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준호 감독 사진=ⓒAFPBBNews=News1 |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스스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되뇌어본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내가 가는 방향이 나쁜 쪽으로 향하지는 않기를 바라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만 우리가 그 질문을 너무나 자주 잊는다는 게 문제다. 저마다의 이유와 핑계로 질문에 답하기를 주저하고 판단을 보류한다. 자신을 둘러싼 세상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주변에는 어떤 사람들이 숨쉬고 있는지 도통 알 수 없어진다.
봉준호 감독의 감독은 우리가 잊고 있던 이 질문을 상기시킨다. 여태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며 혹은 아득한 앞을 바라보며 ‘이제 어떻게 살아갈까’라고 묻게 만드는 힘이 있다. 여기에는 시대의 부조리와 계급·계층간 충돌, 엘리트 지도층의 위선, 전통적인 상징의 타파 등 우리의 세계를 둘러싼 수많은 이야기가 엉켜 뒹군다.
노이즈를 만들어내며 전진하는 그의 영화들은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우리네와 닮아 있다. 그래서 더 애달프고 처절하다.
↑ 영화 ‘지리멸렬’ 사진=‘지리멸렬’ 포스터 |
◇ 냉소의 씁쓸함 ‘지리멸렬’(1994)
봉준호 감독의 영화는 시종 유머러스하다. 때로는 의외의 장면에서조차 낙천적이다. 하지만 웃음은 곧 냉소와 자조로, 그 맛은 씁쓸함으로 변한다.
단편영화 ‘지리멸렬’은 대학교수와 신문사 논설위원, 엘리트 검사 등 소위 사회지도층 혹은 엘리트 지도층이라고 불리는 이들의 위선적 행태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담았다. 세 가지 에피소드는 각각 단절적인 듯 느껴지지만 에필로그에 이르러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첫 번째 에피소드 ‘바퀴벌레’ 속 대학교수는 평소 도색잡지를 즐겨보지만 겉으로는 심리학교수로서 지식인인 양 행동한다. 캠퍼스를 거니는 여학생을 보고 야한 상상도 한다. 그러던 중 한 여학생을 자신의 방으로 심부름을 보내고, 이내 잊었던 무언가가 생각난 듯 미친 듯이 달린다. 방에 들어선 여학생을 가까스로 따라잡은 교수는 책상 위에 펼쳐진 도색잡지 위로 책을 집어던져 그것을 숨긴다. 그러곤 “바퀴벌레가 있어서 말이야”라고 말한다. 그가 내뱉은 ‘바퀴벌레’라는 단어의 의미가 퍽 노골적이라 더 씁쓸하다.
↑ 봉준호 감독 사진=NEW |
두 번째 에피소드 ‘골목 밖으로’는 ‘바퀴벌레’보다 좀 더 아프다. 아침마다 러닝을 하는 신문사 논설위원은 습관적으로 남의 집에 배달된 우유를 훔쳐 먹는다. 이걸 알 리가 없는 한 신문배달부는 논설위원이 집 주인인 줄로만 알고 신문을 직접 건넨다. 논설위원은 망설임도 없이 제 것인 양 신문을 받아들고 또 천연덕스럽게 우유를 마신다. 논설위원이 자리를 떴을 때 집에서 나온 가정부는 신문배달부를 우유 도둑으로 오인하고 신문을 끊어버린다. 결국 신문 배달을 하는 소년은 한 사람의 그릇된 행동으로 인해 거래처를 잃고 누명까지 쓴다.
마지막 에피소드 ‘고통의 밤’의 만취한 엘리트 검사는 아파트 잔디 위에 쭈그려 앉아 볼일을 보려고 한다. 이때 경비원이 나타나 그를 만류하고, 지하실로 가라며 신문지를 쥐어준다. 적반하장으로 소리를 지르던 검사는 지하실에서 경비원의 밥솥을 발견하곤 가만히 응시한다. 곧이어 컷이 바뀌고 지하실에서 나온 남자는 휴지통 앞에서 아무것도 없는 휴지를 찢어버린다. 카메라는 다시 경비원의 밥솥을 비춘다.
앞선 세 가지 에피소드는 단편적이지만 주제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다. 이른바 ‘가진 자’라고 불리는 이들의 위선이 얼마나 추악한지 낱낱이 고발하고 더불어 살지 못함을 꼬집는다. 에필로그에는 에피소드 속 세 인물이 TV프로그램에 출연해 사회문제에 관한 대담을 나눈다. 우리는 어느 쪽에 속해 살아가는지를 돌이키게 만드는 진정한 블랙코미디의 완성이다.
↑ 영화 ‘살인의 추억’ ‘괴물’ ‘마더’ 사진=CJ엔터테인먼트, 쇼박스, 바른손 |
◇ ‘살인의 추억’(2003)에서 달려 ‘괴물’(2006)을 거쳐 ‘마더’(2009)에 이르다
봉준호 감독의 장편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2000)는 냉소를 감춘 유머로 영화계를 놀라게 했다. 썩 대중적인 작품이 아니었음에, 아쉽게도 흥행면에선 실패했으나 봉준호 감독은 3년 후 ‘살인의 추억’을 통해 일약 스타 감독으로 떠올랐다.
화성 연쇄 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살인의 추억’은 오랜 시간이 지난 현재까지도 수작으로 평가받는다. 단적으로는 상극인 두 형사가 연쇄살인사건을 쫓는 이야기로만 비춰질 수 있지만, 조금 더 깊숙이 들여다보면 당대의 폭압적인 상황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
영화 속 배경인 1980년대 한국 사회의 공기는 더 없이 무거웠다. 봉준호 감독은 당대 분위기를 영화에 고스란히 녹여내 당시 정권의 그릇됨을 이야기했다. 극 중 형사들은 연쇄살인범을 잡을 절호의 찬스를 잡고 지원을 요청한다. 하지만 정권에 반대하는 시위대를 막아야 한다는 명분하에 수많은 경찰들은 시위 현장으로 향하고, 결국 범인을 또 놓치게 된다. 결국 범인을 놓친 건 형사가 아니라 국가였다.
↑ 영화 ‘괴물’ ‘마더’ 스틸컷 사진=쇼박스, 바른손 |
그 다음은 네 번째 천만 돌파 한국영화라는 타이틀을 쥔 ‘괴물’이다. 한국영화에서 쉽게 접할 수 없었던 괴물을 소재로 상업영화의 오락성과 메시지를 동시에 잡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대개 봉준호 감독의 영화가 그렇듯 ‘괴물’에도 한국 사회의 부조리를 꼬집는 목소리가 담겼다. 그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시민에게 온다는 것도 잊지 않고 강조했다.
풍자극에 녹인 유머로 현대 부조리를 지적했던 봉준호 감독이 ‘마더’를 통해 조금은 색다른 이야기를 펼쳐냈다. 한국 사회 전반에 깔린 혹은 강요받아온 ‘어머니’에 대한 통념을 전복하며 이전에 없던 어머니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처음에는 억울하게 누명을 쓴 아들을 위해 물불 안 가리는 어머니의 이야기로 읽히지만, 전개가 진행될수록 기묘한 정서가 새어나온다. 가정과 학교 등 사회 제반을 통해 학습한 어머니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우리가 일말의 의심도 없이 받아들이던 것들이 산산조각나자 비로소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봉준호 감독은 ‘살인의 추억’으로 시골마을과 연쇄살인사건을, ‘괴물’에서 평화로운 한강과 괴수를, ‘마더’로 모성애와 미스터리를 충돌시키며 새로운 장르, 기묘한 정서를 구축했다.
↑ 영화 ‘기생충’ 포스터 사진=CJ엔터테인먼트 |
◇ 공생입니까, 기생입니까 ‘기생충’
그저 영화를 찍고 싶었던 영화광 소년이 훗날 프랑스 칸의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영예로운 상을 품에 안았다.
지난 30일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신작 ‘기생충’은 전원 백수인 기택(송강호 분)네 장남 기우(최우식 분)가 고액 과외 면접을 위해 박 사장네(이선균 분) 집에 발을 들이면서 시작된 두 가족의 만남이 걷잡을 수 없는 사건으로 번져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제72회 칸 국제영화제 최고영예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이번 영화에는 봉준호 감독의 이전 작품들과 다른 지점이 더러 있다. ‘괴물’과 ‘설국열차’(2013)에서 수평적 구조를 탐구했다면 이번에는 수직적 구조를 구현한 점, 구성원이 네 명인 두 가족이 등장하는 점, 부자를 직접적으로 표현한 점 등 봉준호 감독의 전작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던 요소들이 ‘기생충’ 속에 기묘하게 담겼다.
‘기생충’은 봉준호 감독의 장기가 모자람 없이 발휘된 작
MBN스타 대중문화부 김노을 기자 sunset@mkcul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