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면 속에는 많은 것이 담겨있습니다. 주인공, 그를 받쳐주는 다른 인물, 의미를 담고 있는 물건, 분위기를 설명해주는 빛과 그림자까지 있죠. ‘안윤지의 PICK터뷰’에서 한 씬(scene)을 가장 빛나게 만든 주인공의 모든 걸 들려 드릴게요. <편집자주>
*영화 속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MBN스타 안윤지 기자] 지난 11월 개봉했던 영화 ‘국가부도의 날’(감독 최국희)이 모두의 우려와 다르게 손익분기점을 넘으며 장기 흥행에 돌입했다. 이에 배우 김혜수와 유아인이 그동안 ‘국가부도의 날’에서 애정하는 장면과 영화에 대한 생각을 꺼내봤다.
↑ 김혜수 유아인 ‘국가부도의 날’ 사진=CJ엔터테인먼트 |
◇ 김혜수·유아인의 ‘국가부도의 날’
김혜수와 유아인은 극명한 대척점에 서 있다. 김혜수가 국가의 중심에서 부도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적극적으로 잘못된 길을 막아내려는 사람이라면, 유아인은 국가의 위기를 자신의 기회로 만들어 활용하는 사람이었다. 때문에 두 사람은 캐릭터를 대하는 태도 또한 달랐다.
먼저 김혜수의 경우, 그간 많이 알려지다시피 가장 신경 써야 할 부분은 경제 용어와 영어였다. 영어 대사와 익숙하지 않은 경제 용어들을 일상화시키기 위해 무수히 반복해 대사를 입으로 뱉어야 했으며 관객들에게 쉽게 전달되기 위하여 단어 교체 작업을 반복적으로 행했다. 그 결과 모두에게 칭찬받은 한시현이 탄생한 것이다.
그렇다면 유아인이 분한 윤정학은 어떻게 준비가 되었던 걸까. 극중 한시현은 다소 경직된 부분이 있다면 윤정학은 그보다 좀 더 자유분방한 사람이었다. 욕망, 기회주의자라는 말을 캐릭터의 주제를 잡아 욕망을 대변하지만 그것이 영악하게 느껴지지 않으면서도 마냥 절대적이지 않은 인물로 그렸다. 또한 그는 스타일링에도 참여해 시각적으로 세상을 내다보는 과감한 금융맨을 그려냈다.
◇ PICK-SCENE ‘국가부도의 날’
김혜수가 극중 감정이 폭발하는 장면은 다름 아닌 허준호와 대면 직후였다. 한시현은 자신의 오빠인 허준호가 IMF로 고통받는 사실을 알게 되자 결국 감정을 참을 수 없었고, 차 안으로 돌아와 눈물을 터트린다.
그는 해당 장면에 대해 “그때 한시현의 오빠(허준호 분)는 ‘내 몸 하나 어떻게 되도 상관없다. 제발..’이라고 말은 하지만 심정만큼은 무릎을 꿇어서라도 돈을 받아내고 싶었을 것이다. 한시현은 자신이 막지 못했기 때문에 자괴감, 무력감, 자멸감에 가까운 슬픔을 털어놓는다. 아마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크고 복잡한 감정이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IMF를 직접적으로 겪지 않은 세대인 유아인은 영화 속에서 “돈 벌었다고 좋아하지마”란 대사에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그의 느낌에 따르자면 평범하지만 복합적인 감정을 일으키는 독특한 대사였다고. 이어 조우진이 극 중 IMF를 통해 사회를 바꿔보려고 한다는 대사를 통해서는 지독스러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조우진 선배의 대사는 참 심기를 거스르고 분노를 치밀어오게 하면서도 할 말이 없게 만들었다. 전혀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않나. 자신의 세상을 재편하고 결국 빈부격차를 더욱 심하게 만들어 놓는다.”
유아인은 영화를 통해 힘과 돈의 논리 더불어 이를 따라갈 수밖에 없는 무력함을 동시에 느꼈다고 말했다. IMF를 겪지는 않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걸 깨달은 것처럼 보였다.
“영화는 정답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어떤 걸 추구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이전 세대와 젊은 세대는 달라졌다. 과거엔 뭐든지 돈으로 해결하려는 느낌이 있었다. 이게 아마도 지금의 세대에 실망감을 주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지금은 자신의 가치를 추구하려고 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사탕을 준다고 해서 함부로 따라가지 않는다는 소리다. 그렇기 때문에 희망을 봤다.”
↑ 김혜수 유아인 사진=CJ엔터테인먼트 |
◇ 한시현X윤정학, 그들의 미래
한시현은 ‘국가부도의 날’에서 결국 자신이 있던 한국은행에서 나와 자신의 팀과 함께 밖을 지킨다. 특별출연했던 한지민이 극 중 한시현과 비슷한 역할로 등장해 그에게 도움을 청한다. 한시현은 “난 팀으로 움직여요”란 말 한 마디를 던지고, 한지민과 함께 길을 나아간다.
“그녀는 변방에 있지만, 끊임없이 자신의 본분을 다해 일한다. 한지민에게 ‘나는 팀으로 움직여요’라고 말하지 않나. 우리 팀은 언제나 정보 공유하며 각자의 몫을 해내고 있었다는 걸 의미한다. 한시현이란 인물이 주는 메시지에 대한 공감이 있다. 또 그가 옳고 그름을 떠나 어떤 지점에 있는 어른인가를 생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윤정학은 영화에서도 볼 수 있듯이, IMF를 기회로 만들어 대기업의 사장이 된다. 자신을 브랜드로 만들어 강의를 진행하기도 한다. ‘국가부도의 날’에서 가장 성공한 캐릭터인 것처럼 보이지만, 유아인은 이에 의문을 품는다.
“과연 윤정학처럼 사는 게 행복할까. 물론 그는 어마어마하게 이뤘지만 관객들에게 주는 느낌이 행복일지, 불행일지 궁금하다. 윤종학처럼 사는 사람이 정말 많다. 내 주변 사람들도 그렇다. 내가 있을 공간은 한 곳인데 집을 그렇게 사고 왜 돈을 더 못 벌어 안달인지 모르겠다.”
유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