온전한 나로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래야 되겠구나… 그 사람에게 전적으로 맞춰주는 건 지양해야겠구나 생각했다.
Q.불륜이 이해되는 부분은 있었나
이해되진 않는데, 안타까웠다. 캐릭터들이 다 고통을 받고 마지막들이 다 안 좋았다. 그러지 말아야지 그런 생각을...(웃음)
Q.격정멜로가 처음이었는데, 하고 나니 어땠나
상대가 되게 중요하구나 싶더라. 호흡이 잘 맞았다. (박하선과) 카메라가 꺼졌을 때 깨방정이나 엔돌핀들이 잘 맞더라. 그동안 호흡을 맞춘 배우 중에 ‘넘버원’이지 않았나.
Q.여배우 남편(류수영)이 의식되진 않았나
의식이 안 될 수 없다. 현장에 서 있는 사람 자체가 손지은이어서, 작품 얘길 주로 하다 보니 사적인 얘길 많이 못 나눴다. 편하게 찍었는데 약간 걱정이 되긴 한다.(웃음)
Q. 박하선과의 호흡이 무척 좋았나보다
이 드라마는 ‘박하선의, 박하선에 의한, 박하선을 위한 드라마’라 생각한다. 최고의 연기로 받아주지 않았다면 ‘정우’ 역도 잘 살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하선 씨가 예능 출연도 했으면 좋겠다. 깨방정이 상상을 초월하고 털털한 친구다. 덤앤더머 같은 남매 케미로 예능에서 만나 콩트를 하고 싶다.(웃음)
Q.마지막회를 열혈 시청자들과 함께 보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커뮤니티 글들을 보면서 너무 감사했다. 그래서 (제가) 먼저 제안했고, 하선 씨랑 반반씩 내서 사비로 마련했다. 현장에서 막방 보고 즉석에서 초스피드로 종영 소감을 했는데, 울컥했다. 하선 씨랑 우리 들어가서 절대 울컥하지 말자 했는데, 너무 몰입해준 사람들이 많아서 혼났다. ‘지은이가 저렇게 힘든데, 넌 어디서 뭐했느냐’고. 가족같이 편하고 좋았다. 하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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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엽은 “박하선의, 박하선에 의한, 박하선을 위한 드라마”라며 상대역 박하선을 극찬했다. 제공|웅빈이엔에스 |
소년미가 싹 빠진 어른멜로를 해보고 싶었다. 정말 진지한 역할을 하고 싶었는데 눈에 잘 들어왔다. 뭔가 감당이 안될 것 같았는데 해보고 싶기도 했다.
Q.불륜이란 소재 때문에 망설이거나 주변의 우려는 없었나
주변 뿐 아니라, 배우 스스로도, 감독님도 모두들 했던 걱정이다. 그래서 대화를 많이 했다. 어머니가 되게 많이 응원해주셨다. 대본도 같이 보시면서.
Q.주변 반응은 어땠나
연락이 많이 왔다. 이민 간 친구, 결혼한 친구들에게 연락을 많이 받았다. 시작할 땐 질타를 많이 받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는데, 저희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사랑을 많이 받았다. ‘남편하고 따로 보고 있다’ ‘아줌마들이 모여서 같이 본다’는 얘길 들으면 기분이 좋았다. 댓글들을 보면 40대가 월등이 많더라. 그분들의 공감을 얻었다는 게 신기했고 감사했다. (그분들은) 훨씬 더 멘트가 직진이다. 훅 들어오시니까 매 순간 멘탈 관리를 잘 하고 있다.(웃음)
Q. 예를 들면?
‘포옹 한번 하자’고 하면 제가 얼더라.
Q. 주인공으로서 부담감도 컸을텐데
부담감과 책임감이 있었다. 그런데 힘들면서도 스태프까지 다 챙기는 박하선 씨의 모습을 보면서 ‘그래 저거지’ ‘저래야 하는구나’ 따라 많이 배웠던 것 같다. 과거엔 저 위주로 생각했다면 이번엔 좀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전체를 보려고 했고 전체 얘기가 더 궁금해지기도 하고. 주인공이란 무게는 참 무겁구나 많이 느꼈다.
Q.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정)상훈이 형에게 무릎 끓었던 장면도 생각나고. 원래 무릎을 꿇는 것이 없었는데 저절로 무릎이 꿇어졌던 신이었다. 놀이공원에서 ‘지은씨와 같이 있고 싶어요’하는 대사는 제가 만든 대사였다. 저는 그 대사를 하고 싶었고, 양해를 구해서 했다. 그 상황에서 직진을 좀 하고 싶었다. 놀이공원을 하루 종일 찍었는데, 둘이 오랜만에 놀이공원에 오기도 해서 캐릭터를 놓고 박하선 이상엽으로 놀고 있더라.(웃음) 또, 학생들이 ‘우리 학교에 오지 마세요’ 하는 장면들은 컷 수가 많아지면서 애드립이 늘어났다. 그땐 제가 좀 울컥하더라. ‘컷’ 소리가 나면 뛰어가서 ‘우이쒸’ 하기도 했다.
Q.연기하기 어려웠던 장면은 없나
순간순간 제가 보이면 안된다 생각했다. 어두운 이상엽이 보이고 어두운 윤정우가 보이지 않을 때가 있는데, 그 점이 되게 어려웠다. 윤정우 자체로 계속 있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선 씨와 호흡을 같이 하면서 힐링을 많이 했지만, 혼자 있을 때 윤정우 신을 찍을 땐 저도 같이 뚝뚝 떨어져서 텐션 잡는 게 어려웠다. 정말 기운이 쭉쭉 빠지더라. 정우가 혼자 있을 때는 조명도 어두웠다. 그게 윤정우의 분위기일텐데 그걸 감당해내는 게 힘들었다. 정우와 지은이가 만날 때는 늘 비가 왔다. 비 맞는 게 익숙해질 법도 한데, 쉽지 않더라. 막 감정 잡았다고 생각하는데 빗물이 눈에 들어가고... 재밌기도 하면서 쉽지 않았다. 또, 우스꽝스런 장면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는데 지은이 정우에게 키스를 하기 위해 다가올 때 밀치는 신이 그냥 놀람이어야 하는데 그 신을 찍고 기절해서 자버렸다. 그 장면에 대한 스트레스가 되게 강했나 보다.
Q. ‘윤정우’와 닮은 점이 있다면
포기가 빠르다는 것. 그걸 장점이라 생각했는데 ‘윤정우’를 보면서 이건 장점이 아닐 수도 있겠단 생각을 많이 했다. 사랑에 관해 적극적이라 생각했는데, 정우를 보면서 그렇지 못하더라. 그건 고쳐야겠다 싶다. 그래서 더 정우를 직진하고 싶었다. 거기엔 제 바람도 투영되지 않았을까.
Q. 격정 멜로 다음이 예능(tvN 예능 ‘시베리아’)이다
아직 오픈되지 않은 거라 얘기하기가 조심스러운데, (제게) 스위치 같은 게 있어서 예능 가면 스스로 톤업이 엄청 된다. ‘런닝맨’ 가면 이 목소리가 아니라, ‘왜 그래요’ 이러고 있더라. 그냥 나로, 이상엽으로 하고 싶었다. 막내가 되면 제가 외동이라 형들에게 애교가 많다. 이번엔 그냥 이상엽으로 해보자, 이번 작품은 그냥 이상엽, 멍 예능이 아닌가. 제작진에게 미안함 마음도 있었다. 예능인데 그냥 이상엽으로 가 있어서. 그래도 이상엽이어서 기대가 되긴 한다.
Q. 결혼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을 듯 하다.
대화를 많이 하고 통하는 부분이 가장 중요한 문제더라. 한창 결혼이 정말 하고 싶을 때가 있었는데, 요즘엔 아무 생각이 없어졌다. 이제는 온전한 나를, 온전한 나로서 사랑하고 사랑해주고 싶은 사람을 만나면 좋겠다 싶다. 예전엔 누군가에게 맞춘 모습이 나더라. 이 작품을 하면서 제일 많이 불렀던 노래는 커피소년의 ‘장가 갈 수 있을까’였다. 제가 편해지면 아무말 대잔치 하는 사람이라 그걸 받아주는 사람이면 좋겠단 생각이 있다.
Q. 차기작에 대한
작품 끝나고 영화나 드라마가 몰리는 게 제 입장에선 처음이다. 좀 신기한데, 아직까지 제대로 보진 못하고 있는데 행복한 마음으로 보고 있다. 반대 패턴의 것들을 고집했었는데, 이번엔 모르겠다. 마음 가는 것, 좋은 거? 제가 할 수 있는 것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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