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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준호 감독. 제공|NEW |
“칸에서 시작된 논란이 국내에서는 멀티플렉스와의 논쟁으로, 이제는 다양성 영화의 상영 기회를 빼앗는다는 지적까지…그야말로 바람 잘 날이 없네요. 흥미진진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영화 같은 현실이네요.”
봉준호 감독이 연일 논란의 중심에 섰다. 신작 ‘옥자’와 함께 연일 뜨거운 관심 속에서 각종 논란에 시달리고 있는 봉 감독은 ‘논란’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허허허’ 너털웃음을 지었다. 칸 국제영화제에서부터 시작된 잡음은 영화가 개봉한 이후에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안팎으로 이보다 더 뜨거운 영화는 앞으로도 쉽게 볼 수 없을 듯하다.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봉준호 감독. 그는 관객들의 반응이나 흥행 성적, 업계의 평가 등 여타의 감독들이 느끼는 보편적인 부담감에서 자유로운 모습이었다. 봉 감독은 “손익분기점의 압박이 없는 영화를 찍은 최초의 경우라 사실은 나 역시 이게 어떤 기분인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이전의 경우와는 분명 다르다”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보통의 영화들이 작품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손익분기점이 있기 때문에 박스오피스 순위를 체크하고 관객 수를 신경쓰죠. 여러모로 감독 입장에서는 무거운 책임감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옥자’의 경우는 넷플릭스 플랫폼에 올라가고 나면 그냥 끝이에요. 극장 상영이 아니기 때문에 손익분기점의 개념이 아예 없고, 넷플릭스 상에서도 조회수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한 번 올리면 독점 제공을 하면서 영원히 계속 쌓여가는 거예요. 기존의 영화와는 전혀 다른 형태죠. 창작자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매력적이지만 업계에서는 위협적으로 보일 수도 있죠.”
새로운 도전에 임했기 때문에 ‘옥자’를 둘러싼 모든 게 처음이었던 봉 감독. 남다른 의미를 지닌 만큼 연일 논란의 중심에 서야 했다. 아니 여전히 그 중심에 서 있다.
봉 감독은 “처음엔 낯설었지만 경험해보니 무서운 모델이긴 하다. 왜 업계 관계자들이 그렇게 관심을 가지고 위협을 느끼는 지 알 것도 같다”면서 “다만 극장이 위협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영화를 보는 새로운 방식이 하나 추가된 것뿐이지 이걸로 인해 엄청난 일이 일어나진 않는다. 극장은 극장만의 매력이 있다. 각자 다른 경로”라고 말했다.
“처음 넷플릭스 영화라는 이유로 칸에서 논란이 됐을 땐 ‘프랑스에 이런 법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얼떨떨했어요. 그저 기쁜 마음으로 축제에 갔다가 예상치 못한 일에 계속 부딪히다 보니 정신이 좀 없었죠. 국내에 돌아오니 대형 멀티플렉스에서 상영을 반대하며 또 다시 논란이 되더니, 이제는 독립영화들의 설자리를 위협한다는 지적까지…도무지 바람 잘 날 일 없네요. 정말이지 예상치 못한, 전혀 의도치 않은 일들의 연속이에요.”
새로운 걸 관객들에게 제시하려는 선도적인 생각은 전혀 없었단다. 그는 “그저 영화 예산이 많이 나와 한국에서는 할 수 없겠다는 생각에 해외 스튜디오를 찾던 중 넷플릭스와 인연이 닿았고 그들의 제안이 너무도 파격적이었기 때문에 창작자로서는 당연히 손을 잡은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일련의 논란들에 대해 저마다의 입장이 다 있다고 본다”면서 “이 모든 게 새로운 문화가 뒤섞이는 하나의 당연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담담한 태도를 보였다. 다만 최근에 제기된 ‘다양성 영화 상영 침해’ 관련해서는 “넷플릭스와 배급사(NEW) 측에서 미리 기존 상영 스케줄에 피해가 없도록 사전 조율과 배려를 했다고 들었다. 한 극장의 특정 이벤트로 인해 벌어진 일로 알고 있다”며 조심스럽게 해명했다.
끝으로 “’감독계의 연예인’이라는 수식어가 있다. 쏟아지는 관심과 위치에 따른 부담감은 없나”라고 물으니 “부담감 보단 그저 감사한 마음이다. 내가 관객이 돼 내가 보고싶은 영화를 만들어왔을 뿐인데 이런 관심을 받게 돼 고마울 따름이다. 하지만 그런 시선을 의식하기 보다는 본래 내가 가던 길을 같은 방식으로 걸어가고 싶다”고 답했다.
“저의 이기적인 욕심일지 모르지만 저의 기준은 저예요. 제가 바로 관객이라는 생각으로 작품을 구상하고 만들죠. 업계의 관심, 주변의 시선, 관계자의 취향 모두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관객이라면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보겠다’라는 생각으로 만들어요. 가끔 특강에 나가면 ‘감독님이 생각하는 관객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곤 하는데 그 때마다 ‘내가 바로 관객이라고 생각하고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찍는다’고 말해요. 그게 저의 진심이죠. 후배 감독들이나 많은 영화학도들이 여러 가지 제약과 고민, 현실적인 문제들이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이런 생각을 갖고 임한다면 조금은 더 즐겁게, 부담감 없이 꿈을 키울 수 있지 않을까요?”
‘설국열차’에 이어 ‘옥자’까지 스케일이 큰 영화를 무려 8년간 찍어온 봉 감독. 그의 차기작은 ‘기생충’이다. 알려진 것은 많지 않다. ‘마더’ 정도의 스테일에 100% 한국어, 가족 이야기라는 것. 여기에 송강호의 허락을 기다리고 있다는 정도다.
“일단 ‘옥자’를 잘 마무리하고 난 뒤에 다음 작품에 집중하고 싶어요. 많은 분들이 영화 외적인 이야기로 ‘옥자’를 떠올리실 텐데 이제는 영화 내적인 것들을 두고 많은 대화를 나눴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하하”
‘옥자’는 슈퍼돼지 옥자와 산골 소녀 미자(안서현 분)의 우정을 담은 어른 동화다. 아름답기만 한 동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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