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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시민`에서 또 한 번 연기력을 입증한 배우 곽도원. 제공|쇼박스 |
“배우 곽도원도, 인간 곽도원도 길을 잃었습니다. 그저 연기로 먹고 살 수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여겼던, 무대 위에서 전전긍긍하며 살아온 연극쟁이인 제가 공인이라니요? 이렇게 큰 영화에, 대스타들과 연기하고 있다니요. 물론 벅찬 행복입니다만, 때때로 스스로에게 자문합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 어떤 의미를 쫓으며 나아가야 할지를요.”
‘믿고 보는 배우’의 타이틀이 아깝지 않은, 충무로의 대세 배우 곽도원은 이런 뜻밖의 고민을 들려줬다. 스크린을 통해 보여준 강렬한 카리스마, ‘무한도전’에서 보여준 호탕하고 밝은 에너지와는 다른, 아이 같은 순수함이 짙게 묻어있는 인간미 넘치는 색다른 모습이다.
곽도원은 신작 영화 ‘특별시민’(박인제 감독)에서 극의 긴장감을 담당하는 주요한 역할을 맡았다. 그가 맡은 선거공작의 일인자, 선거대책본부장인 심혁수는 변종구(최민식)를 보좌하면서도 끊임없이 견제하고 나름의 셈법으로 권력을 저울질하는 검사 출신 ‘브레인’이다. 이슈를 생산하고 온갖 루머를 조작‧확산시키는, 흑색선전에 능한 인물이다.
그는 이번에도 특유의 디테일과 자연스러운 연기로 스크린을 압도한다. ‘연기 본좌’ 최민식과의 정면전에도 전혀 밀림이 없다. “연기가 정말 기가 막힌다. 스스로는 어떤 점수를 주고 싶나”라고 물으니, “죽을 만큼 열심히 한 건 맞지만 사실 진짜 연기에 대해서는 아직도 모르겠다. 한참 멀었다”며 겸손하게 말했다.
잠시 생각에 잠긴 그는, 영화 ‘변호인’으로 호흡을 맞춘 선배 배우이자 얼마 전 세상을 떠난 고(故) 김영애를 언급하며 “내게 연기란 죽을 만큼 열심히 하는 것이지 죽음과 맞바꿀 정도는 결코 아니다”고 했다.
이어 “선배님을 떠올리면서 그런 의문이 생기더라. 나는 아직 숭고한 어떤 정신, 예술의 세계를 알지 못하는 사람인데…이런 내가 연기에 대한 칭찬을 받고 연기에 대해 논하는 게 그저 부끄러운 따름”이라며 담담하게 말했다.
“하나의 작품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서로 존중하는 마음으로 ‘으쌰으쌰’ 하면서,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찍었을 뿐 다른 건 잘 모르겠어요. 사실 제가 어떤 욕심을 낼 위치인가 싶기도 하고요. 우리가 피와 땀을 쏟아 만든 결과물이 예술처럼 아름답게 보이길 바라지만 제가 예술을 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질 않아요. 전 상업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일 뿐이니까요. 아직도 숭고한, 순수한 예술혼을 위해 모든 걸 쏟아 연기하는 배우들이 참 많은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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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시민`에서 또 한 번 연기력을 입증한 배우 곽도원. 제공|쇼박스 |
“제가 생각하는 진짜 공인은 정치를 하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을 하는 그런 분들인데, 많은 사람들이 알아본다는 이유로 이제는 제게 공인이라고들 해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긴 했지만 전 사실 모르겠어요. 이런 게 제 인생에 있어 처음 겪는 일이라. 이런 큰 영화, 큰 돈, 큰 관심과 이름, 칭찬까지 모두 다요. 사실 뭐가 참인지, 제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요즘엔 잘 모르겠어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저 먹고 살려고 연기를 시작했고, 내가 좋아하는 연기로 정말 먹고만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꿈만 꿔온 제게 이제는 너무도 큰 짐을 짊어지게 됐으니까요.”
그는 배고픈 시절을 떠올리며 특유의 인간미 넘치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선배들이 제게 늘 그만두라고, 너는 안된다고 말하곤 했는데. 서른 넷에 처음 단편 영화를 찍고, 그저 연기가 좋아서 미쳐 살던 내 인생이 참 많이도 달라졌다”고 했다.
“요즘엔 스스로 어떤 의미를 찾고, 무엇을 ‘참’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많이 생각해요. 지금의 관심과 사랑에 너무나 감사하지만 분명 도망치고 싶고 두렵고 부담스러울 때도 있거든요. 자꾸만 외로워지는 것 같아서 감당이 안 될 때가 종종 있어요. 그럴 때면 제가 이번 작품에서 맡은 혁수가 부러워요. 이성적으로 현명하고 똑똑하니까, 목표가 뚜렷하고 셈도 빨라 이런 고뇌 없이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되니까.(웃음) 그렇지만 저는 아니에요. 어려운 게 너무 많고 감정 소모도, 고민도 많죠. 당분간은 계속 그런 시간을 보내야 할 것 같아요
영화 ‘특별시민’은 우리가 가장 공정한 정치의 시작이라고 믿는 선거판의 세계를, 그 불편한 이면을 리얼하게 담아낸다. 영화는 결국 권력욕에 중독돼 버린 잘못된 리더의 모습, 선거쇼의 각종 불편한 이면들을 보여줌으로써 유권자가 알아야 할 진실과 올바른 선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26일 개봉.
kiki2022@mk.co.kr