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사진=ⓒAFPBBNews=News1 |
한 분야에 있어 자신의 이름을 남기고 업적을 새기는 것만큼 명예롭고 보람찬 일이 또 있을까. 여기 애니메이션 외길을 걸으며 전 세계에 자신의 인장을 새긴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가 있다.
1941년 도쿄에서 태어난 미야자키 하야오는 1963년 도에이 동화에 입사한 뒤 줄곧 애니메이션 감독의 길을 걸었다. 1985년에는 스튜디오 지브리를 설립, 일흔을 훌쩍 넘긴 현재까지 스튜디오 소장직을 맡으며 창작가로 일하고 있다.
그는 지난 2013년 개봉한 ‘바람이 분다’를 끝으로 감독직 은퇴를 선언해 충격을 안긴 바 있다. 은퇴 이유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재정난이었다. 한 편의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해서는 적어도 5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고, 긴 제작기간 동안 수익 발생이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에 미야자키 하야오는 은퇴를 결심했지만 몇 해 뒤 “작품을 만들다 죽고 싶다”며 사실상 복귀해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비장한 각오와 함께 돌아온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자연과 인간의 공존부터 현실과 판타지의 공존, 전쟁의 폐해, 인간의 강인함까지 그의 작품에는 확고한 신념이 담겨 있다.
↑ 영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사진=‘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포스터 |
◇ 아니메 거장,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테마 그리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세계는 몇 가지 키워드로 이해된다. 그중 거대한 담론은 인간·자연의 공존과 정체성 그리고 반전(反戰)이다.
초기작 ‘미래소년 코난’(1978),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 ‘천공의 성 라퓨타’(1986), ‘모노노케 히메’(1997)는 물론 여전히 전 세계적 사랑을 받고 있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 등 그의 영화에는 자연과 인간의 충돌,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낸 괴물 같은 자연의 모습이 담겼다. 또한 인류종말이나 자가당착에 빠진 인간 군상은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다루어진 세계관이다.
하야오가 생각하는 공동체 이상향은 자연을 떼어두고 설명하기 어렵다. 인간의 탐욕에서 비롯된 자연 파괴는 그의 작품 속 다양한 형태의 빌런으로 묘사된다. 대표적인 예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오물신(神)이다. 사실 이 오물신은 본래 강의 신인데 환경오염으로 인해 자신의 모습을 잃었다. 결국 신의 시중을 들던 센과 동료들이 그의 몸에 박힌 거대한 무언가를 뽑아내자 미끄럼틀, 고물 자전거, 침대 스프링 등 근대문명이 만들어낸 폐품이 쏟아져 나온다. 인간들이 힘을 합치자 강의 신은 본래 깨끗한 모습으로 돌아가 정체성을 되찾는다.
↑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사진=‘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스틸컷 |
더 나아가 이 오물신이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는 데에는 영화의 주제도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영화 속 하쿠는 치히로(센)에게 ‘이름을 절대 잊어선 안 된다’고 당부한다. 각 사람마다 부여된 이름은 정체성을 상징한다. 온천장 유바바에게 본명을 빼앗기고 센이라는 이름을 부여받은 치히로는 고강도 노동을 해나가며 이전에는 몰랐던 세계를 깨닫는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진정한 정체성의 의미를 알게 되고, 치히로의 이러한 의식 변화는 미야자키 하야오 세계관과 긴밀히 맞닿아있다.
그런가하면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전쟁으로 지구가 오염돼 독가스를 발산하는 부해(腐海)가 형성됐다는 설정을 갖는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인류는 생존을 위협하는 부해로 인해 극한의 상황에 놓인다. 그러던 중 나우시카 공주는 부해 숲에 발을 들이게 되고, 그곳에서 부해가 사실 공기와 물을 정화하는 원천이라는 걸 깨닫는다. 이후 나우시카는 음모를 꾸미는 투르메키아에 맞서는데, 여기서 투르메키아는 인간의 무지에서 비롯된 전쟁, 기계문명의 남용을 상징한다.
↑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마녀배달부 키키’ ‘이웃집 토토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사진=‘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마녀배달부 키키’ ‘이웃집 토토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스틸컷 |
◇ 미야자키 하야오 애니메이션 속 강인한 소녀들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 속 위기에 놓인 소녀들은 스스로 운명을 개척한다. 자의든 타의든 하늘을 날며 더 넓은 세계로 향하는 소녀가 다수 등장하는 그의 애니메이션은 소녀들의 판타지 모험기를 그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속 치히로는 센이 된 이후 거대한 운명의 소용돌이를 스스로 헤쳐 나간다. ‘이웃집 토토로’(1988)의 스츠키, 메이 자매는 엄마의 병환 때문에 이사 간 시골동네에서 미지의 존재들과 조우한 뒤 더 큰 꿈을 꾼다. ‘마녀 배달부 키키’(1989) 속 키키는 진정한 마녀가 되기 위해 낯선 곳에서 독립성을 기르며 주체적인 삶을 형성한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마녀의 저주로 노파가 된 소피는 거대한 마법의 성에서 온갖 고초를 겪으며 자신의 진짜 모습을 깨닫는다.
외유내강의 소녀들이 존재하는 각각의 세상은 마치 통일된 세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평범한 일상을 살던 이들은 판타지적 위기에 놓였을 때 자신조차 몰랐던 내면의 강인함을 발휘한다. 아무리 곤란한 상황을 마주하더라도 주체적으로 헤쳐 나가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속 캐릭터상은 곧 보편적 인간 존엄으로 느껴진다.
↑ 영화 ‘이웃집 토토로’ 포스터 사진=스마일이엔티 |
◇ 디지털 리마스터링 ‘이웃집 토토로’의 귀환
미야자키 하야오가 남긴 명작으로 꼽히는 ‘이웃집 토토로’가 수십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재개봉했다.
지난 6일 디지털 리마스터링 재개봉한 ‘이웃집 토토로’는 도시를 떠나 시골로 이사 온 자매 사츠키와 메이가 숲을 지키는 신비로운 생명체 토토로를 만나며 겪는 모험담을 그린다. 디지털 리마스터링으로 화면과 사운드의 질을 높였으며 최초로 우리말 더빙까지 진행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수많은 스케치와 수채화 물감을 통해 1960년대 일본 시골의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그대로 재현했다. 특히 아침, 점심, 저녁 시시각각 변하는 햇빛의 강약, 각도, 색조 차이는 그가 ‘하늘을 사랑하는 감독’이라고 불리는 이유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여기에 히사이시 조의 사운드 트랙도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에
MBN스타 대중문화부 김노을 기자 sunset@mkcul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