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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이거JK. 사진|유용석 기자 |
살아있는 힙합의 전설, 드렁큰타이거가 20년 여정의 대미를 장식하는 정규 10집으로 돌아왔다.
힙합 불모지였던 대한민국에 씨앗을 뿌리고, 지금의 힙합 전성기가 도래하기까지 끝없는 열정으로 한국 힙합신을 이끌어 온 드렁큰타이거. 시대를 앞서갔고, 풍미했던 드렁큰타이거의 음악은 이번 앨범을 끝으로 역사의 한 페이지에 남게 됐다.
14일 오후 서울 광장동 예스24 라이브홀에서 드렁큰타이거 정규 10집 'X : Rebirth of Tiger JK' 발매 기념 음감회가 진행됐다.
'난 널 원해' 라이브 무대로 음감회 포문을 연 타이거JK는 "데뷔할 때 처음엔 거리에서 '난 널 원해'를 불렀었는데 이렇게 드렁큰타이거 마지막 앨범으로 무대에 서니 감회가 새롭고 떨린다"고 첫 인사를 건넸다.
이번 앨범은 데뷔 20주년을 맞은 드렁큰타이거의 마지막 앨범이다. 타이거JK는 "드렁큰타이거는 뭔가 도전하고, 부시는 그룹인데, 그 때 표현했던 가사나 음악색깔은 이제 문을 닫아야 하는, 타입캡슐에 넣어놔야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타이거JK는 여전히 진화하고 여러 음악색에 빠져 있는데 드렁큰타이거 이름을 달고 내가 변하는 걸 보여드리니까 팬들이 이해를 못 하시더라. 드렁큰타이거는 드렁큰타이거대로 남겨둬야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타이거JK가 변화하게 된 지점은 '아빠'가 된 현실이 크다. 그는 "개인적으로 소심한 편인데 아빠가 되고 남편이 되고 하면서 더 많이 보고 더 많은 세상을 살다 보니 내가 할 수 없는 표현들이 많이 늘어났다. 요점에 가지 못하고 빙빙 돌려 말하곤 했는데, 개인적으로 더 이상 드렁큰타이거로 살 수 없었다. 마지막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드렁큰타이거의 대미를 장식하는 만큼 작업 과정에선 과거 드렁큰타이거로 함께 활동했던 DJ샤인까지 만났지만 그의 참여는 불발됐다. "음악 세계를 떠난 지 오래 되어 (참여에) 부담스러워하더라"는 게 타이거JK의 설명. 그는 "그 친구들이 참여하면 앨범에 의미가 더해지겠지만 큰 부담을 주는 것 같아 응원만 받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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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렁큰타이거. 사진|유용석 기자 |
CD1은 붐뱁 힙합 트랙 위주로, CD2는 재즈, 펑크, 디스코, 하우스, 레게 등 현재 타이거JK가 빠져 있고 추후 보여줄 음악세계를 짐작하게 할 만한 실험적인 트랙들로 채워졌다. 그는 "CD1이 무대 위 타이거JK와 가깝다면 CD2는 집에 있는, 일상적이고 짓궂고 때론 찌질할 때도 있는 타이거JK와 가깝다"고 설명했다.
그는 "1년 반 동안 60곡을 만들어 추려냈다. 정말 열심히 만들었다. 해냈다는 기분도 있지만 섭섭함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추후 다시 드렁큰타이거 앨범이 나올 가능성은 없다고. 그는 "드렁큰타이거 이름으로는 마지막이 맞다. 요즘은 트렌드도 그렇고 환경도 너무 많은 게 바뀌었다. 그리고 나 자체가 할 수 있고 할 것이지만, 너무 오래 걸린다. 이번이 마지막 앨범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작업 과정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함께 작업한 작곡가 겸 프로듀서 랍티미스트는 결혼도 미루고 쓸개 수술까지 했다고. 타이거JK는 "약간은, 광기 없이는 살아가기 힘든 시장이 돼버리지 않았나. 힘들어도 우리가 너무 좋고, 사랑해서 음악씬에 뛰어든 것이기 때문에, 우리도 모르게 그 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고 작업 과정을 떠올렸다.
앨범 타이틀 'X'는 10번째란 의미이자 미스테리, 무한대, 곱하기, 후속편 등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중의적 표현이기도 하다. 방탄소년단 RM, 세븐틴 버논 등 실력파 K팝 아이돌은 물론 도끼, 가리온 메타, 슈퍼비, 면도, QM, 테이크원, 김종국, 은지원, 데프콘, 하하 등 각 장르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선후배 동료 뮤지션들이 대거 참여했다.
이 중 수록곡 '떡 라이프'에는 동양적 정서가 담겨 있어 눈길을 끈다. 이는 타이거JK가 드렁큰타이거로서 보여주는 한국 힙합 대부의 자존심이자, 한국 힙합이 추구해야 할 방향성을 건 실험이기도 하다. 그는 "많은 K팝 아티스트들이 해주는 것처럼 언젠가 한국 힙합도 세계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할 때, 무조건 '아리랑'을 한국식으로 재편곡하는 게 아니라 한국의 여러 소리로 이질감 없이 멋지게 만들면 그게 박수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늘 해왔다"면서 "구수한 한국적 냄새가 나는 힙합을 만들고 싶었다"고 소개했다.
방탄소년단 RM의 참여로 화제가 된 수록곡 '타임리스(Timeless)'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가장 독특하고 오리지널리티가 있고 정통인 힙합 사운드"라며 "말랑말랑한 곡을 선택하지 않고 우리가 진짜 하고 싶은 걸 택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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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이거JK. 사진|유용석 기자 |
타이거JK는 "RM은 곡에 대한 이해라던지 가사 쓰는 방법이 예전 언더 시절에 했던 것과 비슷하다. 진심과 열정도 느껴지지만 실제로 잘 한다"며 "RM을 통해 아이돌 래퍼에 대한 선입견도 많이 파괴됐다"고 덧붙였다.
1999년 데뷔 이래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 '난 널 원해', '위대한 탄생', '굿라이프', '소외된 모두, 왼발을 한 보 앞으로!', '심의에 안 걸리는 사랑노래', '몬스터' 등 다수의 히트곡을 남긴 드렁큰타이거. 그리고 DJ샤인 탈퇴 후에도 우직하게 드렁큰타이거의 이름을 지켜온 타이거JK.
드렁큰타이거는 타이거JK고, 타이거JK가 드렁큰타이거지만 자아는 끊임없이 분열하고, 성장하고, 과거에는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타이거JK가 드렁큰타이거 음악을 타임캡슐에 담아두겠다는 마음을 먹은 것이 이 때문.
하지만 드렁큰타이거이자 타이거JK가 생각하는 힙합에 대한 생각만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힙합은 무에서 유를 창출하는, 문화예요. 랩과는 전혀 다른 것이죠. 소외된 이들이 빈민가에서, 음악도 없이 헐벗고 살던 사람들이 그렇게 만들어낸 게 힙합, 문화죠."
타이틀곡 '끄덕이는 노래'는 타이거JK와 오랜 기간 호흡해온 힙합씬 실력파 프로듀서 랍티미스트의 곡으로 붐뱁 사운드에 드렁큰타이거 고유의 음악색이 담긴 트랙이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결국 듣고 느끼고 수긍하고 그저 끄덕이면 된다'는 힙합 고유의 흥과 메시지를 담았다. 타이거JK의 진화하는 음악 스펙트럼 안에서도 드렁큰타이거 특유의 감성이 단연 돋보이는 트랙으로, 드렁큰
드렁큰타이거는 이날 오후 6시 온, 오프라인을 통해 정규 10집 앨범을 발매한다. 이후 내년까지 장기 프로모션에 돌입한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그리고 끝은, 또 다른 시작이다.
psyon@mk.co.kr[ⓒ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