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년 만에 새 앨범 `아베크피아노`로 돌아온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정재형이 단독 콘서트로 팬들 앞에 선다. 제공|안테나 |
정재형(49)은 TV나 라디오에선 다소 엉뚱하고 어수선한, 개성 강한 캐릭터를 보여준다. 전문 예능인은 아니지만 최근 깜짝 등장했던 '놀면 뭐하니?'를 비롯해 이따금씩 출연하는 예능에선 강렬한 존재감을 입증해왔다.
하지만 주지하다시피 정재형은 90년대를 풍미한 혼성그룹 베이시스 출신 작곡가이자 음악감독, 그리고 피아니스트로 활동 중인 전천후 뮤지션. 무려 9년 만에 새 앨범을 내놓으며 모처럼 '본업'에 충실한 그는 여름의 한복판, 단독 콘서트로 팬들을 만날 채비를 마쳤다.
정재형은 오는 23일부터 25일까지 3일간 서울 동덕여자대학교 공연예술센터에서 단독 콘서트 '2019 정재형이 만드는 음악회'를 개최한다. 이번 공연은 지난 6월 내놓은 연주앨범 '아베크 피아노(Avec Piano, 피아노와 함께)' 발매를 기념해 열리는 공연. 그는 '혼자여도 좋을 당신의 늦여름밤,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을게요'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그만의 템포를 준비 중이다.
공연에서는 신보 '아베크 피아노' 수록곡을 비롯해 2010년 발표한 '르쁘띠피아노' 속 솔로곡 및 기존 작업했던 다양한 곡을 만나볼 수 있다. 많은 말이 필요 없는, 음악으로 마음을 전하는 정재형의 '아베크 피아노'가 완성되기까지의 여정과 그의 음악 인생을 공연에 돌아봤다.
'아베크 피아노'는 2010년 발표한 '르쁘띠피아노' 이후 9년 만의 새 연주앨범이다. 9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린 데 대해 정재형은 "무엇을 그려내야 할 지 잘 안 그려져 헤매고 고민했다"고 말했다.
영화음악 등 비교적 스케일이 큰 음악을 주로 해왔던 정재형에게 실내악 같이 스케일이 작은 소규모 편성은 오히려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고. 그는 "부피도 그렇고 제한적인 소리여서, 실내악 곡을 쓰는 게 오케스트라 쓰는 것보다 몇 배는 더 어려웠던 것 같다"고 했다.
↑ 정재형은 일본의 외딴 산장에서 바다와 공존하며 얻은 깨달음을 신보 '아베크피아노'에 담았다. 제공|안테나 |
곡 작업은 1년 여 전, 일본 도쿄에서 한시간 정도 떨어진 가마쿠라라는 작은 바닷가 마을의 산장에서 진행됐다. 그는 "곡이 하도 안 나와 라디오('즐거운 생활')를 그만둔 바로 다음날 떠났다. 절박함이 있었다"고 말했다.
"어떻게 쓰겠다는 커다란 담론을 잡아놓고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그냥 '흐르는대로 쓰자'였죠. 그런데 작업 시기나 장소가, 오롯이 나를 되돌아보게 하는 게 있었어요."
해안 절벽 위 외딴 산장에 홀로 머무른 기간의 느낌에 대해 정재형은 "자연에 동화된 것 같았다"고 했다. "뷰만 있지 산꼭대기에 집 하나 달랑 있는 곳이었어요. '자연과 나'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죠. 처음엔 그 곳이 굉장히 무서웠는데 하루, 이틀 지나며 그 곳에서 굉장히 많이 마음의 위로를 받았고, 나를 들여다보면서 오히려 더 힘도 많이 얻을 수 있었어요." 160개의 계단을 매일 오르내리며 그는 "불편함이 주는 행복감을 뒤늦게 느꼈다"고 했다.
타이틀곡 '라 메르'는 화려하고 강렬한 피아노 연주와 바이올리니스트 백주영이 연주한 극적인 바이올린 선율이 어우러진 곡. '바다'라는 뜻의 제목 그대로 너른 바다와 파도의 정서를 담고 있다.
"처음 가마쿠라에 머무르며 무서웠던 게, 밤에 파도 소리가 계속 들려서였어요. 창문을 닫아도, 일어나도 철썩철썩 소리가 계속 들리는 거죠. 처음엔 무섭더니 어느 순간 그 소리에 마음이 편해지더군요. '라 메르'는 바다에 대한 이야기에요. 평소 서핑 하면서 이곳 저곳을 다녀봤는데, 바다가 잔잔한 것 같지만 그 안에 들어갔을 때 느껴지는 파도는 굉장히 힘이 세서 누가 도와주지 않으면 훅 밀려나기도 하고 그러거든요. 서핑 하는 게 인생이랑 비슷하구나 싶었어요. 누구나 인생을 옆에서만 바라보면 좀 서글프고, 다들 애쓰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약간 거칠고 힘들지만 잘 살고 있어' '힘들지만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보자'라는 마음이 들었죠. 서로가 서로를 위로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에 '라 메르'를 쓰게 됐습니다."
앨범에는 '라 메르'를 비롯해 자연과 나, 그리고 그 둘의 공존 속에서 얻는 또 다른 에너지를 테마로 서로 다른 듯 같은 결의 8트랙이 담겼다. 이 중 정재형 스스로 가장 만족스럽게 생각하는 연주곡은 '안단테'다. 그는 "가장 수려하게 대위가 이뤄진 곡이라 생각한다. 듣고 있으면 뿌듯하고,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된다"며 빙긋 웃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곡은 단 한 곡도 넣지 않았다"고 엄선해 완성한 앨범. 작업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지만 결실은 역시나 '좋은 음악'. 정재형이 좋은 음악을 계속하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 새 앨범으로 돌아온 정재형이 다양한 활동을 염두하면서도 "공연을 통해 팬들을 만나고 싶다"는 포부를 내비쳤다. 제공|안테나 |
대다수 뮤지션이 음악을 통해 대중에 위로와 공감을 주고자 하듯, 정재형 역시 마찬가지. 그렇다면 음악은 정재형에게 무엇을 줄까. 그는 "나에게도 역시 같다"며 음악으로부터 위로를 받는다고 말했다.
"음악을 한 지 굉장히 오래 됐고, 익숙하지만 한편으론 전혀 익숙하지 않거든요. 작업할 때 늘 전전긍긍하고, 작업할 때 화도 나고. '왜 나는 그 많은 시간들을 공부했는데 뭔가 능숙해지는 게 아니고 왜 이렇게 어려운걸까' 생각하게 되죠. 초반엔 그러지만 몰입되는 어느 지점에서부턴 '아 음악 하길 잘 했구나' '음악이 주는 행복감이 나에게도 이제, 조금은 생기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피아노를 쳤을 때, 언젠가 한 번은 굉장히 오랜만에, 울컥 하는 느낌이 있었는데, 이게 음악이 주는 힘이구나 싶었죠. 나의 가장 속상한 힘듦을, 음악이 위로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정재형은 "이번 앨범은 '정재형이구나' 하고 들어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일렉트로닉도 했고, 발라드도 하고, '순정마초'도 하고 '르쁘띠피아노'도 하고 영화음악도 하는, 그런 음악, 곡의 흐름대로의 정재형으로 봐주시면 될 것 같다"고 부연했다.
1995년 데뷔, 내년에면 데뷔 25주년을 맞는 정재형. 그는 "거창한 몇 주년 기념 공연 같은 건 할 생각이 없다"면서도 "공연은 물론 계속 할 것"이라며 힘 줘 덧붙였다.
"공연을, 계속 하겠습니다. 외로운 분들, 혼자서 서글픈 분들, 연인인데 외로운 분들이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시간들,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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