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동 KBS 신임 사장이 9일 취임식을 가졌다. 이날 오전 9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 본관 민주광장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양 사장은 크게 취재 제작의 자율성 보장과 인적 쇄신 두 가지를 약속했다.
양 사장은 "10년 과오에 대한 책임소재를 분명히 가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합당한 책임도 묻겠다"면서 "정치적인 이유로 역량을 발휘하지 못했던 유능한 직원들에게 보다 많은 기회를 주겠다"고 밝혔다.
또한 “간부 중 누군가가 부당하게 취재·제작 자율성을 침해하려 든다면 일벌백계하겠다. 빠른 시일 안에 국장 임면동의제를 명문화해 취재·제작 자율성을 시스템으로 보장하겠다"고 알리며 "지난 10년 우리의 실패는 취재·제작 자율성이 후퇴해서 생긴 일이다. 보도와 제작에 어떠한 압력도 행사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양 사장은 KBS 이사회의 서류심사와 면접심사,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지난 6일 문재인 대통령의 임명 재가를 받았다.
KBS 최초로 사원에서 사장에 오른 양 사장은 1989년 KBS에 입사해 ‘KBS스페셜’, ‘추적60분’, ‘인물 현대사’ 등을 제작했다. 지난 2008년 정연주 사장 불법 해임 당시 사원행동의 공동대표로 저항하다 파면 통보를 받았고, 이후 재심을 통해 정직 4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양 사장의 임기는 고대영 전 사장의 잔여임기인 오는 11월 23일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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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승동 KBS 신임 사장 취임사 전문
이 자리에 서니 9년 전 어떤 날이 생각납니다. 제가 파면되었다고 수많은 선후배들이 여기에 모여 회사에 항의하고 저를 응원해주었습니다. 그날 정말 많은 분들이 모여서 놀랍고 감격스러웠는데 오늘도 제 생각보다 훨씬 많은 분들이 와주셨네요.
안녕하십니까. KBS 사장 양승동입니다. KBS 구성원 여러분.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지난겨울 정말 추웠습니다. 분명 겨울은 끝난 거 같은 데 봄이 너무 더디게 오는 것 같아서, 조금은 지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리더십의 공백이 길었는데도 여러분은 공영방송의 의무를 다해주셨습니다. 그 와중에 여러 단위에서 회사의 미래를 자발적으로 고민하고 각종 혁신보고서도 만들어주셨습니다. 역시 KBS의 저력은 유능하고 건강한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힘이라는 걸 저는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제가 감히 사장을 하겠다고 나설 수 있었던 것도 결국 여러분들의 저력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씀드립니다. KBS 구성원 여러분! 새로운 KBS를 함께 그려주십시오. 지독히 추웠던 지난 겨울, 우리는 광화문에 서 있었습니다. 540여명이 240시간 동안 참회의 발언을 했습니다. 그리고 다짐했습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새로운 KBS를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무거운 약속입니다. 아무리 사장이라고 해도 저 혼자의 힘으로는 도저히 지킬 수 없는 약속입니다. 하지만 저는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과 함께라면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제가 먼저 완전히 새로운 KBS 사장이 되겠습니다.
새로운 KBS를 만들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무엇보다 취재·제작의 자율성 보장입니다. 지난 10년 우리의 실패는 취재·제작 자율성이 후퇴해서 생긴 일입니다. 분명히 약속드립니다. 저는 보도와 제작에 어떠한 압력도 행사하지 않겠습니다. 정치권력이나 자본권력이 여러분을 제약하려 든다면 앞장서서 막겠습니다. 혹시 간부 중 누군가가 부당하게 취재·제작 자율성을 침해하려 든다면 일벌백계하겠습니다. 빠른 시일 안에 국장 임면동의제를 명문화해 취재·제작 자율성을 시스템으로 보장하겠습니다. 그동안 유명무실했던 편성위원회를 정상화하겠습니다. 대신에, 여러분 스스로도 높은 기준을 가져주십시오. 보도와 제작에 임할 때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여 주십시오. 사적인 이해관계가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지 항상 경계해주십시오.
새로운 KBS를 만드는 일은 구성원 모두가 자율적인 문화 속에서 창의의 에너지를 폭발시킬 때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취재·제작 자율성을 비약적으로 확대하는 일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힘을 합해 가장 높은 수준의 취재·제작 자율성을 이룩합시다.
돌이켜보면 KBS는 외부의 신뢰만 잃은 게 아닙니다. 내부 구성원 사이의 신뢰도 바닥까지 떨어졌습니다. 부적절하고 부당한 인사가 반복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KBS를 만들기 위한 두 번째 조건은 인적 쇄신입니다. 그 핵심은 공정한 평가와 결과적 정의를 회복하는 일일 것입니다. 10년 과오에 대한 책임소재를 분명히 가리겠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합당한 책임도 묻겠습니다. 그리고 정치적인 이유로 역량을 발휘하지 못했던 유능한 직원들에게 보다 많은 기회를 주겠습니다. 젊은 KBS 만들기 위한 세대교체도 과감하게 진행하겠습니다.
KBS 구성원 여러분, 한 가지 부탁드립니다. 부디 맹목적인 불신을 거둬주십시오. 억눌린 10년을 지내오면서 세대 간의 갈등, 보직자와 평직원 간의 갈등, 직종 간의 갈등, 노사 갈등이 심각해졌습니다.
지난 과오에 대한 평가와 문책은 회사가 시스템에 따라 하겠습니다. 불필요한 미움으로 역량을 낭비하는 일을 없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가진 에너지를, 오직 새로운 KBS를 만들어가는 일에 집중해주십시오. 저는 그것이, 우리가 가장 빠르게 혁신할 수 있는 방법이라 믿고 있습니다.
KBS 구성원 여러분, 우리가 만들 새로운 KBS는 상생하는 조직이 되어야 합니다. 극단적인 저임금과 살인적인 노동시간, 차별적인 처우와 같은 비정규직과 외주제작사에 대한 부당한 관행은 반드시 해결해야 합니다.
특히 미투 운동으로 대변되는 성평등 문제는 처벌 수위를 확실히 높여 놓겠습니다. 절대 쉬쉬하며 넘어가지 않겠습니다. 파면을 포함하여 가능한 최대치의 불이익을 줄 것입니다. 지난 금요일 임명을 받고나서 저녁에 혼자 안산에 다녀왔습니다. 많이 혼날 각오를 하고 갔는데 너무 따뜻하게 맞아주셔서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곧 철거되는 합동 분향소에서 아이들의 영정 사진을 보며 다짐하고 약속했습니다. 세월호 진상 규명을 위해서, 다시는 아이들이 억울하게 죽지 않는 대한민국을 위해 공영방송이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다짐했습니다.
유경근 위원장께서는 '변화에 시간이 걸릴 것이다, 조바심 내지 말고 뚜벅뚜벅 가시라'고 응원까지 해 주셨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KBS를 만드는 일, 시간이 걸릴 겁니다. 중간에 더러, 덜컥거리는 일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어차피 가야할 길입니다. 망가진 언론의 피해자가 우리 언론인이 아니라 국민이듯, 정상화된 언론의 수혜자는 우리 언론인이 아니라 국민이 될 것입니다. 공영방송 KBS의 유일한 주인인 국민을 위해서 우리는 새로운 KBS를 만드는 일을 이제, 시작해야만 합니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이미 시작했습니다. 지난해 9월 파업에 돌입하면서, 아니 그 이전, 2014년 6월 권력에 굴복한 사장을 쫓아내면서, 아니 훨씬 더 전, 2008년 8월 이곳 민주광장에서 경찰과 몸싸움을 하면서 우리는 이미 완전히 새로운 KBS를 만들기 위한 여정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구성원 여러분! 새로운 KBS를 함께 그려주십시오. 저와 경영진은 '새로운 KBS'라는 거대한 그림의 큰 구도만 잡아 놓겠습니다. 구석구석 스케치, 디테일한 질감, 알록달록한 색깔은 여러분들께서 채워주십시오. 그렇게 힘을 합쳐서 정말 멋진 KBS, 완전히 새로운 KBS를 그려봅시다. 그렇게 해서, "KBS를 시민의 품으로" 돌려드립시다. 저는 오직 구성원 여러분
마지막으로 제가 꼭 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저는 영광스럽게도 역사상 처음으로 시민이 선출한 KBS 사장입니다. 그때 제가 시민자문단 앞에서 이렇게 약속했습니다. 취임하면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겠다고'
그 약속을 지키고 싶습니다. 정연욱 기자와 이이백 피디가 좀 도와주시죠.[ⓒ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