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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스타투데이 한인구 기자]
"우리가 어쩌면 서로에게 줄 수 있는 위로는 살아있음이 아닐는지요. 우리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있다는 건 그만큼 서로 사랑한다는 증좌가 되는 겁니다."
지난 3일 종영한 KBS2 '7일의 왕비'에서는 이역(연우진 분)과 신채경(박민영)은 결국 서로를 위해 이별했다가 중종 39년 왕이 된 이역이 죽음을 앞두고서야 다시 만났다.
'7일의 왕비'는 연산군 이융(이동건)과 그의 이복동생이자 이후 중종이 되는 이역, 조선 역사상 가장 짧은 기간인 7일 동안 왕비의 자리에 앉았다가 폐비된 단경왕후 신씨 신채경에서 착안한 작품이다. 극의 중심이 되는 세 주인공은 실제 역사에서 따왔으나 대부분의 이야기는 작가의 상상력을 통해 구현됐다.
이융은 왕좌에 오른 이후 자신의 과거에서 비롯된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역이 언젠가는 왕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의 마음 한쪽에는 동생을 향한 애잔한 마음이 있었다. 어릴 때부터 형을 믿고 따랐던 이역은 이융의 견제에도 형제애를 지키려고 했다. 갖은 고초를 겪고 이역이 백성이 아닌 욕망에 얽혀 나라를 휘두르는 것을 보고는 반란을 일으켜 왕이 됐다.
이 형제의 사이에는 신채경이 있었다. 그는 두 형제를 이해하면서도 각을 세울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고통받아야 했다. 작품에서는 이융 이역이 서로 틀어진 계기 중 결정적인 이유로 신채경을 향한 사랑으로 설정했다.
제작진은 인물의 미묘한 감정 변화나 구조에 따라 어쩔 수 없었던 선택들을 그리면서 세 사람의 관계를 농밀하게 짚어냈다. 애정을 갈구하는 이융이 망가져 가는 과정이나 이역이 정치적인 논리에 신채경과 멀어져야만 했던 순간들은 안타까웠다.
그러나 '연산군'이라는 매력적인 소재는 독이 되기도 했다. 연산군이 폭군이 된 뒷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진 것은 좋았으나 '연산군'이 가진 무게는 만만치 않았다. 복잡한 정치 상황을 뒤로 밀어내고 세 사람의 애정 관계를 다룬 건 작가의 상상력이라고 볼 수 있지만, 온전히 몰입해 보기는 쉽지 않았다. 그만큼 여러 작품에서 다뤄왔던 시대적 배경이었기 때문이다.
격정적인 인물에 요동치는 삼각관계를 담은 건 물이 가득 찬 잔 같았다. 충분하고도 넘칠 만큼 채워진 물이 조금이라도 요동치면 쏟아지려고 하듯 역사적인 사실을 넘어선 각색은 내내 위태했다.
오히려 역사적인 배경 자체를 완전히 허구로 구성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연산군을 둘러싼 요소들을 극복하기보단 백지 위에 '7일의 왕비'를 담았어야 자유롭게 짜임새를 만들 수 있었을 듯했다. 작품 곳곳에 빛나는 대사들이 있었던 것도 이러한 아쉬움을 더했다.
이역 신채경이 이별할 때의 대사는 시청자의 마음을 파고들만 했다. 이융이 죽기 전 이역에게 "너를 미워했던 게 아니었다. 네 눈이 비친 나를 미워했던 것이다. 네 눈과 똑같이 닮은 채경이 그 아이의 눈을 보기가 부끄러워 너희를 망치려 했다"는 대사도 이융의 삶을 그대로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그동안 로맨스 드라마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던 이동건 연우진 박민영의 연기는 굳이 흠잡을 데 없었다. 이동건이 연기한 연산군은 처음에는 낯설다는 평가도 있었으나 폭군보단 심약한 마음에 초점이 맞춰진 작품 속 이역과 갈수록 잘 어울렸다. 연우진 박민영이 채색한 이역 심채경은 운명을 거스를 수 없는 장면들과 맞아떨어졌다.
배우들의 호연과 좋은 대사에도 '7일의 왕비'는 시청자와 아쉬운 작별을 했다. '연산군'과 '역사'라는 무게를 잘 다뤘다면 흥행에도 성공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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