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상욱은 ‘대군’에서 수양대군을 모티브로 한 인물 ‘이강’을 연기했다. 제공|윌 엔터테인먼트 |
재밌는 남자인 건 알았지만, 인터뷰 반 이상을 웃음으로 채운다. 별 것도 아닌 말을, 완급 조절로 빵빵 터지게 한다.
배우 주상욱(40)은 유쾌하고 솔직하다. 최근 종영한 TV조선 사극 ‘대군’ 촬영장에서도 그랬다. 그의 주변엔 늘 사람이 모여들었고, 화통한 선배이자 분위기 메이커였다. 같은 드라마에 출연한 진세연 말로는 “한두 번 실패한 것 외엔 던지는 말마다 배꼽을 잡게” 했단다.
이렇게 개그본능에 가득 찬 남자가 광기어린 왕 역할을 하다니. 그 스스로도 “인생작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만족도 높은 캐릭터였다.
최근 서울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주상욱은 첫 마디부터 “내 얼굴은 이 시대가 원하는 얼굴 아니다. 사극에 맞는 얼굴”이라며 웃음을 줬다.
‘대군’은 그에게 MBC ‘선덕여왕’ 이후 9년 만의 사극이었다. 오래 전부터 사극을 갈망해왔다던 그는 “‘대군’의 시작은 자신감이었다”고 돌아봤다.
“매일 매일 사극 하고 싶다고 얘기했다. 혹시 그런 얘길 들으면 불러주지 않을까 하고. 개인적으로 수염이 많이 안 나고 숱도 별로 없다. 그런데 사극은 수염도 멋지고 의상도 근사하지 않나. 그런 단순한 것에서부터 매력을 느꼈다. 특히 ‘광해’ 이병헌 선배의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대군’은 동생을 죽여서라도 갖고 싶었던 사랑, 한 여자를 둘러싼 두 남자의 욕망과 순정을 담았다. 주상욱은 실존인물 수양대군을 모티브로 한 ‘이강’을 연기했다. ‘이휘’ 역의 윤시윤과 핏빛 형제 간의 대립을 치열하게 그려냈고, 폭주하는 ‘강’의 롤러코스터 같은 감정을 입체적으로 연기해냈다. 그러면서도 유일하게 사랑한 여인 ‘자현’(진세연 분) 앞에선 애잔하면서도 섬세한 감성을 눈빛 하나로 선보이며 매회 명장면을 만들어냈다.
악역임에도 불구, “안아주고픈 악역”이란 반응이 나왔고, 시청자들의 공감과 뜨거운 사랑을 끌어냈다. 그래도, 시청률 5% 돌파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라고 한다.
“드라마 방영 중에 ‘지금 뭐하세요?’란 소리를 들으면 망한 거다. ‘대군’은 식당을 가든 어딜 가든 잘 보고 있단 말을 많이 해주셨다. 마지막 방송이 5% 넘을 지는 진짜 몰랐다. 시작할 때도 그랬지만, 말이 안 되는 수치라 생각했다. 요즘 지상파에서도 이런 시청률이 쉽지 않은데,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진 거다.”
드라마의 성공으로 시청률 공약 행사도 이행했다. 지난 9일 열린 광화문 프리허그엔 일본 팬 4명도 날아왔다. ‘실장님’으로 주목받을 당시 생긴 아줌마 팬들이었다. 주상욱은 “전날 공지했는데도 오신 걸 보고 놀랐다.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비행기를 탄 모양이더라. 어머님들의 적극적인 지지는 늘 힘이 된다”며 웃으며 말했다.
2010년 SBS 드라마 ‘자이언트’ 이후 8년 만에 만난 악역. 아쉬움은 없었을까.
“사람 죽이고 소리 지르는 게 은근히 재밌더라”며 호탕하게 웃던 주상욱은 “이 작품을 한 건 캐릭터 때문이었다. 신선하고 내가 해본 적 없는 캐릭터였다”고 밝혔다.
“소리 지르면 힘들고 어지럽고 체력적으로도 그렇다. 단순한 악역이 아닌 명분 있는 인물을 그리려 공을 들였다. 악역으로 미친 듯이 욕 먹으면 ‘연기 잘해서 욕 먹는다’ 하지만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강은 사람을 죽이고 나쁜 짓을 해도 동정이 간다는 말이 많았다. 공감이 많이 되는 악역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후배 윤시윤, 진세연과의 호흡은 “이 드라마 왜 잘 된 것 같냐고 하면 배우들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는 말로 대신했다.
“모든 배우들, 아니 어린 신인, 선배들까지 한 명 쯤은 대충 할 법도 한데 모두들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하더라. 단역으로 온 분들도 그렇고. 너무너무 고마웠다. 다들 잘하니까 ‘나도 잘해야지’ 서로 그랬을 거다.”
↑ 사극 `대군`에서 “안아주고픈 악역”으로 사랑 받은 주상욱. 제공|윌 엔터테인먼트 |
“한때는 실장님이란 말이 진짜 싫었다. 무슨 연기, 무슨 배역을 맡아도 같아 보인다는 얘기일 수도 있다. 좋은 얘기 아니니까 발버둥을 쳐서라도 탈피하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실장님을 다시 하고 싶다. 뭔가 새로운 실장님을 연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올해 만난 ‘대군’은 그에게 행운 같은 작품이었지만, ‘자이언트’를 자신의 최고작으로 꼽았다. 개인적으로도 이 드라마의 팬이었고, 다시 만나기 어려운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자이언티’ 후 눈빛이 변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나도 궁금해서 보게 되는 드라마였으니까 제일 기억에 남는다. 앞으로 또 그런 작품을 만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주상욱의 예능감은 그를 만나본 사람이면 다 안다. ‘남자의 자격’에 출연한 적이 있지만, 여전히 예능 욕심은 꿈틀거린다.
“스튜디오 예능은 부담스럽고 고정으로 한다면 딱 하나 할 수 있다. 이왕이면 리얼 버라이어티를 하고 싶다. 대본 없는 예능이 참 재미있다. 가족 예능이나 육아 예능은 싫다.(웃음)”
아내 차예련과 동반 출연 제의도 많다. 주상욱은 “그것만은 거절하고 있다”며 “신비주의가 아니라, 사생활을 보여준다는 게 부담된다”고 했다.
차예련은 현재 임신 8개월로 7월 출산을 앞두고 있다. 드라마의 성공으로 첫 포상휴가가 주어졌지만, 포기한 것도 이 때문이다.
“배가 이만한데 여자 마음이 다 이해해도 서운한 마음은 어쩔 수 없을 거다. 임신 2개월부터 8개월까지 촬영하느라 신경 써주지 못했는데 이제는 옆에 있어주고 싶다. 자기 몸도 힘들텐데 한 번도 잔소리를 하거나 힘들다는 내색을 안하더라. 그래서 참 고맙다. 요리도 정말 잘한다. 한식은 주로 집에서 먹는다. 웬만한 한정식 집에서 먹는 거보다 맛있다.”
요즘엔 아빠가 되는 설렘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는 “매일 매일이 떨린다”면서 “오늘도(인터뷰 당일) 5시에 병원에 같이 가기로 했다”며
“뭔가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 같은 기대감이 든다. 아이를 잘 볼 수 있을 것 같다. 주변에선 임신 했을 때가 그래도 편한 줄 알라고 하는데, 까짓것 힘들어봐야 얼마나 힘들겠어? 잘 볼 자신이 있다. 하하.”
역시 호쾌한 아빠가 될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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