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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짐 자무쉬 감독 사진=ⓒAFPBBNews=News1 |
미국 인디영화의 거장 짐 자무쉬가 돌아왔다. ‘같음’을 벗어나 ‘다름’을 살아가는 이들의 B급 유머로 담아내는 짐 자무쉬의 반가운 신작 ‘데드 돈 다이’는 여전히 유효한 짐 자무쉬 바이브를 한가득 품고 있다.
1953년 미국에서 태어난 짐 자무쉬는 오랜 시간 미국 인디영화계 필두에 서왔다. 연출뿐만 아니라 직접 시나리오를 쓰는 만큼 작가로도 불리고 있다.
짐 자무쉬의 영화는 긴장감을 가질 만한 상황에서도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느슨하다. 서스펜스가 결여되어 있어서다. 고독과 소외를 다루면서 그들을 둘러싼 사회 부조리나 거대한 담론을 다루지도 않는다. 오직 리듬과 템포, 분위기를 그리는 짐 자무쉬의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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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천국보다 낯선’ ‘커피와 담배’ 포스터 사진=영화 ‘천국보다 낯선’ ‘커피와 담배’ |
◇ 별거 없는 ‘천국보다 낯선’(1984), ‘커피와 담배’(2003)
짐 자무쉬의 괴짜 영화의 역사는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천국보다 낯선’은 그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영화로 흑백 로드무비다. 짐 자무쉬는 한 여자와 두 남자의 미국 여행길을 통해 미국의 민낯을 탈탈 턴다.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을 화두로 올린다면 대개 거창한 이야기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짐 자무쉬는 오히려 별거 없는, 어떤 이는 심심하다고 할 정도의 영화적 형식으로 이 뜨거운 주제를 담아냈다. 당대 미국 사회의 하층민, 이민자, 가난한 자를 훑는 카메라는 고정되어 있으며 롱테이크로 장면을 이어간다. 여기에 수시로 개입하는 암전 탓에 극에 몰입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심지어 내러티브가 부재한 듯 느슨한 전개에 당혹스러운 순간도 맞닥뜨리게 된다.
차분하게 영화를 따라가던 관객이 결국 마주하는 건 제 갈 길을 가는 세 인물이다. 거대한 꿈을 품었던 이 청년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그 끝에는 허무함만이 남아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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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커피와 담배’ 스틸컷 사진=영화 ‘커피와 담배’ |
짐 자무쉬는 1986년부터 커피와 담배를 주제로 한 연작 성격의 단편을 꾸준히 만들었다. 마침내 2003년 총 11개 에피소드로 구성된 장편영화 ‘커피와 담배’를 내놓았고, 에피소드별로 배우와 시기가 모두 다르다. 주제인 커피와 담배를 제외하고는 옴니버스라고 할 만한 구석도 없다.
카메라는 커피와 재떨이가 놓인 테이블을 사이에 둔 두 인물의 대화를 담을 뿐이다. 그런데도 짐 자무쉬 특유의 감각적인 연출이 미학적 성취를 이뤘고, 각 에피소드별 인물들의 대화는 어이없고 엉뚱하고 공감되어 여러 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커피와 담배’를 통해 짐 자무쉬는 커피와 담배에 삶을 투영했다. 설명을 따로 두지 않아도 유머와 다양한 분위기가 서린 이 영화를 통해 그는 어떤 정서를 전한다. 그리고 드라마 없이도 러닝타임은 채워지고 영화는 지속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영화라는 매체가 강박증적으로 목매는 정보 전달과 드라마에 대한 강박이 없으니 실제와 허구의 경계도 자연히 모호해진다. 짐 자무쉬는 결국 ‘커피와 담배’로 새로운 경험의 토대를 마련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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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포스터 사진=영화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
◇ 황량해서 아름다운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2013)
짐 자무쉬 감독은 21세기를 살아내야만 하는 이브와 아담의 러브스토리를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에 담았다.
이브(틸다 스윈튼 분)와 아담(톰 히들스턴 분)은 미국 디트로이트와 모로코 탕헤르라는 먼 거리에 떨어져 지내는 뱀파이어 커플이다. 요즘 말로 하면 ‘롱디 커플’인 이들은 수세기에 걸쳐 사랑을 이어왔다.
초월적인 사랑의 힘으로 작은 위기조차 없을 것 같은 두 사람에게도 위기가 찾아온다.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으로 활동 중인 아담이 인간 세상에 대한 염증으로 절망에 빠지는 게 시발점이다. 이브는 연인을 위로하기 위해 디트로이트행 밤비행기를 타고 아담에게 날아간다. 마침내 두 사람은 재회하지만 이브의 여동생 애바(미아 와시코브스카 분)의 등장으로 숨겨둔 뱀파이어 본능이 깨어나며 평온이 깨진다.
본능을 거세당한 인물들은 현대 사회 구성원의 일부로서 하루하루 살아간다. 목숨을 위협할 정도의 상실이지만 일단 살아가기 위해선 별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게 더 큰 문제다. 하지만 이들은 결코 심각해지는 법이 없다.
이브와 아담이 배회하는 밤거리는 황량할 만큼 허무하지만 그래서 더 아름답다.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밤하늘에 별처럼 박히고, 무거운 공기를 유머로 바꾼다. 짐 자무쉬가 그린 뱀파이어 러브스토리에는 오직 낭만만이 충실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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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데드 돈 다이’ 포스터 사진=유니버설 픽쳐스 |
◇ 짐 자무쉬의 좀비 월드 ‘데드 돈 다이’
짐 자무쉬가 좀비 영화 ‘데드 돈 다이’를 들고 찾아왔다. 이 영화는 제72회 칸 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됐으며, 당시 ‘더 데드 돈트 다이’라는 제목이었지만 국내 개봉명은 좀 더 간결한 ‘데드 돈 다이’로 확정됐다.
지난 31일 개봉한 ‘데드 돈 다이’는 미국의 평화로운 마을 센터빌에 좀비가 출연하자 어설픈 경찰관들이 그에 맞서는 내용을 그린다. 일명 ‘짐 자무쉬 사단’으로 불리는 배우
짐 자무쉬 필모그래피에서 좀비 영화는 낯선 장르다. 그러나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모든 소재를 독창적인 분위기로 변주해온 그인 만큼 ‘데드 돈 다이’를 통한 신선한 도전이 돋보인다.
MBN스타 대중문화부 김노을 기자 sunset@mkcul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