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의도했냐’가 아니라 ‘어떻게 느꼈느냐’가 중요하잖아요.
쫀득쫀득하고도 집요하다. 심하게 엉킨 실타래기를 풀어가는 과정은 오싹하고도 스릴이 넘치고, 명품 배우들의 열연은 역시나 빛난다. 하지만 관객이 ‘사유’하게끔 만들고 싶었던, 감독의 꿈이 맹목적으로 변했는지 중반 이후부터 목적을 상실한 채 폭주한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이는 멈추지 않는다. 제발 생각하고 되새기고 여운을 느끼라고, 영화 속 인물 그리고 메시지에 자신을 이입하라고, ‘우상’이 아닌 ‘허상’에 대해, 남이 아닌 나에 대해 날카롭게 바라보라고 강요하고 가르친다.
“사람이 이루고 싶은 꿈이나 신념이 맹목적으로 변하면 그것 또한 하나의 우상이지 않을까 싶다. 이 영화를 만든 이유”라는 감독의 말처럼 작품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맹목적으로 꿈을 좇는다. 뺑소니 사고로 아들을 잃은 유중식(설경구)은 ‘핏줄’을, 비밀을 간직한 채 실종된 그의 며느리 최련화(천우희) 생존권 그 자체에, 도지사 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두터운 신망을 받아왔으나 아들이 교통사고에 연루되면서 벼랑 끝으로 몰리는 도의원 구명회(한석규)는 만인의 ‘우상’이 되고자. 이렇게 아들을 잃고 진실을 쫓는 아버지와 아들이 저지른 사고로 위기를 맞는 또 다른 아버지, 비밀을 거머쥔 채 사라진 묘령의 여인이 얽히고 설킨다.
이 엉킨 관계, 이들을 혼란에 빠트린 그날 사건의 진실을 쫓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스릴이 넘치지만 감독은 그 정도에서 만족하질 못한다. 스릴을 통해 보다 진한 메시지를, 사회를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선을, 그 이상의 무엇을 보여주기 위해 무리수를 두고야 만다.
각 인물들의 맹목적 ‘우상’은 그리고 그것을 위한 폭주는 어떤 면에서도 ‘저럴수도 있겠다’는 공감의 여지를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미스터리한 설정들의 연속이지만 실질적인 알맹이는 없다. 예측 가능한 진부한 진실 말고는 별다른 차별성 없이 과도하게 꼬고 비틀고 멋만 부리다보니 사색할 기운은 빠지고 피로해진다.
감독의 진짜 기획 의도는 해외 영화제 출품이었을까. 소위 ‘작품성’을 논할 때 거론될 만한 요소들, ‘있어 보일만한’ 건 다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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