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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과 집중의 표본이다. 대중성과 예술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란 거장에게도 역시나 어려운 일. 그래서일까. 이창동 감독은 8년 만에 과감히 영화제를 위한 신작을 내놓았다. 바로 칸의 부름을 받은 ‘버닝’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한국 영화 가운데 유일하게 제71회 칸 국제 영화제의 선택을 받은 ‘버닝’(감독 이창동)이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헛간을 태우다’을 바탕으로 한 작품은 대세 배우 유아인과 스티븐 연, 신예 전종서가 합을 맞추며 화려한 비주얼과 난해하지만 깊이 있는 메시지가 조화를 이룰 것으로 예상됐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수수게끼 투성이의 전형적인 예술영화였다.
유통회사 알바생 종수(유아인)가 어릴 적 동네 친구 해미(전종서)를 만나고, 그녀에게 정체불명의 남자 벤(스티븐 연)을 소개 받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는다. 해미는 아프리카 여행을 간 동안 자신이 키우는 고양이를 돌봐달라고 부탁하고, 여행에서 돌아오며 현지에서 사귄 벤을 소개한다. 그리고 미스터리한 남자 벤은 종수에게 자신의 비밀스러운 취미에 대해 고백하고, 종수는 그 이후로 무서운 예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간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았던 사회의 이면을 섬세하게 보여주는 동시에 영화 속 인물들의 관계를 통해 현재 우리의 문제와 위로를 담아 남다른 작품 세계를 구축해온 이창동 감독. 아쉽게도 이번 작품에서는 이 같은 그만의 따뜻하고도 날카로운 시선과 앞서가는 감각, ‘청춘’에 대한 통찰력을 찾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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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중반부 해미의 실종 이후부터 전개되는 종수의 벤을 향한 의심과 추적, 그리고 벤의 행적들은 끝까지 관객들에게 긴장감을 제공하지만 그 끝에 마주하는 엔딩은 그야말로 긴 러닝타임을 기다려 온 것이 억울할 정도로 허무하다. 작품 내내 머릿속을 어지럽힌 많은 질문들과 호기심들은 이 같은 일차원적인 엔딩 덕분에 불꽃을 잃고 사라져버린다. 여운조차 남기지 않고 다 태워버린 엔딩은 이 영화의 가장 큰 옥에 티.
세 배우의 연기나 순수한 미장센, 감각적인 비주얼은 영화의 큰 장점이지만 이 감독만의 강력한 스토리텔링이 기대만큼 힘을 발휘하지 못한 탓인지 부가적인 요소들이 그리 오래 기억에 남진 않는다.
영화에는 자기 부모 세대보다 더 못살고 힘든 세대, 발전하는 세상 속에서 오히려 무기력함과 분노를 안고 사는 청춘에 대한 감독의 애틋한 시선이 잘 녹아있다. 그러나 그러한 청춘들을 단지 그리는데 그쳤을 뿐, 감독은 이에 대한 자신의 진심을 전하는 대신에 그저 관객들에게 쉴 새 없이 질문을 던진다. 수수께끼 같이 느껴지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청춘들, 감독은 그들을 위해 열정을 태웠다지만 정작 그들에겐 무엇이 남을지 의문이 남을 따름이다.
한편, 이창동 감독은 ‘박하사탕’ ‘초록물고기’ ‘밀양’ ‘시’에 이어 ‘버닝’까지 다섯째로 칸 영화제에 진출했다. 총 6편의 연출작 가운데 5편이 칸영화제에 공식 초청됐으며, 경쟁 부문은 이번이 3번째다.
2007년 ‘밀양’, 2010년 ’시’에 이어 올해는 ‘버닝’이다. 게다가 ‘밀양’으로 전도연은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시’로는 각본상을 수상했다. 그동안 그의 작품이 워낙 좋은 평가를 받아 왔기에 이번에도 ‘버닝’ 수상 가능성에 대해 긍정적인 관측이 쏟아지고 있다.
kiki2022@mk.co.kr[ⓒ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