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어스’ 조던 필 감독 사진=ⓒAFPBBNews=News1 |
[MBN스타 김노을 기자] 영화 ‘겟 아웃’으로 미국 내 팽배한 인종차별 문제에 경종을 울렸던 미국 출신 감독 조던 필이 다시 한번 화두를 던진다.
조던 필의 영화는 관객으로 하여금 찜찜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관객들은 극 중 인물의 처참한 상황을 방관하고, 익숙함과 낯섦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한다. 감독은 이 지점을 정확히 후벼 파며 극심한 배타주의와 정체성 문제에 경종을 울린다.
◇ 배우이자 코미디언, 이제는 감독
1979년 미국에서 태어난 조던 필은 원래 코미디언이자 배우다. 미국의 인기 예능 프로그램 ‘키 앤 필’(Key&Peele) 시리즈에서 키건 마이클 키와 코미디 합을 맞추며 높은 인기를 구가했다. 영화배우로서도 특색 있는 행보를 선보였다. ‘미트 페어런츠3’(2010), ‘원더러스트’(2012), ‘아기 배달부 스토크’(2016) 등 코미디 장르 작품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 ‘키아누’ 사진=영화 ‘키아누’ 포스터 |
그러던 중 ‘키아누’(2016) 각본에 참여하고 단짝인 키건 마이클 키와 주연까지 맡았다. 물론 코미디였다. 두 사람은 갱단에게 빼앗긴 고양이 키아누를 되찾기 위해 킬러 행세를 하는 인물을 연기했다. 탄탄하거나 완벽한 스토리라고 할 수는 없지만 블랙코미디적 요소와 공감 가는 캐릭터들로 서사의 빈틈을 채웠다.
조던 필은 각종 패러디, 스탠딩 코미디 등 한 분야에 있어서 해볼 수 있는 대부분의 경험을 했다. 오랜 시간 코미디 배우로 활약했으니 안정적 노선을 택할 만도 하지만 그는 180도 다른 길을 선택했다. 공포·스릴러 장르의 감독으로 자신의 이름을 다시 쓴 것이다.
↑ 영화 ‘겟 아웃’ 스틸컷 사진=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 코리아 |
◇ 인종차별에 날린 살벌한 경고 ‘겟 아웃’
무겁지 않은 스토리와 코미디로 대중을 만나던 조던 필의 다음 행보는 파격적이었다. 그가 감독 데뷔작으로 택한 장르는 공포·스릴러·미스터리다. 지난 2017년 개봉한 영화 ‘겟 아웃’은 ‘흑인 남자가 백인 여자친구 집에 초대 받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라는 매력적인 시놉시스를 가진다. 이 문장에서 중요한 건 흑인과 백인이다.
‘겟 아웃’은 노골적이다. 수십 명 백인 틈에 자리한 한 명의 흑인은 인종차별을 당한다. 행하는 자는 차별이 아니라고 하지만 당하는 자는 명백히 차별인 상황의 연속이다. 극 중 백인들은 흑인의 육체를 탐하고 지배해야 할 대상으로 삼는다. 그들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경악스러울 만큼 야만적이다.
조던 필 감독이 영화의 장르적 요소에만 초점을 맞췄다면 여러 공포영화 감독 중 한 명에 그쳤을지 모른다. ‘겟 아웃’은 한 발짝 더 나아갔다. 관객으로 하여금 말도 안 되는 상황을 그저 바라보게 함으로써 방관자 혹은 동일자 위치에 놓이게 하는 것. 대개 영화를 볼 때 관객들은 위기를 겪는 주인공에 몰입해 공감을 느낀다. 하지만 ‘겟 아웃’에서는 인물에 대한 공감보다 동일시되는 감정이 더 크게 와닿는다. 의지 혹은 무력으로 위기를 타파할 수 없는, 그야말로 사방이 막힌 벽에 갇힌 최악의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 탓에 관객들은 더 큰 현실적 공포를 체험하게 되고 찜찜한 기분으로 극장을 나서게 된다.
선명한 주제의식과 더불어 독창적 콘셉트 역시 이 영화의 성취다. ‘겟 아웃’을 통해 조던 필은 ‘조던 필 장르’라는 최고의 수식어를 얻었다.
↑ 영화 ‘어스’ 스틸컷 사진=UPI코리아 |
◇ 정체성과 분열에 대한 이야기 ‘어스’
오는 27일 국내 개봉하는 영화 ‘어스’(Us)는 조던 필의 신작이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흑인이 등장하는데 이번에는 가족이다. 아빠, 엄마, 딸, 아들 등 네 명으로 구성된 이 가족은 자신들과 모든 게 똑같은 정체불명의 사람들을 마주하고 공포에 사로잡힌다.
예고편을 통해 공개된 “우리잖아”(It’s Us)라는 대사는 영화의 주제를 함축적으로 표현한다. 인물들은 자신과 동일한 모습이지만 명백한 타인을 마주하며, 이 때문에 누가 진짜이고 가짜인지 경계가 모호해진다. 이처럼 조던 필은 이미 다 안다고 자신했던 것들이 분열되어 가는 섬뜩한 과
‘어스’는 북미 최대 콘텐츠 컨퍼런스인 2019 SXSW에서 선공개됐다. 이후 미국의 비평 전문 사이트 로튼 토마토에서 신선도 지수 100%를 기록하며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조던 필이 그려낸 섬뜩한 세계 ‘어스’. 이 기묘한 이야기가 전 세계 관객을 홀릴 준비를 마쳤다. 김노을 기자 sunset@mkcul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