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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탈과 강간, 성폭행을 다룬 영화의 수위 묘사와 관련해 반대편에서 자주 언급되는 영화는 이준익 감독의 ’소원’이다.
누구나 흔히 생각할 법한 피해 장면을 넣지 않았다. 아동의 성폭행 장면이 들어가면 어떡하나 노심초사하며 관람한 이들은 가슴을 쓸어내렸고, 이 감독의 연출이 만족스러웠다고 여전히 이야기하고 있다. ’소원’은 청룡영화상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따냈고, 큰 영화가 아니었음에도 270만명이라는 관객 수치도 이 같은 판단을 대변했다.
미국의 메이저 영화사 워너브라더스가 투자 배급을 맡은 영화 ’브이아이피’는 여성의 연쇄살인 사건이 소재다. 엽기적인 연쇄살인을 저지른 북의 김광일(이종석) 패거리가 한국에 들어오며 벌어지고 알려지는 일들은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라는 걸 알고 봐도 불편한 시선이 내리꽂힌다.
상대를 노리개쯤 여기고 살해하는 장면이 관객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만하다. 강간의 행위가 직접적인 장면으로 등장하지 않아도 여성의 가슴 노출과 피해 상대의 노출 묘사는 장기간 이어진다.
감독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불편한 마음이 느껴진다고 이야기하는 관객이 꽤 많다. 이종석의 악한의 연기를 향한 칭찬도 (김광일의 전사가 없는 것과 더불어 개연성 없는 연쇄살인도 아쉽지만) ’여혐 논란’에 빛이 바랬다.
박훈정 감독은 관객들의 반응에 대해 앞서 몇몇 인터뷰를 통해 젠더 감수성 부족을 언급, "표현 수위를 두고 고민을 정말 많이 했다"면서도 "’좀 더 깊이 고민해야겠구나’ 생각했다"고 말한 바 있다.
영화 ’신세계’로 두꺼운 팬층을 확보한 박 감독은 다른 결의 누아르 영화 ’브이아이피’를 향한 대중의 반응에 아쉬울 수도 있지만, 최근 벌어진 ’강남역 살인사건’ 등을 통해 촉발한 ’여혐’과 관련한 정서를 고려하지 못한 듯 보인다.
물론 반대편의 이야기도 있다. "기존에 만들어진 한국영화와 묘사 수위가 별반 다르지 않은데 왜 욕을 먹어야 하는지 의심스럽다"는 의견이다. 이들의 주장도 수긍할 부분이 있다. 또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기에 표현의 자유를 누군가가 억압하고 규제할 수는 없다. 다만 이런 대중의 반응도 있을 수 있다는 건 알아야 한다. 더 고민하고 생각해봐야 할 문제로 보
이준익 감독이 과거 ’소원’ 홍보를 하며 진행한 인터뷰가 떠오른다.
"조금이라도 불손함이 느껴지면 안 됐기에 최대한 공손하고 정중하게 작업했다. 그것이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다. 선정적인 소재로 관객들의 눈물을 짜내려고 한다면 피해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나를 비롯해 배우와 스태프가 한 방향을 바라봤다."
jeigun@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