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킬링 타임용 액션일 줄만 알았다. 명백한, 그러나 반가운 오판이었다. “인간의 본성을 건드리고 싶었다”는 감독의 말처럼 ‘마녀’는 악으로 키워 졌지만, 진정한 사랑 속에서 예상치 못한 변화를 보여주는 초월적 존재로 그려진다. 외피는 흔한 여성 액션물이지만 내피는 전혀 다르다. 감독은 그녀를 통해, 그리고 자신 만의 ‘쉼표’를 통해 기존의 것과는 분명 다른 것의 무언가를 이야기 한다. 작품에 대한 평가와 흥행 여부는 그것이 얼마나 제대로 관객들에게 닿느냐 마느냐에 달렸다.
‘마녀’는 ‘신세계’ ‘대호’ ‘브아이아이피’ 등 극한의 남성적 영화를 만들어 온 박훈정 감독의 신작이자 그의 첫 여성 액션물이다. 애초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겠다는 의지 보다는 만들어진 작품에 여성이 어울린다는 생각에 주인공을 여성으로 설정했단다. 소설 ‘프랑켄슈타인’에서 착안, 인간이 악하게 태어나 선으로 변해가는 지 아니면 선으로 태어나 악하게 변해가는 지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된 이야기다. 주인공이 여성이냐 남성이냐가 사실 그렇게 중요한 지점은 아니라는 의미다.
가난하지만 바르고 따뜻한 부모님의 사랑 속에서 뭐든 잘 하는 모범생으로 자란 자윤(김다미). 사실 그녀에겐 비밀이 있다. 10년 전 의문의 사고가 일어난 시설에서 탈출해 홀로 살아남았고 그 충격으로 과거의 기억을 잃었다. 나이도 이름도 모른 채 그저 자신을 거두고 키워준 한 부부의 딸로 씩씩하고 밝고 건강하게 살고 있을 뿐이다.
그러던 중 (절친한 친구의 권유로) 치매에 걸린 엄마, 다리가 불편한 아버지를 위해 돈이 필요한 자윤은 무려 5억 상금이 걸린 TV오디션에 출전하게 된다. 출중한 가창력으로 단숨에 화제의 인물로 떠오른 뒤 의문의 인물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자윤의 주변을 맴도는 섬뜩한 눈빛의 남자인 귀공자(최우식)을 비롯해, 그녀를 찾는 뇌분야 세계 최고의 권위자인 닥터백(조민수), 그리고 살벌한 인간병기 미스터 최(박희순)까지.
영화는 크게 1,2부로 남긴다. 자윤의 태생이, 그녀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든지 간에 따뜻한 환경 속에서 자신만의 소소한 삶에 만족하며 지내고 있는 자윤의 현재와, 과거로 인해 다시금 끔직한 자신과 마주한 채 자신만의 방식으로 맞서야 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현재, 그리고 이 두 현실을 통합시키는 또 다른 ’마녀’들. 도망친 자윤과 도망치지 못해 그 끔찍한 비밀 속에서 자라난 아이들. 이들이 만나 벌어지는 피의 향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명제에 대한 물음들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그 이음새에는 박훈정 감독 특유의 ‘쉼표’들이 녹아있다. 그저 킬링타임용 액션물이었다면 속도감을 높이기 위해 쳐냈거나 흔한 장면들로 대체됐을 부분들이 그 만의 방식으로 재구성 된다. 긴장감을 조성하는 방식 또한 색다르다. 자윤이 유명해진 뒤 TV에서 작은 초능력을 발휘한 뒤 집으로 걸려온 전화, 그리고 잠깐의 적막이라든지 알 수 없는 두통으로 처절하게 고통을 참아내는 자윤의 모습이 반복적으로 그려진다던지 스치듯 훅훅 가슴을 파고 드는 각 인물들의 함축적인 대사들이라든지.
본래 시리즈물로 기획한 탓에 초반부는 다소 늘어지는 감도 없지 않다. 일련의 상황에 대한 설명 또한 그렇다. 하지만 후반부에 휘몰아치는 스피디하면서도 신선한 액션의 향연과 기존의 여성 캐릭터와는 다른 주체적이고도 입체적인 자윤 캐릭터의 해석이 주는 새로움 덕분에 전혀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다.
게다가 모든 등장 인물들은 단지 자윤을 자극하기 위한, 돋보이기 위한 도구로만 쓰이진 않는다. 따져 보면 각각의 ’그럴 만한’ 사연들이 제대로 녹아있고 인간적이면서도 만화적이고 슬프면서도 파괴적이다. 하나씩 따로 떼 에피소드로 만들어도 충분히 흥미로울 법한 캐릭터들의 향연이랄까.
유난히 시리즈물의 활약이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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