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양소영 기자]
‘대화의 희열’ 인요한 교수가 한국형 앰뷸런스를 최초로 제작한 이유부터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들려줬다.
29일 방송된 KBS2 ‘대화의 희열’에는 한국형 앰뷸런스를 최초로 제작한 인요한 교수가 네 번째 게스트로 출연했다.
인요한 교수는 대한민국 최초의 특별귀화자이자, 의사 국가고시에 최초로 합격한 외국인이다. 4代에 걸쳐 교육, 복지, 의료 분야 발전에 공헌해 한국 국적을 취득한 인물이며, 지금의 앰뷸런스를 있게 한 주인공이다.
인요한 교수는 구급차가 없어 숨을 거둔 아버지의 사연을 언급했다. 교통사고를 당한 인요한 교수의 아버지는 병원으로 이송 중 세상을 떠났다. 인요한 교수는 장례식장에서 아버지의 지인에게 “한국인처럼 살았고, 한국인처럼 죽었네”라는 말을 들었다.
그는 아버지와 같은 죽음이 없길 바랐다. 당시 한국에는 앰뷸런스가 없었다. 그는 아버지의 미국 지인들에게 받은 돈을 받아 앰뷸런스를 구입하고자 했다. 하지만 값비싼 앰뷸런스를 구입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인요한 교수는 목수 철공업자를 불러서 15인승 승합차를 개조해서, 한국형 앰뷸런스를 최초로 제작하게 됐다. 인요한 교수는 아버지의 사건 후 한국을 떠나고 싶지 않았냐는 질문에 “형제 중에 몇 명은 떠나고 싶어했다”고 고백하기도. 하지만 그는 “신성한 보복이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한국에서 허망한 죽음이 줄어든 것에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이를 듣고 있던 강원국은 “우리나라 기본 정서가 그렇다고 하더라. 고 김대중 전 대통령님이 말씀하시길 우리는 한을 한으로 풀지 않는다고 하더라. 보복하고 이런 걸로 한을 푸는 게 아니라 복수보다 차원이 높은 걸로 한다”고 말했다.
또한 인요한 교수는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시민군과 외신기자들 사이에서 통역을 했던 일화도 공개했다. 그는 아버지의 조언에 따라 미국 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실패했다. 정부가 광주 시민군을 제압한 사실을 알고 “마음이 복잡했다”고 고백하기도.
김대중 대통령과 독대한 사실도 밝혔다. 그는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기 전 만났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에 대해 질문했고, 김대중 대통령은 “보복이 도움이 되냐. 뭐 얻는거 있냐. 보복하면 안 된다”고 했다며, 만델라의 인권에 대한 강의를 해줬다고. 이후 김대중 대통령을 치료해준 인연으로 대통령 당선 후 취임식에 초대받기도 했다.
인요한 교수는 “취임식에 전두환 대통령이 있더라. 그 모습을 보면서 (김대중 대통령이) 말만 만델라가 아니라 노벨상 감이라고 생각했다. 이 민족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다. 용서와 화해를 느꼈다”고 밝혔다.
박근혜 전 대통령 인수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은 것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당시 새누리당에서 찾아왔다. 난 당에는 가입 안 한다고 했다. 당시 그쪽에서 동서화합, 다문화 가정, 남북 관계를 도와달라고 하더라. 보수야말로 북한에 대해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결핵 때문에 29번 북한을 왔다 갔다 경험이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도움이 되고자 했다. 인요한 교수는 “오해를 많이 받았다. 북한에서는 CIA로, 광주 항쟁 이후는 빨갱이로 오해 받았다. 내 일생은 오해 덩어리”라고 말했다.
계속해서 “지금도 박 전 대통령을 지지했다고 욕하는 사람도 있다”며 “보건에는 좌도 우도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인요한 교수는
은퇴 후 순천에서 살고 싶다고 밝힌 그는 마지막까지 한국 사랑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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