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네가) 죄책감을 느껴야 한다’고 말 하지도 않았는데 본능적으로 떠안고야 만다. 그런데 그걸 또 견디질 못해 다른 누군가에게 떠넘긴다. 치졸하고도 비열하게. 그렇게 또 다른 비극이, 아픔이, 고통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결국 인정하고 싶지 않은 가냘픈 (인간의) 본성과 마주하고야 만다.
한 소녀가 사라지자, 그 주변은 충격에 빠진다. 그리곤 그 소녀와 마지막까지 함께 있었던 또 다른 소녀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저 마다 살아남기 위해 기꺼이 눈을 가리고 귀를 막는다. 그 사이 소녀의 죄는 더 확실해 지고 보다 커져 있다. 모두가 가해자로 지목하는 ‘죄 많은 소녀’는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반격에 나선다.
‘경민’의 실종 전날, 영희는 같은 반 단짝인 한솔과 함께 놀던 중 우연히 경민과 마주치고 세 사람은 함께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다음 날, 경민이 사라졌다는 소식과 함께 형사들이 찾아오고, 뜻밖에도 한솔이 의미심장한 증언을 내놓으면서 모든 의심의 화살은 영희에게 쏠린다. 그 순간부터 영희는 친구들의 비난은 물론 선생님과 형사의 무관심, 그리고 ‘경민’ 엄마의 압박 속에서 죄를 강요당하게 된다.
감독은 절망과 자살 충동에 사로잡힌 10대를 통해 현대 사회의 한 단면을 날카롭게 포착한 동시에 풀 수 없는 문제에 매달리는 군상, 어떻게든 자기와 가장 먼 답을 도출하고자 스스로를 속이고, 어쩌면 알면서도 숨기고 싶은 우리의 검은 속성을 집요하게 끄집어낸다.
“엄마라는 사람이,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않고 뭐 했어?”, “네 한 마디가 그 아이를 죽게 했어!”, “그러고도 친구니?”, “네가 평소에도 그 아일 미워했잖아”, “학교의 시스템이 문제인거죠. 제대로 보호도 못하고.”, “담임선생님이 자기 학생에 대해 아는 게 없어요?” 등등. 저마다 절대로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어떻게든 피하기 위해 누구에게든 책임을 전가하려 한다. 그래서 스스로는 ‘아무런 죄가 없다’고 증명하기 위해 고군분투 한다. 그럼에도 조금이라도 자유로워지거나, 아픈 기억을 지운 채 행복을 되찾는 이는 아무도 없다.
쉽게 비난하거나 간단히 정의 내릴 수 없는, 내밀한 인간의 본능과 본성에 대해 끈임 없이 질문을 던진다. 전혀 예상치 못한 ‘충격적인 엔딩’은 또 어떻고.
갑작스러운 딸의 실종에 ‘영희’를 의심하면서도 끈임 없는 내적 갈등과 고통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경민의 엄마’, 서영화 또한 압도적인 내공을 보여준다. 폭발하는 감정신이 최소화 된 상황에서도 농축된 감정 연기로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예측 불가 행동의 연속으로 강렬한 긴장감까지 선사한다.
집요하고도 날카로운 시선이 담긴 탄탄한 각본, 배우들의 놀라운 협연과 강렬한 드라마, 씁쓸하고도 아픈 잔상이 오래도록 남는 영화다. 무엇보다 선과 악의 경계가 무너진 채, 상실을 겪은 인간들이 각자 고뇌하다 선의 영역에서
9월 13일 개봉. 15세 이상관람가. 러닝타임 1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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