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말싸미’, 극장가 여름대전 기대주로 급부상한 이유[MK무비]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한현정 기자]
‘한글 창제’에 얽힌 아름다운 역사를 담은 ‘나랏말싸미’가 극장가 여름대전의 포문을 연다. ‘사자’ ‘엑시트’ 등 가벼운 오락성과 화려한 볼거리에 치중한 경쟁작들과는 차별화 된, 놀라운 역사가 전할 더 위대한 감동을 가득 품은 웰 메이드 사극의 귀환이다.
영화 ‘나랏말싸미’(감독 조철현)는 모든 것을 걸고 한글을 만든 세종과 불굴의 신념으로 함께한 사람들, 역사가 담지 못한 한글 창제의 숨겨진 이야기를 그렸다. 고(故) 배우 전미선의 유작이기도 하다.
'나랏말싸미'는 한글을 만드는 과정 속 역사가 기록하지 못한 이야기를 다뤘다는 점에서 일단 흥미를 자극한다. 정치적으로 불교를 억압했던 조선시대에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왕 ‘세종’(송강호)과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스님 ‘신미’(박해일)가 손을 잡고 만든 한글. 세상의 모든 소리를 담을 방법을 찾기 위해 ‘세종’과 두 아들인 ‘수양(차래형)’과 ‘안평’(윤정일)부터 ‘신미’ 스님과 그의 제자, ‘학조’(탕준상), ‘학열’(임성재)까지 합세한다.
여기에 한글을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한 ‘소헌왕후’(전미선)와 궁녀들까지 개인의 업적이 아닌 모두의 성취였던 ‘한글’의 이야기는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예정이다.

특히 영화 속에는 한글 창제 과정에 숨어있는 과학적 원리를 엿보는 재미까지 담겨있다. ‘세종’이 새 문자를 창제하기 위해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하루하루 먹고살기도 힘든 백성이 배우기 쉬울 만큼 간단해야 한다는 것.
중국의 각종 언어학 서적을 섭렵했음에도 해결책을 찾지 못했던 ‘세종’은 소리글자에 능통했던 ‘신미’를 통해 그 실마리를 조금씩 찾는다.
발성 기관의 모양을 따 어금니 소리 ‘ㄱ’, 혓소리 ‘ㄴ’, 입술소리 ‘ㅁ’, 잇소리 ‘ㅅ’, 목소리 ‘ㅇ’으로 기본자를 만들어낼 수 있었고, 이 기본자에 획을 하나씩 더해 된소리까지 만들어 내는 과정들은 극에 활력을 불어넣어 보는 즐거움을 더한다.
점 한 자로 시작됐던 글이 선과 면의 모습으로 다채로운 형태를 갖추기까지의 힘겨운 과정을 섬세하게 담아 오늘날 우리들이 당연한 듯이 사용하고 있는 한글에 대한 감사함과 죄송스러운 마음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무엇보다 배우들의 연기력은 이 모든 요소를 극대화시킬 정도로 탁월하다. 송강호는 한글을 창제한 위대한 임금의 뒤편, 인간 적 고뇌를 담은 이도의 모습을 담아냈다.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 만난 히스테릭하고 예민한 세종대왕(한석규)과는 다른 모습.
‘뿌리깊은 나무’에서는 한글이 만들어지까지 중국의 위협과 여기에 동조한 반대파 대신들의 압박이 주를 이뤘다면 ‘나랏말싸미’에서는 한글을 만들어야 한다는 세종의 절박함이, 보다 구체적인 창제 과정이 덤덤하게 펼쳐진다. 당시 견뎌내야 했던 지독한 진통을 담백하지만 깊은 울림으로 완성시켰다. 불필요한 군더더기와 뻔한 영화적 장치를 모두 걷어낸 덕분이다.
그간 다양한 캐릭터를 통해 다채로운 매력을 선보인 박해일은 한글 창제의 숨은 주역인 ‘신미’로 분해 자신이 믿는 진리인 부처 외에는 어떤 것도 섬기지 않는 우직한 인물로 분해 송강호에 견주어도 조금도 부족함 없는 존재감을 드러냈다.
신분, 종교, 성격 등 모든 것이 다른 두 사람의협업과 대립의 과정은 팽팽한 긴장감을 만들어 내는 동시에 묵직한 감동을 선사한다. 이 둘을 만나게 했을 뿐만 아니라 협업과 충돌의 과정 속에서도 한글 창제에 뜻을 보탠 여장부 ‘소헌왕후’는 지금까지 궁중 사극의 여성들과 달리, 누구보다도 현명하고 당당한 현대적인 여성 캐릭터로 적극적으로 한글 창제에 뜻을 함께하며 부드러운 듯 역대급 걸크러쉬 매력을 보여준다.
특별함보다, 자극적이고 화려한 기교 보다는 기본적인 고증에 충실한 만큼 의상이나 미장센 역시 군더더기가 없다. 백성을 사랑하는 ‘세종’의 진심을 표현하기 위해 황토색 등의 자연스러운 색감의 의상을 사용했으며, 왕으로서의 품새를 위해 19겹의 의상을 겹겹이 입혀냈다.
‘신미’는 숭유억불로 인해 가장 낮은 신분이지만, 가장 높은 곳의 왕 앞에서도 굽히지 않는 당당한 모습을 담아내고자 소박하지만 거칠고 야생적인 느낌을 표현하려 했고, 이를 위해 승복 하나하나 손 염색을 거침과 동시에 손바느질로 질감을 다르게 만들어 냈단다. 해인사 장경판전부터 부석사 무량수전, 안동 봉정사까지. 위대한 역사가 깃들어 있는 문화유산을 만날 수 있는 탁월한 경험까지 선사한다.
세종대왕의 과학적 업적은 그 기술력 자체만으로도 위대하지만 그것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절박함과 의지, 무엇보다 백성에 대한 깊은 사랑이 담겨 있어 더욱 위대하다. 그런 그의 숨은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가 가진 의미와 가치는 충분하다.
소리 글자인 한글의 탄생을 쉽고 흥미있게 풀어내는 한편 신미와 세종, 그리고 소헌왕후로 이어지는 인물 간 밀도 높은 감정선과 대사 역시 시종일관 가슴을 때린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툭툭 터져 나오는 소소한 웃음 코드들은 또 어떻고.

한편, ‘나랏말싸미’는 LA를 기점으로 미주, 캐나다 지역을 포함한 12개 북미 지역 개봉을 확정했다. 개봉 주 최소 미주 전역 10개 관을 시작으로 미국뿐만 아니라 캐나다 지역까지 총 20개 도시, 30개 관을 여는 것을 최종 목표로 박차를 가하고 있다.
8월 2일 대만에서도 약 20개관 개봉을 예정하고 있다. ’신과 함께’를 배급하여 큰 흥행을 일으킨 대만 배급사의 선택으로 흥행 여부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개봉일은 미정이지만, 일본 지역 개봉도 예정돼 있다.
오는 24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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