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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리피는 '쇼미더머니 시즌6'를 통해 래퍼로서 자신감을 얻었다. 제공| TS엔터테인먼트 |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한인구 기자]
"'일단 불구덩이만 피하자'라는…여기만 지나가도 큰 성공이에요. 그 다음에는 항상 그때그때 최선을 다해서 해야죠." 래퍼 슬리피(본명 김성원·33)는 엠넷 '쇼미더머니 시즌6' 2차 예선을 앞두고 이렇게 각오를 다졌다. 래퍼보다는 방송인으로 대중에 익숙한 그는 마이크를 잡았고, 자신이 속한 힙합 그룹 언터쳐블의 '그냥 가'를 무대에 올렸다. 단 1분의 랩으로, 래퍼 슬리퍼가 돌아왔다는 것을 알렸다.
"'쇼미더머니 시즌6' 참가 결정 때문에 점집에도 가봤는데, 출연한 뒤에 얻은 게 더 많아요. 예전보다는 많은 분들이이 저를 래퍼로 봐주시죠. 그동안 출연 제의가 왔지만, 언터쳐블 경력도 있는데 '굳이 해야 하나' 싶었어요. 음악으로 보여주면 된다고 생각했던 거죠."
슬리피는 2006년 7월 힙합 크루 지기 펠라즈 소속으로 싱글 앨범 '레디 투 샷(Ready To Shot)'을 발표했다. 2008년에는 TS엔터테인먼트와 계약한 뒤 정식 데뷔했다. 슬리피는 2000년대 활동한 힙합 2세대이지만, 그의 이름이 익숙해진 건 '우리 결혼했어요', '진짜 사나이' 등 예능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예능에서 재밌게 하다가 갑자기 멋있는 랩을 하면 이질감이 느껴져서 못 하겠더라고요. 그런 시선들을 한 번 꺾고 싶었죠. 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기도 했고, 나이를 먹으면서 랩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깨달아서 지원하게 됐습니다."
슬리피는 "예능을 하면서 인지도는 높아졌는데, 올라온 뒤로는 불안해지더라"고 했다. '슬리피'라는 이름은 방송을 통해 알려졌지만, 그가 했던 음악은 천천히 잊혀져갔다. 예능에서 웃음을 전하는 모습은 래퍼와 동떨어졌고, 고민은 깊어졌다. '잃을 게 없다'는 생각이 들자 '쇼미더머니 시즌6' 지원서에 이름을 적었다.
남 부럽지 않은 경력을 가진 래퍼였지만, 슬리피도 수많은 참가자 중 하나일 뿐이었다. 1차 예선을 보기 위해 꼬박 24시간을 기다렸다. 그는 심사위원이자 후배 래퍼인 지코(우지호·25)에게 평가받았다. 세 차례 랩을 했지만, 실수한 랩만 방송됐다. "'쇼미더머니'는 오디션보단 예능이라고 봐요. 시청률에 상관없이 '무한도전'처럼 굉장히 영향력이 있는 예능인 거죠. '악마의 편집'은 신경 안 썼어요."
슬리피는 바람대로 2차 예선을 통과했다. 래퍼보단 방송인과 교류가 잦았던 그는 루키부터 1세대 래퍼와 함께했다. "처음에는 정말 어색하더라고요. 옆 촬영장에서 '너의 목소리가 보여' 녹화도 진행되고 있었는데, 이상민 형과 신동을 만났죠. '오히려 저기에 가고 싶다'라는 마음도 들더라고요."
합격자로서 당연한 자리에 있으면서도 불편한 감정이 든 건 스스로 만족하지 못해서였다. 귀를 파고드는 날카로운 랩을 선보인 슬리피를 향한 시선도 바뀌었다. 한 단계씩 올라갈수록 여유도 생겼다. 웃음기를 지운 채 무대에 오른 그의 모습은 어색하지 않았다. 단체 프리스타일 예선에서 탈락했으나 수확은 컸다.
"래퍼들이 보통은 5,6개 벌스(Verse)를 준비해서 나온다더라고요. 저는 2,3개 밖에 준비하질 못했는데, 해온 음악 중 대부분이 사랑 노래였기 때문이에요. 사랑 이야기를 하고 싶진 않았거든요. 예능을 하면서 음악에 대한 열정도 줄었는데, '쇼미더머니 시즌6' 출연 후에는 열정도 다시 찾았어요."
슬리피는 데뷔 후 래퍼 활동 보다는 방송인으로 TV화면에 비치는 횟수가 늘었고, 래퍼들과 멀어졌다. 후배 래퍼들에게 '죽었으면 좋겠다'는 원색적인 비난을 받기도 했다. 래퍼로서 자신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주변의 기대 없이 출전한 '쇼미더머니 시즌6'를 통해 래퍼들과의 거리감도 줄일 수 있었다.
"함께 작업하고 싶은 래퍼는 정말 많죠. '쇼미더머니 시즌6'에 나왔던 래퍼들과 어느 정도 구두로 합의를 해놨어요(웃음). 우원재에게 '잘 될 거 같은데 나를 도와줄 수 있겠느냐'라고도 했죠. 넉살에게도 '여러 래퍼들에게 작업 제의를 받아도 내 거는 해달라'고 했습니다(웃음)."
'쇼미더머니'는 래퍼들이 랩 실력을 겨루는 프로그램이다. 음악과 방송의 경계선에서 비난받긴 했지만, 점차 힙합신에서 인정받고 있다. 최근에는 래퍼들도 이름을 알리기 위해 지
"방송을 하는 게 창피하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자부심을 느끼고 있어요. 래퍼들도 방송에 나가길 원하는 분위기죠. 개리 형이나 쌈디는 예능을 해도 실력으로 인정받잖아요. 랩을 잘한다면 방송 출연과 음악은 상관없는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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