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리뷰는 스포일러가 포함돼있습니다*
처음 가보는 길이라 설렜지만, 도착지에 가까워질수록 김이 샌다. 국내 최초로 ‘협상’이라는 신선한 소재를 다뤘지만 결국엔 또 권력층에 대한 고발로 귀결된다. 손예진‧현빈의 빈틈없는 ‘협상’이 끌고 가는 초반부는 새롭고도 흥미롭지만 국정원의 개입과 함께 서서히 벗겨지는 진실, 그리고 결말은 그야말로 ‘진부함의 끝’이다.
큰 기대는 역시나 독이 됐다. 이번에도 현빈과 손예진은 새로운 변신, 그리고 한껏 물오른 연기력으로 영화의 아쉬운 지점들을 상당 부분 커버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결국 한계에 다다른다. 특별한 두 배우의 그저 평범한, 킬링 타임용 범죄 오락물이다.
제한된 공간, 시간 속에서 오직 모니터만 사이에 둔 채 팽팽하게 맞서는 협상가와 인질범. 넘치는 카리스마와 따뜻한 인간미를 동시에 지닌 채윤과 섬뜩한 살기, 하지만 왠지 모를 연민을 자아내는 민태구의 첫 대면은 비주얼 적으로도, 이야기 전개 면에서도 강렬하다. 이들의 한 치의 물러섬이 없는 치열한 신경전, 이색적이면서도 오묘한 호흡이 주가 되는 초반부는 진정 쉴 틈 없이 빨려 들어간다.
‘협상’이라는 낯선 소재에 오롯이 충실한, 두 사람의 1:1 대결 구도는 두 배우의 시너지 덕붙에 극강의 몰입도를 자랑한다. 첫 악역에 도전하는 현빈, 협상가로 분한 손예진도 저마다의 색깔로 우열을 가리기 힘든 연기 대결을 펼친다. 이 과정에서 같이, 때론 따로 수없이 터지는 스파크는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자 차별화된 킬링 포인트다.
이유도 목적도 조건도 내걸지 않은 채 최악의 인질극을 벌이던 민태구가 속내를 드러내자, 정치 경제 공권력 등의 검은 커넥션도 서서히 베일을 벗는다. 민태구와 관련된 정보를 수집하던 그의 아픈 사연까지 알게 되는 채윤은 이 인질극의 목적을 알게 되고, ‘협상가’로서의 정체성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아쉽게도 인질을 구하는 것도, 진실을 밝히고 증명하는 것도 사실상 그녀가 스스로 해낸 건 없다.
이에 따라 이야기의 리얼리티는 급격하게 떨어지고, 절정에 달았을 땐 통쾌함이 아닌 웃픈 실소가 터져 나온다. 무엇보다 엔딩으로 갈수록 숨 막히던 긴장감은 이내 오글거리는 민망함으로 변질되고야 만다.
새로운 소재, 새로운 장르, 완벽한 두 배우의 첫 만남으로 큰 기대를 모았지만 진부한 타깃과 반전을 위한 반전, 그리고 신파. 여기에 인질범 캐릭터에 과도하게 멋부림을 입히면서 캐릭터에 대한 공감과 리얼리티, 특별한 소재마저 힘을 잃고 말았다. 예측 불가한 날 것의 시작은 좋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배우의 시너지만으로도 114분은 꽤 즐길 만하다. 그것만으로도 흥행은 어느 정도 기대해볼 만하다. 그래서 아쉬움은 더 짙게 남는다. 이렇게 매력적이고도 강력한 무기를 사용하다 만 것이. 영화는 오는 19일 개봉한다.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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