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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간 군림해온 지상파 방송 3사의 권력 구도가 깨졌다. 케이블이 메이저로 진입하고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이 본격 등장하면서 지상파 독점 구조는 예상보다 빨리 무너졌다. 케이블과 종편은 약진을 넘어 이제 시장에서 대세로 자리잡고 있다. 스타 캐스팅, 시나리오 확보, 역량있는 PD 영입도 지상파에 밀리지 않지만, 오히려 실험적인 도전과 틀을 깬 편성으로 더 큰 경쟁력을 갖고 있다.
여기에 2018년 연예 콘텐츠 유통 및 소비에는 보다 큰 변화가 있었다. 세계적 동영상 스트리밍 사이트 유튜브와 인터넷 엔터테인먼트 기업 넷플릭스가 한국의 1020 세대를 깊숙이 파고들었다. 누구나 쓰고 즐기기 쉬운 플랫폼의 유튜브, 미국드라마 등 풍성한 콘텐츠에 대대적 투자까지 꺼내든 넷플릭스가 자리잡으면서 향후 한국 연예 콘텐츠 시장은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전운이 감돌고 있다.
◆ ‘갓튜브’(GodTube), 1020부터 노년층까지 흡수…유료 콘텐츠 공짜로 푼다
유튜브와 넷플릭스는 콘텐츠 제작 문법까지 바꿔놓고 있다. 이들은 가장 영향력 있는 온라인 플랫폼으로 거대 자본을 앞세워 잠식 중이다.
실제로 유튜버는 TV로 오고, 스타들은 유튜브로 몰려가는 시대가 됐다. 1인 크리에이터들이 주목받으면서 TV와 1인 미디어 간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유튜브는 더 이상 대안 미디어가 아닌 대세 미디어로 각광받고 있다. 드라마부터 예능, 영화, 웹콘텐츠까지 영역을 가리지 않고 빨아들이는 거대한 ‘블랙홀’ 같다.
유튜브는 스마트폰 시장과 함께 무섭게 성장했다. 1020은 물론 6070 노년층들 사이에도 유튜브는 파고들고 있다. 유튜브는 동영상 플랫폼을 넘어 ‘검색 포털’로 진화 중이다.
TV도 이를 적극 활용 중이다. JTBC ‘랜선라이프’를 비롯해 SBS ‘가로채널’, JTBC ‘요즘 애들’과 ‘날 보러와요’, MBN ‘어느 별에서 왔니?’ 등은 전문 인터넷 크리에이터의 TV 진출 무대가 됐다. 유명 연예인의 인터넷 방송 제작 도전기 역시 앞다퉈 예능 프로그램의 소재로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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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탄소년단의 성장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방탄소년단: 번 더 스테이지’(BTS: BURN THE STAGE)의 한 장면 |
유튜브 사용자는 월 20억 명이 넘는다. Z세대(1995년 이후 출생)의 95%가 가장 선호하는 플랫폼이다. 유튜브는 최근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적극 뛰어들고 있는 분위기다.
지난해 미국 외 국가에서 최초로 한국이 오리지널 콘텐츠 ‘달려라, 빅뱅단!’을 선보였고, 올해 드라마 ‘탑매니지먼트’ 등을 제작해 방송하고 있다. 올 상반기에는 방탄소년단의 성장을 담은 다큐멘터리 ‘방탄소년단: 번 더 스테이지’(BTS: BURN THE STAGE)를 공개, 1회 조회수 1300만회 이상을 기록했다.
유튜브는 자체 제작한 영화 등 오리지널 콘텐츠를 내년부터 무료 공개한다. 이는 넷플릭스, 아마존 등에도 큰 위협이 될 전망이다.
◆ 베일 벗은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2019년 韓 라인업 발표
2009년 탄생한 ‘넷플릭스’는 영화·드라마 같은 고도화된 플랫폼으로 세계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넷플릭스 글로벌 가입자는 1억 3700만명(유료 가입자 1억 2000만명) 이상이다. 이 중 57.4%가 글로벌 가입자다. 중국, 북한, 시리아 IS 지역만 제외한 190여개 나라에 진출해 있다. 넷플릭스가 지난해 자체 작품 제작에 쏟아부은 금액은 약 80억달러(약 8조 9320억원)에 이른다.
넷플릭스의 아시아 투자는 과감하다. 그 중 한국시장은 매력적인 승부처다. 한류 콘텐츠가 아시아 전역에서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이다.
2017년 봉준호 감독 영화 '옥자' 제작비 전액 5000만달러(약 579억원)를 부담한 것을 시작으로 김은숙 작가의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판권을 300억원에 구입해 지난 9월까지 국내외에서 동시 방영했다. 유재석의 ‘범인은 바로 너’, 유병재의 블랙코미디 ‘YG전자’ 같은 예능 프로그램 제작에도 손을 댔다. 예능 첫 투자였던 ‘범인은 바로 너’는 기대 이하의 성적과 반응이었으나 넷플릭스는 시즌2 제작을 확정하는 대범함을 보였다. 유재석 역시 시즌2에 합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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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빈 박신혜 주연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시청자들을 만나고 있다. |
넷플릭스는 이렇듯 한국 콘텐츠에 대한 워밍엄을 거쳐 내년부터 더욱 적극적인 투자에 나설 계획이다. 넷플릭스는 지난 달 8일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샌즈에 한국 기자들을 초청해 아시아 최초 넷플릭스(NETFLIX) 멀티 타이틀 라인업 이벤트 ‘See What's Next Asia’ 행사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시그널’ 김은희 작가의 신작 ‘킹덤’부터 추리 예능 ‘범인은 바로 너! 시즌2’, ‘첫사랑은 처음이라서’, ‘좋아하면 울리는’ 등 신작 라인업을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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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는 내년 1월 25일 한국 첫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6부작)을 서비스한다. |
김은희 작가는 “‘킹덤’은 한국에서 TV 드라마로 만들어질 수 없는 작품이었지만 넷플릭스 덕분에 만들어질 수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 넷플릭스의 공습…위기일까 기회일까
넷플릭스 최고 콘텐츠 책임자(CCO) 테드 사란도스는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는 방식”이라면서 “넷플릭스가 있기 이전에는 책으로만 할 수 있었다. 밤새도록 책을 읽을 순 있었지만, TV로는 할 수 없었다. 넷플릭스가 그걸 가능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넷플릭스는 전 세계를 아우르는 글로벌 방송국”이라며 “전 세계 다양한 곳에서 제작한 콘텐츠를 공유하고 있다. 내년에 공개될, 한국에서 만들어진 ‘킹덤’은 세계적인 인기를 모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작품은 콘텐츠의 글로벌 셰어링을 통해서 글로벌 공유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넷플릭스의 공습은 ‘양날의 검’과 같다. 한류 콘텐츠를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통로가 될 수도 있지만, 많은 방송사와 국내 제작사들이 결국엔 그들의 하청업체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상파와 비지상파 등 방송 관계자들 사이에선 “1억 5천만명이라는 유료가입자를 보유한 넷플릭스를 활용하면 우리 콘텐츠를 더 확산할 기회”라는 긍정적인 기대와 함께 “넷플릭스가 시장을 장악하면 콘텐츠 제공자임에도 끌려가는 상황이 되고 국내 콘텐츠 산업 발전도 저해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내놓는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넷플릭스는 고객의 취향을 2000여개로 세분해 빅데이터 분석에 나선다. 시장성 있는 콘셉트면 어떤 국가에선 외면 받거나 특정 취향이었다 해도 다른 시장(190개국)을 겨냥해 투자를 결정한다. 그것이 넷플릭스가 가진 무서운 힘”이라고 평했다
또한 “한국 방송사와 드라마 제작사들은 한국 시장에서 슈퍼 ‘갑’이 될 넷플릭스의 눈치를 보고 있다. 넷플릭스의 순기능은 활용하되 대응책도 요청된다”며 “SK ‘옥수수’가 넷플릭스 등에 대응해 100억원을 투자한다지만 넷플릭스 9조원과 경쟁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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