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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버나움’ 나딘 라바키 감독 사진=그린나래미디어㈜, 세미콜론 스튜디오 |
[MBN스타 김노을 기자] 중동 지중해 동쪽 해안에 면하는 아랍국가, 레바논.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이곳에서 나고 자란 나딘 라바키 감독은 자신이 직접 증인이 되어 영화를 만든다. 몸소 느낀 부조리를 날카로운 시선으로 옮겨낸 그의 작품에는 성찰의 힘이 있다.
◇ 연기와 연출의 병행, 흔치 않은 여성 감독
연기를 겸하는 남성 감독은 셀 수 없이 많다. 하지만 연기와 연출을 병행하는 여성 감독은 전 세계를 살펴봐도 손에 꼽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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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버나움’ 나딘 라바키 감독 사진=그린나래미디어㈜, 세미콜론 스튜디오 |
나딘 라바키 감독은 장편 데뷔작 ‘카라멜’(2007)부터 ‘웨어 두 위 고 나우?’(2011), ‘사랑해, 리우’(2014) 그리고 바로 어제(24일) 개봉한 ‘가버나움’에 이르기까지 각본과 감독, 연기를 도맡아 활약하고 있다. 물론 중간중간 배우로서 참여한 작품들도 그의 필모그래피 한편을 든든하게 지키고 있다.
‘카라멜’은 그의 고향 레바논에서 촬영됐으며, 개봉 당시 현지에서 상영된 영화 중 최고의 흥행 스코어를 기록했다. ‘사랑’이라는 추상적인 감정을 일상적으로 풀어내고, 그 감정을 통과하는 인물의 면면을 섬세하게 연기, 연출해 호평 받았다.
‘웨어 두 위 고 나우?’와 ‘사랑해, 리우’에서도 카메라 안팎으로 옮겨 다니며 극의 완성도를 높였다. 특히 ‘사랑해, 파리’ ‘뉴욕 아이 러브 유’에 이은 도시 옴니버스 영화 ‘사랑해, 리우’에서는 열한 명의 세계적인 감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리우데자네이루를 신선한 시각으로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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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어 두 위 고 나우?’ 나딘 라바키 사진=영화 스틸컷 |
◇ 부조리에 대한 통렬한 비판, 나딘 라바키의 시선
나딘 라바키 감독의 진수는 날카로운 시선에 있다. 시대상의 부조리를 통렬하게 비판하면서도 그 안에 놓인 인물을 쉽게 연민하지 않으며, 성찰의 여지를 남긴다.
그의 두 번째 장편 연출작 ‘웨어 두 위 고 나우?’는 내전으로 몸살을 앓는 레바논 소도시에서 무슬림 남성들의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종교간 다툼으로 인해 끊임없이 피해자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여성들은 종교를 초월하고 대동단결을 꿈꾼다. 무거운 주제이지만 코미디 장르의 외피를 취해 이야기를 일종의 우화처럼 담아냈다.
독특하게도 레바논은 기독교와 이슬람 세력이 거의 동등하게 유지되어 왔다. 하지만 종파 분쟁은 숙명과도 같기에 수십 년 내전이 지속된 결과 20만 명에 육박하는 희생자가 나왔고, 많은 이들이 난민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나딘 라바키 감독은 ‘웨어 두 위 고 나우?’를 통해 이 과정에서 자행된 부조리와 서로를 향한 경멸의 감정을 통렬하게 비판했다. 특히 이슬람교도인 어머니가 종파 분쟁으로 사망한 아들의 죽음을 숨기기 위해 젖 먹던 힘까지 다 하는 모습은 아이러니하게 느껴져 생각의 여지를 남긴다.
나딘 라바키 감독이 연출한 대부분의 영화들은 블랙코미디다. 우스꽝스러운 상황에서도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씁쓸한 뒷맛을 안기며 비판의 시선을 견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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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버나움’ 포스터 사진=그린나래미디어㈜, 세미콜론 스튜디오 |
◇ 모두의 문제, 절망과 카오스의 도시 ‘가버나움’
‘가버나움’은 공개와 동시에 세계 유수 영화제에 노미네이트되며 저력을 보였다. 제71회 칸영화제에서 ‘버닝’(이창동 감독), ‘어느 가족’(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함께 황금종려상 유력 후보로 점쳐지며 영화제의 화제작으로 일약 떠올랐다.
이 영화는 지옥 같은 세상에 자신을 낳은 부모를 고소한 아이 자인(자인 알 라피아)에 대한 이야기를 그렸다. 자인이 고소한 대상은 부모이지만, 그를 내팽개친 매정한 이 세계도 고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영화의 제목인 ‘가버나움’은 이스라엘 갈릴리 바닷가에 있던 마을로, 성경에 등장한다. 이후 이 단어는 ‘카오스’ 혹은 지옥을 의미하게 됐다.
나딘 라바키 감독이 그린 극중 상황은 카오스 그 자체다. 아동 인신매매, 매매혼, 불법적 입양, 이주노동자, 난민 문제 등 묵인 하에 자행되는 끔찍한 문제들이 담겨 있다. 그리고 약자인 아이들은 이 지옥 같은 삶의 무게를 고스란히 떠안는다.
이야기만 놓고 보면 자칫 감정 과잉 함정에 빠질 수 있는 상황에서도 감독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 이로써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성찰의 입장에 놓이며, 단순한 연민이 아니라 공감의 수순을 밟게 된다.
비전문 배우를 고용하기로 유명한 나딘 라바키 감독은 ‘가버나움’에서도 전문 배우를 택하지 않았다. 자인 알 라피아는 시리아 난민 출신 소년으로 시장에서 배달 일을 하다 캐스팅됐다. 아기 엄마 라힐을 연기한 배우는 불법체류자다. 요나스 역할의 갓난아기 역시 부모가 불법체류자이며, 자인의 여동생 사하르를 연기한 소녀 또
나딘 라바키 감독의 진솔하고 담담한 연출은 애써 외면해온 진실을 응시하게 만든다. 비록 고통스러운 과정을 수반할지라도 말이다. 김노을 기자 sunset@mkcul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