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익 감독이 연출한 영화 ’박열’의 주인공은 분명 박열을 연기한 이제훈이다. 일제를 향한 이제훈의 "개XX"라는 욕설이 가슴을 뻥 뚫리게 하는 동시에 다가올 죽음의 두려움도 불사하고 투쟁에 나선 그의 용기는 울분과 슬픔, 감동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배우 최희서도 ’박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박열의 평생 동지이자 연인인 일본인 가네코 후미코는 관객의 다른 지점을 자극한다.
익히 알려진 독립운동가들의 투쟁은 대한민국 국민이기에 동질성과 당위성을 느끼게 한다. 아무렇지 않게 조선을, 대한민국을 침략하고 짓밟은 제국주의에 분노하는 마음은 시간이 흘렀어도 여전히 한국인의 마음 한 쪽에 자리하고 있을 게다.
’박열’은 제국주의에 반감 가득한 일본인들에도 주목했다. 그 중심에 가네코 후미코가 있다. 일본에는 제국주의에 충성을 다하는 이들만 있었던 건 아니다. 조선인 투쟁의 이유를 공감하고 지원하는 이들도 꽤 많았을 텐데, 우리 대부분은 그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 같다.
소수였겠지만 분명 존재했었던 깨어있는 일본의 시민들. 조선인들의 편에 서서 일제의 겁박에도 당당하게 자기 생각을 내비친 가네코 후미코는 또 다른 울림을 준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아니 그보다는 이치에 맞는 일이라는 소신을 위해 뛰어든(어린 시절 버림 받았던 부모를 향한 반감이 일부 작용했을 수도 있겠으나) 그 용기는 추어올릴 만한 것이다.
가네코 후미코를 연기한 최희서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배우라(최희서에게는 미안한 말일지 모르겠으나) 더 몰입감 가득하게 스크린에 집중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얼굴이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가 쏟아내는 일본어 대사와 일본인의 날 것 같은 그 감정의 대사들이 가슴에 와 닿는다.
물론 두 사람뿐 아니다. 두 사람의 이야기에서 알게 모르게 이들에게 도움을 줬던 많은 일본인과 한국인, 그리고 그 일을 알리려 한 서양인 기자들 등등. 그들 덕분에 우리는 현재의 대한민국 국민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이준익 감독은
영화 ’동주’와는 또 다른 지점이 전하는 감동이 당분간 이어질 것 같다. 역시 영화는 연출자에 의해 감동적인 예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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