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배우 김희애가 최근 MBN스타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YG엔터테인먼트 |
‘허스토리’는 1992년~1998년 일본을 발칵 뒤집은 관부 재판 실화를 그렸다. 관부 재판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관련 재판 사상 처음으로 보상 판결을 받아냈다는 점에서 당시 일본을 발칵 뒤집을 만큼 유의미한 결과를 이룬 재판이다. 그러나 지금껏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채 역사 속에서 잊혀져 왔다.
“관부재판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혹시 나만 몰랐나 싶어 부끄러운 마음에 찾아봤는데도 모르겠더라. 감독님한테 재차 정확한 설명을 해달라고 부탁드렸었다. 그렇게 오래된 역사도 아닌데 영화에 출연하면서 알게 돼 놀라웠다.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범죄를 당한 게 너무 안타까웠다.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고민했고, 힘들지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임무라 생각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저를 다그치고 열심히 연기하려 했다.”
김희애는 극중 관부재판을 이끄는 원고단의 단장 문정숙 역을 맡았다. 문정숙은 개인의 삶은 뒤로한 채 오직 재판을 위해 6년 동안 고군분투하는 인물이다. 김희애는 이번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 부산 사투리와 일본어까지 완벽하게 소화해야 했다. 쉽지 않은 새로운 도전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제 연기를 이만큼 걱정 해본 적은 처음이다. 1부터 10까지 다 사투리인데 그게 안 되면 ‘나이 먹고 뭐하냐’고 욕먹을 것 같아 걱정됐다. 오죽하면 실제로 가위도 눌렸다. 사투리의 억양이 매번 달라져 대본도 여러 번 수정됐다. 당당한 여성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녹음해서 들어보니 목소리 힘이 약하더라. 사투리 선생님과 그분의 지인들과 계속 통화하며 연습했다.”
![]() |
↑ 배우 김희애가 최근 MBN스타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YG엔터테인먼트 |
1990년대 당찬 여사장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던 김희애는 수많은 연습 과정을 거쳐 부산 사투리와 일본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해냈다. 실제로 꿈에서도 대사를 읊었을 뿐 아니라 영화가 개봉된 지금까지도 머릿속에 남아있는 정도로, 어마어마한 연습량을 소화했다.
“일본어도 고생했다. 촬영 3개월 전부터 했다. 너무 분량이 많아서 날짜별로 나눠서 외웠다. 매일매일 반복했다. 그런데 돌아서면 생각이 안 나더라. 계속 연습할 수밖에 없었다. 가끔 우리 애 이름도 헷갈릴 정도로 기억력이 안 좋은데, 일본어는 지금까지 안 잊어버렸다. 앞으로 계속 배워야겠다고 느꼈다.”
‘허스토리’가 귀중한 실화를 소재로 한 작품인 만큼, 연기에 임하는 배우들의 자세 또한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김희애는 촬영기간 내내 긴장의 연속이라 마음 편히 잠에 든 적이 없다고 털어놨다. 그만큼 캐릭터에 깊게 몰입했던 그는 촬영이 끝남과 동시에 여러 복잡한 감정에 잠겨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고 말했다.
“촬영하면서 두발 뻗고 자본 적 없다. 잘 때도 부산 사투리와 일본어를 들었다. 가뜩이나 숙면을 못하는데 긴장 되니까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꿈속에서도 일본어나 사투리 하는 꿈을 꿨다. 드라마를 오래했는데 촬영 끝나는 날 울어보긴 처음이었다. ‘다 끝났다’하고 신나게 집으로 돌아왔는데 ‘해냈다’는 안도감과 그동안 쌓여왔던 모든 울분과 허탈함, 뭔지 모를 감정이 섞여서 엉엉 울었다. 나쁜 게 아니고 카타르시스였던 것 같다. 도저히 끝날 것 같지 않았는데, 끝난 것에 대한 시원함이 있었다.”
김희애는 극중 위안부 피해자를 연기한 배우 김해숙, 예수정, 문숙, 이용녀 등에게 존경을 표했다. 영화 속에서 관부재판을 이끌며 할머니들을 지켜보는 입장이 됐던 김희애는 선배들의 연기가 좋은 귀감이 되었다고 말했다.
“선배님들은 정말 헌신하셨다. 각자 부담스러우셨을 것 같다
(인터뷰②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