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뮤즈 라이언전 사진=천정환 기자 |
[MBN스타 백융희 기자] ‘Do or Die’. 최근 종영한 Mnet ‘프로듀스 101 시즌2’ 프로듀서 라이언전의 음악 철학이다. 이번 뮤즈 코너에서 소개할 라이언전은 지난 2010년 가수 이효리 ‘치티 치티 뱅뱅(Chitty Chitty Bang Bang)’으로 데뷔한 작곡가이자 소위 SM 작곡가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부산 출신으로 어린 시절 미국에 이민을 간 후 음악이란 꿈 하나만을 보고 홀로 한국으로 돌아왔다. 다소 무모해 보이지만,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유명 엔터테인먼트 측과 접촉을 시도했다. 모진 수모와 굴욕적인 순간도 있었지만, 자신의 꿈을 위해서 기꺼이 버텨냈다.
처음부터 순탄한 길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생계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음악 작업에 몰두했다. 그리고 낭떠러지에서 떨어지기 직전 그의 손을 잡아준 건 SM엔터테인먼트였다. 그의 능력을 알아본 SM엔터테인먼트와 연이 닿아 본격적으로 작곡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라이언전은 최근 진행한 MBN스타와의 인터뷰를 통해 꿈을 이루는 데에는 재능과 피나는 노력이 존재할 뿐이라고 말했다. 음악을 좋아하던 부산 소년이 이제는 한국 가요계를 움직이는 영향력 있는 거물이 됐다. 언뜻 보면 좋은 교육 환경과 대형 기획사를 등에 업고 이뤄낸 당연한 결과라고 볼 수 있지만, 이는 철저한 노력과 과정을 거친 비하인드 스토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벌써 데뷔 7년 차가 됐지만, 아직도 ‘꿈’을 이뤘던 순간을 잊지 않으며 최선을 다해서 곡 작업에 임하고 있다. 영감으로 순식간에 써낸 곡 보다는 오랜 시간 정성 들인 음악을 대중들에게 선보이고 싶다는 뜻이다.
현재는 외부 작곡 활동과 함께 Ateam엔터테인트 대표로서 신인 그룹을 육성 중이다. 이밖에도 50여 명의 작곡가가 소속된 팀을 꾸리면서 국내 가요계에서 꼿꼿하게 자리 잡고 있다.
↑ 뮤즈 라이언전 사진=천정환 기자 |
Q. 음악을 시작하계 된 계기가 뭐였나?
“네 살 때부터 피아노를 쳤고 트럼펫, 드럼, 오케스트라, 밴드부 경험도 했을 정도로 음악을 좋아했다. 어린 시절 미국에 이민을 갔는데 힙합과 팝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처음 접한 음악이 신세계처럼 느껴졌다. 이후 음악 관련 대학에 합격했는데 부모님께서 허락을 안 해주셨다. 그래서 가출도 해보고 사업도 해보고 다른 곳에 눈을 돌려본 적도 있다. 그런데도 마음속에는 음악밖에 없었다. 이후 대리만족을 위해서 DJ를 했는데 하면 할수록 내 길인 것 같았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곡을 쓰기 시작했다.”
Q. 본격적으로 작곡가로 데뷔한 시작점은 언제였나?
“처음엔 외국에서 활동하려고 했었는데 좋지 않은 일들을 겪었다. 그러면서 나는 한국 사람이니까 한국에서 음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더 어려웠던 것 같다.(웃음) 무작정 비행기 타고 서울로 가서 기획사, 매니저 등에게 전화를 돌렸다. 뉴욕에 산다고 하는데, 사투리를 쓰니까 잘 안 믿더라. 처음엔 이효리 씨 매니저도 만나달라는 부탁을 10번 정도 거절했던 것 같다.(웃음) 그때 유일하게 SM엔터테인먼트가 내 곡을 듣고 피드백을 줬다. 미팅 후 바로 계약을 했고 본격적으로 작곡가의 길을 걷게 됐다.”
Q. SM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고 들었다.
“신인이었지만, 가능성을 봐주셨던 것 같다. SM 이성수 이사님과 이수만 선생님이 계셨기 때문에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 회사의 규모와 상관없이 나에게는 생명의 은인인 회사다. 나도 현재 회사 대표로 있지만, SM에는 무조건 충성을 다하고 싶다. 작곡가로서 수명을 다할 때까지 곡을 드리고 싶다.”
Q. 신인 작곡가들에 비해서 순탄한 길을 걸어온 것 같다.
“절대 아니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과정을 거쳤다. 음악 한다고 서울에 20만원 들고 와서 길에서 잠도 자고, 라면 하나로 모든 끼니를 때운 적도 있다. 죽기 살기로 곡을 만들었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거절도 당해봤다. 하지만 나를 궁지에 몰아넣고 무조건 되게 만들었다. 이게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꿈에 대한 차선책을 마련해 놓으면 지고 들어가는 거다. 지금도 음지에서 죽기 살기로 곡을 쓰고 있는 친구가 언젠가는 탑 프로듀서가 된다고 생각한다. 인생은 ‘Do or Die’다. 그래서 음악을 하고 싶어 하는 친구들에게 나 같은 사람도 했으니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꼭 해주고 싶다. 이 세상에 운은 없다. 99% 노력과 1%의 재능으로 하면 된다.”
Q. 작곡가 수명이 짧다고 들었는데 10년 이상 음악을 하고 있다. 슬럼프가 있었나?
“물론 있었다. 처음 작곡가로 데뷔 후 목표가 내가 쓴 노래로 1등을 하는 거였는데 이루고 나니 목표의식이 사라지고 곡 작업에 소홀하게 됐다. 2~3년 동안 슬럼프를 보내던 중, 나만 바라보고 있는 작곡가 친구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 친구들을 실망시키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뜩 들었다. 그리고 그다음 목표를 세우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현재 꾸리고 있는 팀원들이 계속 음악을 할 수 있게 하는 것과 어려운 이들을 위한 학교, 재단을 만들어주고 싶다. 이후 엑소 ‘러브 미 라이트’, 샤이니 ‘뷰’, 태연 ‘아이’ 등의 곡이 나왔고 ‘프로듀스101 시즌2’ 곡에도 참여하면서 다시 활기를 띠고 있는 것 같다. 슬럼프 때에는 나와 싸움에서 졌다고 보겠지만, 오히려 이런 시기가 있었기 때문에 현재 한 곡을 만들 때마다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것 같다.”
↑ 뮤즈 라이언전 사진=천정환 기자 |
Q. 어떻게 극복했나?
“침체기 때 정확한 판단을 했다. 1인으로서 할 수 없는 부분을 여러 사람이 함께 채워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러 작곡가와 서로 협력해서 더 좋은 음악을 완성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하더라. 음악은 스포츠와 같다는 생각을 했다. 외국에서 작곡할 때부터 알던 인맥들을 차차 넓히면서 현재는 팀원이 50명 정도 된다. 앨범 크레딧을 쓸 때 한 곡당 10명 이상의 작곡가, 작사가들이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물론 수입 면에서는 불리하겠지만, 더 좋은 음악이 나온다는 것은 확신할 수 있다. 지난해 ‘프로듀스 101 시즌 1’의 ‘크러쉬’, ‘와타 맨’의 경우도 많은 작곡가가 들어가 있다.”
Q. 여러 작곡진의 곡을 합치면 산으로 가지 않을까?
“그래서 제일 중요한 게 A&R이다. 곡의 방향성과 프로듀싱이 중요한데 그 역할을 내가 하고 있다. 여러 작곡가가 작업한 곡을 듣고 한 곡으로 완성 시키는 과정을 거친다. 작업할 땐 항상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한다. 단시간에 곡을 완성한다는 이야기도 많지만, 내가 작업하는 곡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많은 시간을 거쳐서 완성도 높은 곡을 구성한다. 힘들지만 일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다. 그리고 한 곡이 발매되기까지 수많은 회사들의 노력을 보면 절대로 허투루 만들어서 곡을 낼 수 없다.”
Q. 작곡가의 입장에서 작사의 중요도는 어느 정도라고 보는지?
“작사를 절대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작사에 있어 추구하는 부분이 있다. 글의 흐름처럼 발단, 전개, 절정, 결말 등이 뚜렷하게 있는 가사를 선호한다. 아마 제 곡을 들어보시면 곡과 가사에 그런 흐름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포괄적이긴 하지만 귀에 확 꽂히는 펀치라인 단어가 필요하다. 안준영 PD님이 작사한 ‘나야 나’ 곡도 이 맥락과 같다. ‘나야 나’ 자리에는 원래 ‘문 라이트’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었다. 달빛을 받으면서 달빛길만 걷자는 의미였는데, PD님이 ‘나야 나’로 수정하길 원해서 펀치라인 단어가 탄생했다.”
Q. ‘창작’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다. 두려움은 없나?
“물론 있다. 그래서 모든 곡이 중요하다. 마지막이 될 수 있으니 한 곡 작업할 때 항상 최선을 다한다. 과거에는 혼자 모든 곡을 새로 창작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다면 현재는 팀원들이 함께 해서 그런 부담은 줄었다. 작곡가분들이 곡을 보내면 그 곡을 듣는 도중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주로 음악을 듣다가 영감이 떠오르는 것 같다. 보통 데모들을 듣다가 정리를 하면서 더 좋은 것들이 생각난다. 사실 모든 음악을 들을 때 영감을 받는 것 같다. 그리고 기술적인 부분도 중요한 것 같다. 삼겹살 구울 때 초벌 하지 않나, 곡도 그런 초벌 작업이 중요하다. 대중이 듣는 좋은 팝에는 공식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우리 팀 또한 공식이 있다. 그 공식은 내가 작곡한 곡들을 들으면 아실 수 있을 거다. (웃음)”
Q. 엔터계에 몸담고 있으면서 그리는 최종 목표가 있나?
“최고 프로듀서, 최고 작곡가보다는 항상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되고 싶고 곡으로 대중에게 인정받고 싶다.
백융희 기자 byh@mkcul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