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 속 씨앗이 하나인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그 씨앗 속에 몇 개의 복숭아가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랏말싸미’ 대사 중”
마찬가지다. 세종이 위대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그의 위대함에 감춰진 노력과 진심 그리고 고통은 아무도 모른다. 위대한 역사, 그것을 가능케 한 더 위대한 세종의 숨은 이야기, 바로 ‘나랏말싸미’다.
영화는 문자와 지식을 권력으로 독점했던 시대, 모든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훈민정음을 창제했던 세종의 마지막 8년을 담는다. 가장 고귀한 임금 ‘세종’과 가장 천한 신분의 스님 ‘신미’가 만나 백성을 위해 뜻을 모은다. 이들의 불굴의 신념으로 탄생한, 그럼에도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이야기, 한글 창제의 숨은 이야기가 비로소 관객들을 찾아간다.
억불정책을 가장 왕성하게 펼쳤던 임금인 세종이 죽기 전 유언으로 신미 스님에게 ‘우국이세 혜각존자 : 나라를 위하고 세상을 이롭게 한, 지혜를 깨우쳐 반열에 오른 분’이라는 법호를 내렸다는 기록 그리고 김만중의 ‘서포만필’에 있는 훈민정음과 불경을 기록한 문자인 범어(산스크리트어)와의 관계 등 한글 창제와 관련된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감독은 이 같은 관계에 주목해 개인의 업적이 아닌 ‘모두’의 성취였던 한글의 창제기를 온 진심을 담아 스크린으로 옮겼다.
이 드라마틱한 상황 속에서 감독은 과감히 군더더기를 걷어내고, (세종의)위대한 임금으로서의 면모가 아닌 그 위대함이 있기까지의 고뇌와 상처, 그리고 실패에 주목한다. 황제의 나라인 중국에 대한 사대와 공맹의 진리를 빌미 삼아 왕권 강화를 견제하는 유신들의 압박에 시달리고 평생을 괴롭힌 질병에 고통 받는, 사랑하는 아내의 상처조차 걷어줄 수 없는 무기력한 남편, 한 인간으로서의 세종에 집중한다. 위인전 특유의 웅장함이나 작위적 장치와 변곡점, 진부한 각종 설정을 배제시킨 채 극도의 담백함으로 승부한다.
그동안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인간 세종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영화가 주는 울림과 여운은 충분하다. 소리 글자인 한글의 탄생을 쉽고 흥미있게 풀어내는 한편 신미와 세종, 그리고 소헌왕후로 이어지는 인물 간 밀도 높은 감정선과 대사 역시 시종일관 가슴을 때린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툭툭 터져 나오는 소소한 웃음 코드들은 또 어떻고. 해인사 장경판전부터 부석사 무량수전, 안동 봉정사까지. 위대한 역사가 깃들어 있는 문화유산을 만날 수 있는 탁월한 경험까지 선사한다.
욕심 부림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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